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 제작사의 불만 “도가 지나치다”
올해 들어 급격화되는 매니지먼트 업계의 발빠르고 적극적인 확장에 따라 우려의 목소리 또한 높아지고 있다. 그중 하나는 충무로 제작자들에게서 터져나오는 불만의 목소리다. 공동제작과 직접 제작이 본격화되면서 제작사의 존립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얘기다. 제작자들은 “공헌도가 있는 쪽과 지분을 나눈다는 원칙은 맞다고 보지만 지금은 도가 지나치다”고 입을 모으며, 가뜩이나 배우의 개런티가 제작비를 압박하는 상황에서 공동제작 지분까지 제공하게 되면 재투자는커녕 제작사의 생존조차 어렵다고 주장한다. 특히 매니지먼트사가 직접 제작을 꾸리게 될 경우, 신생급 제작사는 문을 닫아야 한다는 것이다. 투자사 입장에서는 마음에 드는 배우를 확보한 제작사와 바로 이야기하길 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노비스 노종윤 대표는 “투자사는 배우의 지명도보다 시나리오와 감독과 제작사의 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서 투자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 스타가 거의 없는 <마파도>가 흥행에 성공한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그는 말했다. 영화제작 경향이 바뀔지도 모른다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심재명 대표는 “90년대 중·후반에는 프로듀서 중심의 영화가 만들어졌는데 이런 방식이라면 배우의 필요와 성향에 따른 영화만 양산될지 모른다”고 말한다. 시네마서비스 강우석 감독은 “이런 추세대로 가면 매니지먼트 또한 결국 죽는 길이다. 결국 편하게 영화를 만들려는 대기업이 거대 자본으로 매니지먼트에 들어올 것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현재 영화제작가협회는 배우 에이전트의 제작 등 겸업을 금지하는 미국의 독점금지법에 상응하는 법안을 연구 중이다. 매니지먼트가 영화제작에 들어오는 길을 공식적으로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매니지먼트 내부에서도 과당 경쟁 우려
또 하나의 목소리는 매니지먼트 업계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지나치게 과열된 경쟁 때문에 자칫하면 매니지먼트 업계를 공멸의 길로 몰고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S사의 대표는 “불과 5∼6년 전만 해도 전속금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매니저 능력의 경쟁력이 결국 전속금의 액수로 평가받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다른 매니지먼트 업체 대표도 “지금의 상황은 싸이더스가 만들어진 뒤 벤처캐피털 등이 대거 유입돼 대형 매니지먼트사가 우후죽순처럼 생긴 2000∼2001년의 분위기와 흡사하다”며 “자칫하면 매니지먼트사와 배우가 다시 한번 큰 상처를 입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배우와 매니지먼트사의 불균형이 심각하다며, 실질적 힘이 있는 연기자협회와 매니지먼트협회를 만들어서라도 공생을 위한 대화를 벌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매니지먼트계의 독주에 브레이크를 거는 이들의 목소리는, 하지만 잘 들리지 않는다. 변화를 향해 나아가는 매니지먼트의 질주가 그만큼 폭발할 것 같은 기세라는 얘기다. 혹자는 매니지먼트계의 산업화 과정에서 나오는 불가피한 소동이라고, 혹자는 건전한 영화산업의 붕괴를 예고하는 신호탄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핵심에 돈이 있다는 사실이다. 투자, 제작, 배급에서 이미 겪었듯 매니지먼트계에서도 이제 본격적인 머니게임이 시작된 것이다. 충무로는 어쩌면 MBA 출신들과 각종 펀드가 주도하는 유사 할리우드행 폭주기관차에 이미 올라타고 있는지도 모른다.
“결국 기획과 아이템이 있어야 살아남는다”
한영택 먼데이엔터테인먼트 인터뷰
-에이스미디어와 합병했다.
=에이스미디어는 원래 드라마나 방송쪽으로 활동하는 외주제작사였는데 이번에 매니지먼트 사업을 크게 확장하기로 계획했다. 마침 대표님을 잘 아는 사이이기도 해서 합병을 결정했다. 에이스에는 김제동, 지석진, 김완선, 이재은 등이 소속돼 있고 음반사업부도 있다. 합병 회사의 이름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창립 작품으로는 영화를 올 여름쯤 들어갈 계획이다. 지금 개발 중인 코미디와 진지한 드라마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공동제작을 해왔다.
=<시실리 2Km>와 <파송송 계란탁>에 참여했다. 원래 영화를 자체 제작하고 싶었으나 경험없이 뛰어들기에는 무리가 있다 싶더라. 영화제작을 배워가는 과정이라 생각하면서 두 작품을 공동제작해봤다. 첫 공동제작 영화인 <시실리 2Km>를 하면서 한맥영화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합병으로 달라지는 게 있나.
