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 적은 없어도, 뉴욕이 ‘인종과 문화의 용광로’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상업의 첨단과 예술의 전위가 ‘따로 또 같이’ 공존하고 있고, 그곳의 작은 움직임들이 나비효과가 되어 전세계의 트렌드를 이끌곤 한다는 점도 눈대중과 귀동냥만으로 안다. 음악계만 해도 뉴욕이 아방가르드와 힙합의 본산이란 사실은 상식이며, 근래의 거라지 록, 댄스 펑크 등의 모태란 이야기도 음악 팬이라면 귀익은 얘기다.
브라질리언 걸스는 뉴욕에서 새롭게 떠오른 4인조 밴드다. 다운타운의 클럽 누불루(Nubulu)에서 하우스 밴드로 활동해온 이들의 독특한 혼종 댄스 음악은 얼마 되지 않아 빠른 입소문을 타고 클러버와 매체와 레이블의 주목을 끌었다. 그 결과 싱글 <Lazy Lover>에 이어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이 발매된 것. 주류 댄스그룹 같은 이름과 달리 브라질리언 걸스에는 브라질인이 없으며 여성 멤버도 한명에 불과하다. 심상치 않은 건 작명법에 머물지 않는다. 사비나 슈바(보컬)는 로마에서 태어나 니스와 뮌헨에서 자랐으며, 5개 국어 이상 구사하는 코스모폴리탄이다. 이 점은 이번 음반에 극명하게 드러나는데, 영어 외에 프랑스어, 스페인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등으로 부른 노래가 담겨 있다(<Die Gedken Sind Frei>는 중세 독일 시를, <Me Gustas Cuando Callas>는 파블로 네루다의 시를 차용한 것이다). 그외 디디 구트먼(키보드, 샘플링), 제시 머피(베이스), 아론 존스턴(드럼)도 다른 국적과 음악 경력을 가진 인물들이다.
사비나 슈바의 보컬은 곡에 따라 섹시한 느낌과 몽환적인 느낌을 조절하고, 나머지 멤버들의 악기 연주는 일렉트로니카, 라운지, (애시드)재즈/트립합, 보사노바, 레게, 프렌치 팝 등을 자유자재로 섞는다. 한마디로 쿨한 일렉트로 음악이다. 스팅의 보컬과 에어(Air)의 음악을 그루브감 넘치게 리믹스한데다 이탈리아 사운드트랙을 샘플링해 덧댄 듯한 <Lazy Lover>나 쿵짝거리는 레게의 흥겨움을 업그레이드한 <Pussy> 같은 곡은 대표적이다. 만일 “‘쿨’의 정의가 필요하다면 사전은 집어치우고 이 음반을 들어라”는 한 팬의 말은 이 음반의 단면을 적절히 드러내는 것 같다. 어쨌든 다 듣고 나면, 댄서블하면서 지적인 혼종음악을 이처럼 맵시있고 명민하게 빚어내는 솜씨가 얄밉다는 생각마저 든다. 성적도 좋고 놀기도 잘하는 ‘서울쥐’를 보는 ‘시골쥐’의 기분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