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좀 심하다 싶었다. 지상의 적들과 맞서 싸우는 언더그라운드 레지스탕스들의 퀴퀴한 소굴이 이런 모습일까.
‘앤쏠로지 필름 아카이브’는(Anthology Film Archives)는 ‘자고로 씨네마테크라면 이 정도는 후줄근해야 제 맛이지’ 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극장이다. 그 흔한 간판 하나 안 달려 있는 이 불친절한 극장을 주소 없이 찾아가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게다가 양쪽으로 굳게 닫힌 위풍당당한 철재 문은 중세 수도원의 그것보다 견고하고, 영사시설은 열악하기 그지 없다. 올해 초 이 영화관에서 허 샤우시엔의 <연연풍진>을 볼 때 중간에 상영이 1번 멈추었고, 포커스는 10분에 한번 꼴로 나갔다. 게다가 마을 소강당 같은 극장에 겸손하기 그지없는 허술한 의자라니. 그것은 마치 ‘자학성 영화광’을 위한 완벽한 고문 시스템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곳을 미워하거나 멀리 할 수 없는 이유는 동시대 독립영화부터 그 옛날 고전명작까지 세계의 희귀하고 진귀한 영화들을 찾아서 수시로 상영해대는 알찬 프로그램 때문이다. 문을 열기까지는 “누가 여기서 영화를 볼까” 해도, 문을 열면 늘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게다가 이번 주는 이 ‘고문시스템’을 향해 긴 줄까지 늘어서 있었으니 뉴욕은 정녕 ‘SM’의 도시던가.
‘뉴욕 언더그라운드 필름 페스티벌’(3월 9일-15일)은 영화관 분위기와 너무나도 찰떡궁합인 영화제였다. 영화제 내내 로저 코먼의 후예들이 만든 B급 무비에서 다양한 다큐멘터리까지 저 예산과 고도의 상상력이 접합된 하이브리드 영화들이 ‘유령의 집’의 귀신들 마냥 여기저기서 출몰했다. 물론 언더그라운드 영화제라는 분위기에 걸맞게 영화를 보러 줄을 선 관객들 역시 ‘게토’ ‘히피’ ‘고딕’ 같은 단어들이 마구 떠오르는 차림새가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극장 앞에는 맥주며 와인이 마음껏 드시라고 널려져 있으니 상영장 분위기는 말 안 해도 짐작이 갈 것이다. 그러나 이 자유로운 ‘음주관람’에도 불구하고 잡담을 나누거나 술에 취해 가무를 하거나 관람에 피해를 주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아, 자주 화장실을 가는 아저씨는 있었다) 대신 약간의 음주는 이 ‘낮은 데로 임한’ 관객들에게 영화의 한 장면 한 장면에 열렬히 반응토록 만들었다.
이 시끌벅쩍한 영화제의 개막작은 바로 아시아 아르젠토의 신작 <마음만큼 기만스러운 것이 있으랴>(The heart is deceitful above all things) 였다. 국내 관객들에겐 <트리플X>의 배우로 얼굴이 알려져 있는 이탈리아 호러영화의 대부 다리오 아르젠토의 딸 아시아 아르젠토는 <스칼렛 디바>에 이어 <마음만큼…>에서도 출연뿐 아니라 직접 연출까지 맡았다. 이 영화는 거리의 여자였던 엄마의 손에 자라난 J.T. 르로이라는 남자의 자전적 소설을 영화화 한 것이다. 위탁부모에게 키워지다가 쓰레기 같은 삶을 사는 십대 엄마에게 돌아가야 했던 소년. 그에게 하루하루는 매번 탈출을 감행해야 하는 지옥 같다. 트럭운전사에게 몸을 팔고, 바에서 스트립 쇼를 하고, 마약과 짐승 같은 남자들에 취해서 사는 엄마는 사랑 받은 적도, 사랑하는 법도 모르는 여자다.
소년은 결국 엄마의 애인에게 항문강간을 당한 채 병원으로 후송 되고 친할아버지(피터 폰다)의 집으로 옮겨진다. 하지만 이곳 역시 또 다른 의미의 지옥이다. 기독교 광신도에 기이한 방법으로 아이들을 사육하는 조부모의 집에서 소년은 고사리 같은 손에 성경책을 들고 거리전도에 나선다. 그러나 길가에서 그를 잡아 끄는 건 다시 찾아온 엄마다. “나도 한때 여기 서서 너랑 똑 같은 짓을 했지. 난 이 동네가 정말 진절머리나”. 아들을 다시 찾은 엄마는 트럭창문 밖으로 성경책을 집어 던진다. 그러나 다시 길을 떠나는 이들은 더 이상 보호 받고 양육해야 하는 아들과 엄마의 관계가 아니라 이 지옥에서 함께 생존해야 할 동지가 된다.
상영이 끝나고 머리 뒤쪽에서 막 영화에서 빠져 나온 듯한 걸걸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다. 아시아 아르젠토다. 무대로 뛰듯이 올라와 ‘아시아’라는 이름에 걸맞게 합장을 하며 인사를 건네던 그녀는 “우리 그냥 앉아서 이야기 하자”며 같이 온 스텝들과 함께 무대 위에 털썩 주저 앉았다. 사실 일반인들에겐 조금 충격적으로 다가 올 수 있는 이 영화의 마지막을 그녀는 행복한 결말이라고 했다. “할머니 손에 이끌려 다시 그 집으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이쪽이 해피엔딩 아닌가?” 그렇지, 어떤 이에게 삶은 제한된 선택사항 안에서 맴돈다. 그리고 아무리 지옥 같은 삶이라 해도 상대적인 ‘행복’이란 건 늘 찾아오는 법이니까. “르로이와 나, 우리 둘에겐 공통점이 많았다. 그래서 그의 책을 읽자마자 너무 깊게 빠져버렸고 그의 이야기를 당장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 우리 둘, 모두에게 어린 시절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어린 시절을 박탈당했고 나는 어린이기를 원치 않았으니까”
마릴린 맨슨이 엄마의 남자친구 중 하나로, 구스 반 산트의 영화 <엘리펀트>의 볼 빨간 금발소년 존 로빈슨이 할아버지의 집에서 사육 당하는 또 한명의 소년으로, 위노나 라이더가 강간당한 제레미어를 치료하는 안이한 심리치료사로 출연하는 등 화려한 출연진으로도 관심을 끌었던 이 영화는 아시아 아르젠토의 다양한 인간관계의 전시장 같기도 하다. 잠시 보았을 뿐인데도, 왜 이 여자가 빈센트 갈로를 포함해 원작가인 J.T. 르로이, 이 영화에 잠시 등장하는 <몽상가들>의 마이클 피트 (작년에 몇 달간 약혼을 하기도 했다) 등 수많은 남자들과 쉬지 않고 염문을 뿌렸는지, 그 매력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짐작 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 영화계에 대한 가혹한 언사로 자국 내에서는 미움을 톡톡히 사고 있는 거침없는 아가씨. 거칠고 반항적이지만 여린 구석도 숨김없이 드러내는 여자, 쉽게 길들여지지도 잡을 수도 없을 것 같지만 눈길을 떼기도, 거두기도 어려운 여자. 거부하고 싶지만 거부 할 수 없는 그들. ‘아시아 아르젠토’와 ‘앤쏠로지 필름 아카이브’라니. 그러니까 그것은 어울려도 너무 어울리는 만남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