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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군 투덜양] 울렸으면 책임을 져야지, <네버랜드를 찾아서>

투덜군, <네버랜드를 찾아서>에서 옥의 티를 발견하다

스스로 공력을 드러냄이 전혀 없으면서도 드높은 경지를 이루어내는 자야말로 진정한 고수라 한다면, <네버랜드를 찾아서>는 단연 고수의 영화다. 애써 공을 들인 흔적을 남기지 않으면서도 어느 구석 하나 허투로 내버려두지 않는 자를 장인이라고 한다면, <네버랜드를 찾아서>는 솜씨 좋은 장인의 영화다.

멀리는 <알렉산더>, 가깝게는 <에이비에이터> 그리고 <여자, 정혜>에 이르기까지 ‘내 이렇게까지 최선을 다해 성의를 보였는데도 상 안 주면, 그건 니가 나쁜 놈인 거’를 탁 까놓고 역설하고 있는 각종 영화제용 영화들이 국내외 각계각층에서 양산되고 있는 작금, 자신의 범상찮은 재능을 오로지 스크린 안쪽으로만 조용히 집중시키고 있는 이 영화는, 그렇기에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하나, 털어 투덜거리 하나 안 나오는 영화 없다고, 이 영화에도 심각한 문제점이 하나 있는 바, 그것은 이 영화가 도무지 관객을 배려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것은 영화가 지나치게 잔잔하다거나 은근하다거나 하는 점을 지칭함은 아니다. 앞서도 말했듯이, 드러내지 않고 이루는 것이야말로 최고 고수의 경지가 아니던가.

문제는 당 영화가 관객을 울리는 방법에 있다. ‘아 글쎄 이 대목에서 제대로 한번 울어주셔야 본전 뽑으시는 거라니깐!’을 울부짖지 않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은근스리슬쩍 관객을 감정이입의 도가니탕 속으로 몰아넣는 것까지는 투덜거릴 바 없음이다. 하지만 적당할 때 과감히 끊고 나오는 지혜가 있어야만 건강한 배변생활을 영위할 수 있듯, 관객 울리는 일에도 적당할 때 끊어주는 미덕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야만 관객은 수분범람으로 흐트러진 안구 주변을 수습하여 정상적인 사회복귀를 도모할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 아닌가. 하지만 당 영화는 오히려 극장 내부가 밝아지기 직전, 맨 마지막 장면에서 장마철 팔당댐마냥 눈물 그렁그렁 맺혀 있는 소년의 모습을 장기간 보여줌으로써 관객을 왕창 감정이입시켜놓은 뒤, 나 몰라라 엔딩 크레딧을 올려버림으로써 일부 눈물 많은 관객을 아노미의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무책임한 작태를 보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사실 필자는 이러한 관객과의 기초 상거래 질서 위반사례 외에는 <네버랜드를 찾아서>에서 뭔가 빠지는 점을 발견하기 어렵다. 특히 <밀리언 달러 베이비>와 비교해서 말이지.

이 영화가 비록 이번 아카데미에서 덜렁 작곡상 하나만 받았다고 한다만, 흥, 상 따위야 아무려면 어때. 상이 아닌 영화를 좋은 것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잖은가. 물론 그 반대 또한 마찬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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