=음반과 영화를 아울러 더 활발히 움직일 것이다. 특히 영화는 이왕 손댄 거니까 뭔가를 계속 시작해나갈 것이다. 먼데이가 해왔던 부분은 지금까지도 영화 일이었으니까 영화 일만 할 거다. 음반과 방송은 에이스팀이 맡는다. 그리고 예전에는 자금조달이 힘들어 생각도 못했으나 지금부터는 꾸준히 새로운 배우들을 영입하려고 노력 중이다.
-매니지먼트사들이 급속히 합병하는 추세다.
=나는 합병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구멍가게가 없어지고 마트로 가는 추세 아닌가. 근래 경기가 너무 추웠다. 지금 남아 있는 소규모 매니지먼트사들도 결국 다 합병으로 가지 않을까 싶다.
-충무로에서는 매니지먼트 업체의 힘이 지나치게 강해졌다고들 한다.
=그렇게 커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 않을까. 추세가 그렇다. 우리가 가진 아이템과 기획이 좋으면 제작사들이 먼저 하려고 덤벼든다. 반대로 제작자들이 좋은 아이템과 기획을 제시하면 배우와 매니저가 먼저 하려고 덤벼들 것이다.
-앞으로도 공동제작을 계속 할 것인가.
=물론이다. 아직도 영화를 배워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제작자는 제작만, 매니저는 매니저 일만 해야 한다는 것은 고정관념 아닌가. 매니저들은 우리가 가진 좋은 콘텐츠와 배우를 잘 활용하자는 생각을 다 갖고 있다. 물론 제작하는 분들이 경계한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결국엔 기획과 아이템이 있는 사람들은 살아남는다. 물론 제작이라는 게 쉬운 게 절대 아니니까 우리도 지나치게 쉽게 가려고 하진 않는다.
“몸값은 결국 영화사가 올린 것 아니냐”
박성혜 싸이더스HQ 매니지먼트 본부장
-제작자들은 싸이더스HQ가 공동제작 등의 분위기를 이끌었다고 비판한다.
=전반적 추세를 보면 우리만 하는 게 아니다. 제작자분들은 환영하지 않을지 몰라도 매니지먼트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는 환영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매니지먼트 사업의 활로 개척이라는 의미도 있다. 결국 요즘의 변화는 스타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매니지먼트의 기업화가 자리를 잡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불가피한 성격의 것이다.
-매니지먼트의 공동제작에 대해 ‘다 차린 밥상에 숟가락 얹기’라는 비판을 하지 않나.
=공동제작을 해봐야 절반 정도는 망했다. 우리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전 제작과정에 개입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그중에서 캐스팅과 투자의 일부를 책임진다는 자세였다.
-배우 개런티가 너무 올랐다고 비판한다.
=업계 종사자 입장에서도 개런티의 적정 수준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제작사의 책임도 있다. 꾸준히 경력을 쌓아온 A급 여배우보다 어느 날 갑자기 뜬 가수에게 많은 개런티를 준 것은 제작사 아닌가. 또 기획이 뛰어난 영화를 만들면 대단한 배우를 쓰지 않아도 된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은 스타 감독과 믿을 만한 제작사가 최고 스타들과만 제작을 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몸값은 결국 영화사에서 올린 것 아닌가.
-싸이더스HQ가 캐스팅난을 만들었다고도 한다.
=지금 30대 여배우에겐 맞는 작품이 없다. 들어오는 시나리오는 애 엄마인데 젊은 남자와 사랑하는 것이나 두 남자 사이에 낀 꽃 같은 역할뿐이다. 뭔가 새로운 것을 하고 싶어하는 배우들에게 이런 작품을 권할 수는 없다. 그들도 싫어한다. 임수정 같은 경우도 영화쪽으로 계속 키우고 싶은데 <…ing> 이후에는 여고생 역할만 들어오더니 <미안하다, 사랑한다> 이후론 청춘물만 들어온다. 배우가 썩 마음에 들어하거나 미래를 위해 도움이 되는 게 없다는 게 문제다.
-매니지먼트의 힘이 너무 세졌다고들 한다.
=오히려 지금이 정상이다. 힘의 불균형이 예전엔 너무 심했던 거다. 사실 방송 같은 곳은 아직도 세다. ‘연장방송을 하려면 사전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조항을 계약서에 넣으려 하면 그냥 구두로 하자고 한다. 우리 입장에서는 아직도 동등하지 않은 것 같은데, 우리와 일하면 까다롭다, 불편하다는 말이 나온다. 적응기간이 필요한 것 같다. -배우 전속금이 올라가고 있다.
=천정부지로 솟고 있어 걱정이 된다. 우리도 그렇게 느끼는데 순수 매니지먼트 업체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워지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