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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브롤의 블랙코미디 심리스릴러, <악의 꽃>

<EBS> 4월16일(토) 밤 11시45분

클로드 샤브롤 감독의 영화가 갖는 유사성에 대해선 새삼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주제적인 유사성뿐 아니라 샤브롤 감독의 영화에 단골로 참여하는 스탭에 관해서도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1970년대부터 모습을 드러낸 이같은 특징(당시 샤브롤 감독은 자신의 가족을 영화에 참여시키곤 했다)은 최근작에서도 발견된다. <악의 꽃>의 스탭 중에선 무엇보다 샤브롤 일가의 이름이 자주 눈에 띈다. 감독의 부인뿐 아니라 아들까지 참여한 이 영화는 명실상부하게 ‘샤브롤 가문의 영화’라고 칭할 만하다.

<악의 꽃>은 <초콜릿 고마워>처럼, 한 가족의 이야기다. 프랑수아와 미셸은 의붓남매간이지만 서로에게 사랑을 느낀다. 그들은 가족의 시선을 피해 비밀스러운 사랑을 나누고, 숙모 린은 둘의 사이를 알면서도 묵인해준다. 그런데 그녀에게는 평생토록 숨겨온, 가족에 관한 엄청난 비밀이 있다. 한편, 새어머니이자 프랑수아의 어머니 안느는 시장이 되기 위해 선거운동을 하는 중인데, 갑자기 나치 동조자들과 살인으로 뒤얽힌 안느의 가족사를 비난하는 전단이 뿌려지기 시작한다.

<악의 꽃>은 제목은 보들레르의 시에서 빌려온 것. 샤브롤 영화에 관한 이해 중에서 빠뜨려선 안 될 것 중 하나가 영화형식에 관한 강조일 것이다. 장르뿐 아니라 촬영이나 인물의 시점이 부각되는 것 역시 샤브롤 영화에서 강조되는 부분이 될 터다. <악의 꽃>은 첫 장면이 인상적이다. 카메라는 어느 집안을 염탐하듯 부드럽게 공간을 스쳐지나고 차례로 여성과 죽은 듯 보이는 사람의 모습을 순간 보여준다. 앞으로 전개될 살인극에 관한 예고를 넌지시 던지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영화에선 인물 시점으로 짐작되는 카메라 움직임이 종종 눈에 띈다. 상황이나 이야기보다 인물의 심리적 흐름이 카메라를 이동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이 흥미롭다. 이 점을 눈여겨본다면 샤브롤 영화가 늘 비슷한 주제를 되풀이하는 것 같으면서 각 영화가 색다른 개성을 지니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다.

<악의 꽃>은 프랑스 어느 부르주아 집안의 삼대에 걸친 음모와 살인을 풀어놓으면서 블랙코미디 기운을 띠고 있다. 여기에 역사적 비밀과 근친상간, 그리고 돌발적 살인이 끼어들면서 최근의 여느 샤브롤 영화에 비해 윤기나는 스릴러영화로서 구색을 갖춘다. 클로드 샤브롤 감독에 관해 설명하면서 다작의 경향을 지닌다는 것을 누락하면 곤란하겠다. 어느새 노장이 된 이 프랑스 감독은 2000년 이후에만 장편영화 3편을 완성하는 면모를 과시하고 있기도 하다. 극히 냉소적이고 비관적 어조로, 광기어린 인간 희비극을 빚어내는 클로드 샤브롤 영화는 누벨바그의 실험정신이 여전히 늙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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