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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후죽순 방송 토론 선정주의 우려

시청률의식 유명인사 불러 논리없이 망언·잡담 쏟아져

지난달 4일 교육방송 <생방송 토론카페> ‘2005 친일논쟁’에 가수 조영남, 전여옥 한나라당 대변인, 구로다 가쓰히로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과 김삼웅 독립기념관장이 출연했다. 조씨의 <맞아죽을 각오로 쓴 친일선언>이 한참 논란을 거듭하던 터에 기획된 토론이었으나, 마침 한승조 전 고려대 명예교수가 이른바 ‘친일 기고’로 파장을 일으켜 더욱 많은 이들의 관심이 쏠렸다. 그러나 알맹이 없는 토론 결과에 많은 시청자들은 실망했다. 뜨거운 논쟁은 벌어졌으나, 합리적인 결과물을 내놓기는커녕 되레 또 다른 망언과 이에 따른 논란을 부추기거나 출연자들의 부적절한 발언이 여과없이 전파를 타는 결과만 낳았다는 것이다.

패널의 유명세를 이용해 지루하고 딱딱한 방송 토론에 시청자들의 눈길을 잡아끄는 데는 성공했지만 ‘합리적인 토론’이 실종되고 ‘말싸움’과 ‘망언’만 남은 자리엔 토론마저 ‘센세이셔널리즘’에 기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가득했다. 이와 함께 3월 한달간 여러 방송사들의 토론을 살펴보면, 다양한 의견의 합리적 조화를 이루려하기보다는 화제가 되는 인사를 불러 이름값으로 시청률을 올리려는 토론 프로의 혐의가 없지 않다.

특히 잇따른 친일문제 관련 토론들이 이런 혐의를 드러낸다. 위성·케이블 기독교방송이 10일과 17일 2주 연속으로 개최한 토론이 그렇다. ‘친일 비판자는 좌익?’이라는 주제로 10일 열린 토론은 최소한의 품위도 지켜지지 않은 자리였다. 마주 앉은 지만원 사회발전시스템연구소 소장과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는 ‘자폐증’ ‘정신병자’ 같은 인신공격적 발언까지도 아끼지 않았다. 17일 지 소장과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이 ‘진짜 보수는 누구인가’를 놓고 벌인 토론은 이보다 더했다. ‘오물’ ‘꼴통’ 등 토론 상대에 대한 질 낮은 비하적 표현이 거리낌없이 터져나왔고, 토론의 기본조차 무시하는 발언이 쏟아졌다. 문화방송도 이에 질세라, 17일 <100분 토론> ‘위기의 한일관계’에 구로다 지국장을 불렀다. 인지도 높은 토론 프로이어서 그런지 인신공격 발언은 없었지만, 토론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다. 교육방송 토론과 달리 구로다 지국장은 “독도는 한국땅, 다케시마는 일본땅”이라는 등 농담을 던지는가 하면, ‘언론의 자유’가 없다며 토론을 기피하기도 했다. 합리적 토론이 불가능한 패널을 토론에 부른 제작진의 의도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많았다.

30일 방송된 에스비에스 <수요토론, 이것이 여론이다>는 때 아닌 ‘성형열풍’을 논제로 삼아, 마광수 연세대 교수,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 최창호 사회심리전문가와 유인경 뉴스메이커 편집부장을 마주 앉혔다. 토론 주제도 논란 거리이지만, 토론 진행이 경악할 수준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패널들이 논제와 무관한 ‘농담 따먹기’ 식의 발언을 일삼고, 상대방 의견에 대한 경청이 전무한 말싸움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한 시청자는 “토론 프로에서 볼 수 있던 진지함은 어디 가고 그저 말장난에 불과한 잡담에 가까운 얘기들을 하고 있다. 차라리 코미디를 보겠다”고 비꼬았다.

1일 밤 교육방송 <생방송 토론카페>는 ‘이종격투기 스포츠인가, 폭력인가’라는 주제를 잡고, 최홍만 등 이종격투기 선수들을 패널로 불렀다. 씨름 선수로 활약하다 격투기로 전향한 뒤, 언론의 관심을 받아온 최홍만이 나온다는 사실만으로도 많은 이들이 채널을 고정했다.

이에 대해 한 방송 관계자는 “이른바 유명인사라는 사람들이 논리도 갖추지 않은 채 토론에 출연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토론마저 선정주의로 가는 경향이 가속화되고 있다”며 “이대로 가면 토론이 아니라 쇼 프로라고 불러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