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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무술감독 정두홍의 꿈
문석 2005-04-08

정두홍 무술감독을 만난 건 금요일 늦은 밤이었다. 그에 관한 기사를 쓴 게 인연이 돼 한동안 촬영현장이나 사석에서 반갑게 만나곤 했는데, 최근 1년 동안은 통화나 간간이 하는 정도로 심심한 관계가 됐었다. 그와의 만남은 항상 즐거웠다. 그를 막 알기 시작할 때는 남자다운 외모 뒤에 가려져 있는 섬세하고 여린 감성을 만나는 게 재미있었고, 어느 정도 알게 된 뒤로는 한국영화와 스턴트에 대한 그의 뜨거운 열정을 확인하면서 감동을 먹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는 만날 때마다 자신이 맞닥뜨린 새로운 목표를 보여줬다. 한국적 와이어 액션이라든가 완전히 새로운 형식의 액션 등, 그는 최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넘어서기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것 같았다.

동행한 후배 기자의 별난 입맛을 고려해 활어회 대신 냉동육을 먹으러 테이블 앞에 앉을 때만 해도 그의 모습은 변치 않은 듯했다. 하지만 그에게서 묘하게 힘빠진 기운을 느낄 수 있었던 건 불 위에 오른 고기가 채 녹기 전이었다. <주먹이 운다>와 <달콤한 인생>, 두편의 화제작에 함께 참여해 피곤했던 탓일까. “그런 게 아니라, 앞으로 8월까지 놀아야 한다니까.” 그는 8월 크랭크인하는 조동오 감독의 <중천> 이전까지 섭외받은 작품이 없다고 했다. 혹여 섭외가 들어오는 경우에는 개런티가 너무 비싸다는 반응이라고 했다. 그는 “나를 험담하는 다른 스턴트계 인사들 때문에 더 섭섭하다”고 덧붙였다. 자신이 노력해서 기껏 스턴트에 대한 대우를 올려놓았지만 스턴트계의 경쟁이 과열되다보니 ‘덤핑’이 횡행하게 됐고, 결국 자신은 ‘유독 비싼 스탭’으로 몰리게 됐다는 얘기였다. “다 좋은데, 정두홍이는 배우 역할 주지 않으면 무술감독 안 한다는 말까지 돌더라고요.” 그는 지독한 외로움을 느끼는 듯 보였다.

정두홍 감독이 처한 상황을 슬럼프라고 하건 우울증이라 하건, 그가 다시금 영화를 위해 뜨거운 혼을 쏟을 거란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를 형제처럼 여기며 신뢰하는 감독들과 그만의 능력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제작자들이 존재하는 탓이다. 하지만 나는 기분전환 차원에서라도 정 감독, 아니 두홍이 형에게 다른 무언가를 권한다. 그건 연출, 그러니까 ‘무술’ 떼고 그냥 ‘감독’이 되라는 거다. 홍콩의 정소동, 원화평 감독처럼(사실, 오래전부터 그에게 감독의 길을 권유한 이는 류승완 감독이다). 애초 그는 무술감독을 잘하기 위해서 연출에 관심을 쏟았다. 현장에서 감독 어깨 너머로 배운 연출력은 <무사> 때 김성수 감독이 그에게 아예 B카메라를 주고 액션신 연출을 맡기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이후 그는 디지털카메라와 편집기를 구입했고, 서울액션스쿨의 후배들을 배우로 놓고 다양한 습작을 만들었다. 그와 가까운 이에 따르면, 액션 연출력만큼은 수준급이라고 한다.

불판 한 구석에서 고기 조각이 오그라들고 있을 때, 그는 말했다. “연출이오? 언젠가는 꼭 해보고 싶죠.” 이어 그는 데뷔작을 만들게 되면 액션영화가 아니라 어릴 때 기억을 소재로 서정적 영화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려면 액션보다 드라마 연출력이 필요한데, 준비가 됐는지 모르겠다고 얘기했다. 그리고는 ‘액션영화도 만들고 싶다, 단편을 먼저 만들어야 할 것 같다, 도와줄 프로듀서가 필요하다’ 등의 이야기가 취한 공기 사이로 들려왔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일개 기자라는 사실이 안타까워졌다. 그리고 팍팍한 요즘 충무로에서 정두홍의 꿈에 귀기울여줄 제작자가 과연 있을까,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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