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공조로 희귀 생태계와 사람 조명
분단이 남녘 사람들에게 남긴 큰 폐해의 하나는 활동과 상상의 폭을 휴전선 아래 8만여㎢ 안에 가둔 것이다. 한반도의 60%가 넘는 면적을 차지하며 유라시아 대륙으로 이어지는 북녘의 자연은 남쪽 사람들의 뇌리에서 삭제돼 있었다.
중국으로, 러시아로 자유롭게 오가게 된 요즘에도 대다수 남녘 사람들은 한반도에도 대륙적 규모의 거대한 고원지대가 있음을 잊고 지내기 일쑤다. 평균 높이 1340m, 총 넓이 1만4300㎢의 개마고원 이야기다. 서울시 면적(2001년 기준 605.52㎢)의 23배가 넘는 광활한 이 지형물은 약 100만년 전 화산폭발로 생성되었다. 한반도가 분단되면서 그 실체는 지리시간 사회과부도의 한 부분으로, 단순한 암기 대상으로 되어있을 뿐이다.
그렇게 추상적으로만 존재하던 ‘한반도의 지붕’ 개마고원이 마침내 그 비경을 드러낸다. 개마고원에 대한 최초의 남북공동 제작 다큐멘터리 <한반도의 지붕, 개마고원을 가다>를 통해서다. 15일 밤 11시10분부터 60분간 문화방송을 통해 남녘의 안방을 찾아든다.
고원의 풍경은 낯설고도 놀랍다. 그 외관은 규모의 거대함만큼 다채롭다. 사이사이 물줄기를 품은 거대한 산줄기에는 웅장함이 두드러지고, 구슬같이 생긴 돌들이 흘러내는 옥련산에선 기교함이 묻어난다. 수백년 아름드리 나무들이 들어찬 원시림을 지나면 어느새 넓은 초원이 펼쳐진다.
압록강과 부전령, 낭림산 줄기에 둘러싸인 개마고원은 희귀 야생 동식물들의 보고이기도 하다. 남한에선 이미 멸종된 ‘한국 표범’의 당당한 위용이 공개되고, 역시 남쪽에선 그 존재가 확인되지 않는 여우며 불곰, 스라소니, 늑대 같은 포식자들의 모습이 화면을 채운다. 여우가 꿩의 알을 훔쳐먹는 한쪽에선 해발 1000m 이상 바위지대에서 주로 산다는 ‘우는 토끼’가 신기한 울음소리를 낸다. 대자연의 생태 속에서 그 일원이 돼 살아가는 북녘 사람들의 모습도 생생히 전달한다.
북쪽 조선기록과학영화촬영소가 촬영을, 남쪽 문화방송이 편집을 맡았다. 북쪽 촬영팀은 2003년 10월부터 2004년 12월까지 개마고원을 장기탐사하며 작품을 만들었다. 북쪽 김명광 연출가는 30년간 <동물의 번식> <전설의 산 금강산> <북극 여우> 같은 자연다큐를 만들어 공훈연출가 칭호까지 받은 베테랑이지만, 그 또한 개마고원의 사계를 아우르는 이런 장기탐사 촬영은 처음이었다고 한다. 문화방송은 2003년 말부터 중국을 통해 수시로 북쪽 촬영팀과 의견을 주고받는 등 남북공조 체제를 꾸렸다. 최삼규 피디는 “이 프로그램 제작 형식이 남북 교류의 새로운 장을 여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