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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붕 두 나라, 그 웃기는 사연, <디 아더 사이드>
이종도 2005-03-28

4월3일까지|문예진흥원 예술극장 대극장|02-747-5161

라디오 전파를 타고 피노체트의 쿠데타 소식이 들렸다. 1973년 9월11일 오전 8시30분이었다. 작가 아리엘 도르프만에겐 결코 잊을 수 없는 시간이다. 그건 칠레 민주주의가 독재자의 도끼에 목이 날아간 시간이며, 고국의 땅을 등지고 망명을 해야 할 시간이며, 그리하여 스페인어가 아닌 영어로 글을 써야 할 보편적 작가의 운명에 맞닥뜨린 시간이며, 동지들은 죽고 자신은 살아남게 된 시간이다. 아옌데 대통령은 ‘살아남아서 쓰라’고 명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운명적 시간은 그의 신작 연극 <디 아더 사이드>(The Other Side)에서도 그 끝나지 않는 감동의 울림을 들려준다.

끝없이 전쟁을 일으키는 두 나라 콘스탄자와 토미스 사이에 집 한채가 서 있다. 국경 위의 집에 살고 있는 아톰 로마(권성덕)와 레바나 쥴랙(김성녀)은 국경에 널려 있는 시체를 수습해 파묻으며 그 수고의 대가로 먹고사는 노부부다. 레바나는 오래전 집을 나간 아들이 돌아오는 게 소원이다. 남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들이 죽었을 것이라고 믿고 있고, 하루빨리 도시로 이사가고 싶어한다. 포성이 끊이지 않던 어느 날, 라디오 잡음으로 휴전이 선포된다. 할렐루야! 헨델의 음악과 함께 부부는 잠시 침대 위를 뒹굴어보지만 이윽고 굉음과 함께 벽 한가운데를 부수며 국경경비대원(정호붕)이 난입한다. 침대 한가운데를 노란 끈으로 나눈 경비대원은 침대를 경계로, 국적이 다른 노부부를 갈라놓는다. 엘리아스 카네티의 단편소설 <국경 위의 집>처럼, 집 한가운데가 국경선으로 나뉜다는 부조리하고 웃기고 가슴 아픈 설정이다. 노부부는 한집에서 서로를 만나기 위해 비자를 신청해야 하고, 아내가 남편에게 음식을 만들어 건네주기 위해 취업 비자를 만들어야 한다.

도르프만의 전작 <죽음과 소녀>처럼 단 한 장소에서 만드는 팽팽한 긴장이, 유머와 시적인 통찰과 서로 스며들면서, 가깝게는 독도 멀리는 이라크의 비극을 떠오르게 한다. 망명작가가 쓴 보편적인 절망과 희망의 언어가 큰 메아리를 만들어내지만, 손진책이 일본 신국립극장에서 초연한 스펙터클한 무대가 문예진흥원 극장의 내부 사정 때문에 사소해지면서, 대배우 권성덕이 일부 대사를 씹으면서 조금 작아진다.(일요일 저녁 공연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