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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폰다, 과거 북베트남 방문 후회한다고 고백
김도훈 2005-04-14

‘하노이의 제인’은 더이상 없다

북베트남 하노이를 방문한 제인 폰다

‘하노이의 제인’은 더이상 여기에 살지 않는다. 한 시대를 풍미한 여배우 제인 폰다(<줄리아> <귀향>). 60년대의 제인 폰다는 할리우드의 움직이는 정치적 양심이었다. 그는 흑인 운동과 반베트남 운동에 가담한 여성운동가였고, 정치적 급진주의자이자 전투적인 미국 학생운동의 중심멤버이기도 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제인 폰다의 정치적 별명은 ‘하노이의 제인’(위)이었다. 그는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72년, 미국의 적이었던 북베트남의 대공포 기지를 2주 동안 방문해 전 미국을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당대의 젊은 할리우드 여배우가 적군의 대공포 위에서 찍은 사진이 전세계의 신문들을 장식했던 것이다(뒤에 장 뤽 고다르는 이때의 보도사진들을 이용해 <제인에게 보내는 편지>(1972)라는 이미지 에세이를 만든다).

세월이란 젊은 혈기를 후회하게 만드는 것일까. 제인 폰다는 지난 4월3일 방영된 <CBS>의 한 프로그램에서 “적국의 대공포 위에 걸터앉았던 것은 미군은 물론 나에게 특전을 주었던 조국에 대한 배신이었다”고 털어놓았다. 다만, ‘하노이의 제인’이 인생 최대의 오판이었다고 털어놓은 그도 지난날을 완벽하게 부정할 수는 없었나보다. 제인 폰다는 북베트남에서 미군 포로들을 면담하거나 하노이 라디오를 통해 반전방송을 한 일마저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술회했다. “미국 정부의 거짓말 때문에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걸 폭로하고 전쟁을 끝내기 위해 뭐라도 해야만 했다.”

이제 대공포에 걸터앉은 제인 폰다의 사진은 뜨거운 지난 시절을 회고하는 증거로만 남았다. 하노이의 제인은 더이상 여기에 살지 않지만, ‘이라크의 줄리아’나 ‘아프가니스탄의 니콜’은 애초에 상상할 수도 없는 시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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