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이후 재즈와 록은 마일스 데이비스(밴드)와 지미 헨드릭스로부터 비롯되었다. 이런 표현은 물론 ‘고의적인 과장’이다. 하지만 재즈에 록을 녹여내고 싶어한 마일스 데이비스와 록에 재즈의 어법을 담아내고 싶어한 지미 헨드릭스가 1960년대 말 서로를 알아보고 만나지 않았다면, 그리하여 함께 연주하고 서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재즈와 록의 나이테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런 가정을 하다보면 새삼 그들의 무게를 실감하게 된다.
‘마일스 데이비스 사단’에서 묘목으로 자란 뒤 독립해 1970년대를 풍미한 다른 연주인들과 마찬가지로, 기타리스트 존 맥러플린(John McLaughlin)도 재즈 록 퓨전 스타일의 뿌리가 된 마일스 데이비스의 <Bitches Brew>(1969)에 참여한 뒤 1971년 자신의 밴드 마하비슈누 오케스트라(Mahavishunu Orchestra)를 결성하였다. 이 밴드가 웨더 리포트, 리턴 투 포에버와 함께 ‘퓨전의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었다는 건 재즈 팬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
최근 라이선스로 발매된 마하비슈누 오케스트라 2집 <Birds of Fire>(1972)는 재즈 록 퓨전의 걸작이자 ‘불멸의 명반 100선’류의 리스트에 꼭 포함되는 음반이다. 이 음반에서 존 맥러플린은 제리 굿맨(바이올린), 얀 해머(키보드), 릭 레어드(베이스), 빌리 코뱀(드럼) 같은 쟁쟁한 뮤지션들과 함께 분방하고 정열적이면서도 치밀하게 직조한 음악을 완성했다. 모두 주옥같은 곡들이지만, 속사포처럼 작렬하는 강렬한 속주 솔로가 메기고 받으며 10여분간 소용돌이치는 <One Word>, 훗날 알 디메올라, 파코 데 루치아와의 어쿠스틱 기타 트리오의 전조를 암시하는 <Thousand Island Park>, 컨트리/포크풍 목가적 분위기가 수미상관을 이루는 <Open Country Joy>는 특히 인상적인 넘버.
<Birds of Fire>가 33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나온 이유는 지난 2월에 열린 존 맥러플린의 내한 공연 때문이다. 인도 음악인들과 함께 리멤버 샥티(Remember Shakti)란 밴드로 내한한 그의 공연을 보지 못했다면, 이 음반으로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참고로, 재즈와 인도 음악의 뛰어난 결합을 실황으로 들려주는 ‘오리지널’ 샥티의 걸작 <Shakti with John McLaughlin>(1976)도 최근 라이선스 발매되었다. 두 음반 모두 재즈(및 월드뮤직)에 관심을 갖는 이라면 반드시 들어야 할 음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