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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를 넘나드는 18곡 모듬,

개악된 저작권법으로 인해 음반이나 디지털 음원을 구입하는 일이 점점 더 ‘찍기 혹은 뽑기’에 가까워지는 것 같다. 샘플 대신 감(感), 귀 대신 눈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란 얘기다. 그러니 음반 커버(이른바 ‘재킷’)의 의미는 더 커진 듯하다. 사실 청각적 알맹이를 시각적으로 대변한 수단이란 점에서 음반 커버가 중요하지 않았던 시절은 없었지만 말이다.

넬리 매케이(정확히는, 넬리 미카이)의 데뷔작 <Get Away From Me> 커버를 보자. 모자 달린 빨간 코트 차림의 젊은 금발 여성이 ‘나무들같이’ 팔 벌리며 활짝 웃고 있다. 그렇다면 밝고 따뜻한 음반? 재지한 보컬, 통통 튀는 피아노, 발랄한 레게 리듬이 어울리는 첫곡 <David>을 들으면 ‘예상 범위 내’라는 안도감이 들 것이다. 재즈가 흐르는 깔끔한 카페에서 맛깔스런 칵테일을 맛보는 듯한데, 이런 기분은 이어지는 <Manhattan Avenue>에도 마찬가지다. 귀를 간질이는 이 감미로운 재즈 발라드를 듣다보면 고급스런 흥취로 각광받는 노라 존스, 다이애나 크롤 등의 보컬 재즈가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우아한 감상’은 여기까지.

에미넴을 떠올리게 하는 랩/힙합 넘버 <Sari>는 자주 튀어나오는 걸진 용어(‘fuck’)로도 신랄하고 거침없는 메시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음반 커버를 다시 집어들면, 가만, 낙서로 어지러운 벽과 비계(속칭 ‘아시바’)로 구성된 사진의 배경이나, 방긋 웃는(조롱하는?) 표정 모두 범상치 않음을 깨닫게 된다. 앞면 귀퉁이의 미국판 ‘18禁’ 딱지(Parental Advisory)와 뒷면의 ‘넬리 매케이는 동물의 윤리적 대우를 위한 사람들(PETA)의 자랑스런 멤버입니다’라는 문구를 확인하고 나면, 음반 표제인 ‘Get Away From Me’가 노라 존스의 데뷔작 <Come Away with Me>의 교묘한 비틀기임을 간파하게 된다.

이 음반은 빌리 홀리데이와 페기 리부터 랜디 뉴먼과 에미넴과 PJ 하비까지, 다시 말해 스탠더드 재즈, 팝부터 카바레, 뉴웨이브, 랩/힙합, 얼터너티브까지 다기(多岐)한 음악들이 분방하고 발칙하게 뒤섞여 있다. 연극으로 비유하면, 오프브로드웨이 뮤지컬에 가깝다. 더 세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백마디 말보다 두장의 CD에 담긴 열여덟곡을 들어보는 게 나을 거라고 말하고 싶다. 작고한 영화평론가의 어투를 빌리면, ‘놓치면 후회하십니다’에 해당하는 음반이라는 말을 사족으로 남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