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말 들으며 마음까지 들어야”
“우리 오빠 말타고 서울 가시면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동요 <오빠생각>에서 누이동생은 오빠를 기다린다. 오빠가 가져다줄 비단구두는 누이동생의 마음을 알아줄 오빠와의 소통이며 또한 공감이다. “어린 누이에게 오빠란 존재는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고 언제든지 나와 공감하고 내편이 돼주는 존재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씨는 직접 동요을 부르며 “우리 모두에게도 ‘오빠’라는 존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한국방송 1텔레비전 <낭독의 발견>(30일 밤 11시35분 방송)에서다.
그는 다양한 정치사회적 문제를 심리학적 틀거리를 가지고 날카롭게 분석·비평하는 칼럼을 써왔는데, 특히 남성심리 분석에 뛰어난 능력을 보여왔다. 이를 바탕으로 <남자 대 남자>라는 책을 내놓았고, 최근엔 <사람 대 사람>(개마고원)을 펴냈다.
이 책에서 정씨는 자동차 접촉 사고를 사례로 들며 인간의 자기중심적 사고를 분석했다. 이를테면, “내가 하면 차선 변경이고 네가 하면 끼어들기”라는 식. 곧, “동일한 물리적 상황에서도 ‘내 현실’과 ‘네 현실’은 다르게 인식되고, 사람마다 현실 감각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결정적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여기에서, 정씨는 ‘공감’이라는 화두를 제시한다. 다른 이의 행동을 현상으로만 파악할 것이 아니라, 그 동기부터 이해하자는 것이다.
정씨는 한국인 특유의 홧병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한다. 홧병은 오랫동안 자기 감정이 공감받지 못한 상황에서 부정적 감정이 누적되어 발생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이는 감정을 서로 공감하고 공감받는 문화가 부족한 우리사회의 현실을 반영한다.
정씨는 정신과 의사의 핵심 능력 역시 이 지점에서 찾는다. 현대인들이 생활영역에서 자기감정을 솔직히 털어놓고 상대방의 공감을 얻는 것이 어려운 만큼, 이들의 마음을 돌봐야할 정신과 의사들은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래서 그는 “남의 말을 들으면서 마음까지 들으려 한다”고 털어놓는다.
또 김규항의 칼럼집 <비(B)급 좌파>의 한 부분을 읽고 자신이 생각하는 ‘진보와 개별화’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진보란 사회적 소수자 혹은 인간 개개인의 현실에 깊이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이다. <사람 대 사람> 서문에서 밝힌 “진보의 끝은 개별화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지론과 이어진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국밥이 한 그릇인데/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사람들 가슴에 따듯하게 덮어줄 수 있을까/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낭독의 발견> 끝자락, 함민복 시인의 <긍정적인 밥>을 낭독하는 정씨의 모습에서, 그의 글쓰기가 지향하는 공감과 개별화의 한 대목을 발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