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대가 높기로 유명했던 제인 오스틴 소설 <오만과 편견>의 다아시는 천생연분 엘리자베스를 보고도 첫눈에 알아보지 못하는 불상사를 저지른다. ‘몸매의 균형을 깨뜨리는’ 몇 가지 점을 발견하고도 다아시가 결국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은 엘리자베스의 지성과 재기 덕분이다. 하지만 <오만과 편견>을 기본 줄거리로 거린다 차다 감독이 만든 뮤지컬영화 <신부와 편견>의 다아시는 원작에서처럼 오만하게 굴 수 없다. 랄리타가 누구라도 첫눈에 반할 미인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일은 랄리타 역에 아이쉬와라야 라이(33)를 캐스팅하면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한 필연적인 운명의 장난이다.
9살 때부터 모델로 활동했지만 건축가가 되기 위해 인도 영화계의 숱한 러브콜을 뿌리쳤던 라이는 1994년 미스 월드의 왕관을 쓴 뒤, 아마도 세계 평화를 위해(?) 영화계에 뛰어든다. 발리우드의 공주가 된 라이는 온갖 인도의 기록을 경신하기 시작한다. 7년 만에 50편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하고, 2003년 칸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첫 인도 여배우이자 <타임> 표지를 장식한 인도의 첫 번째 배우가 되었고,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도 꼽혔다. 같은 해 <롤링스톤>에 처음 실린 인도 배우가 되었다. 이쯤 되면 줄리아 로버츠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고 칭송한 것은 라이를 수식하는 수많은 장밋빛 단어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신부와 편견>의 거린다 차다 감독은 “(<신부와 편견> 이후) 그녀는 원하는 역을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고, <베니티 페어>로 알려진 미라 네어 감독은 라이가 “제2의 페넬로페 크루즈가 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나는 내가 성공할 것임을 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놀라지 않는다”고 말하는 자신만만한 그녀는 <신부와 편견>의 랄리타가 슈퍼모델처럼 보이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에 20파운드를 찌웠다(영화를 보면, 이전의 그녀가 얼마나 깡말랐을지 상상도 안 간다).
“사람들은 내 눈 때문에 나를 기억한다. 그래서 사후에 눈을 기증하기로 했다”며 사후 안구 기증 서약서에 서명했다는 얘기까지 듣고 나면, 녹색과 회색이 비치는 푸른눈의 그녀가 너무 완벽해서 얄밉다는 생각에 꼬집어주고 싶은 심술이 들 정도다. 라이는 심지어 오랫동안 좋아했다는 배우 메릴 스트립과 <카오스>에서 함께 연기하는 소원마저 성취했다.
“키스신을 찍은 적도 없고, 앞으로 할 예정도 없다”는 라이의 고집 덕분에 <신부와 편견>의 다아시는 혼이 나갈 정도의 사랑에 빠져도 마지막까지 랄리타의 입술을 얻지 못한다. 그래도 행복하게 미소짓던 다아시처럼, 라이는 앞날에 기다리는 것이 해피엔딩임을 잘 알고 있다. 레드 카펫과 인터뷰의 나날, 그 할리우드 챕터는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