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냐. 나도 아프다’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가슴 저미는 그 드라마 대사는 다른 유행어와 마찬가지로 희화화 혹은 농담으로 광범하고 과도한 소비를 거쳐 일사천리로 잊혀졌다. 진지하고 무거운 것을 가볍게 넘기는 세상, 가벼운 것이 쿨한 시대이기 때문일까. 하지만 아무리 가벼움의 시대라도 우울한 음악과 그에 대한 수요는 있게 마련. 2003년 말 한꺼번에 라이선스 발매된 독일 싱어송라이터 막시밀리안 헤커의 데뷔작 <Infinite Love Songs>(2001)와 2집 <Rose>(2003), 그리고 이듬해 초 성황리에 열린 내한공연은 대표적인 예이다.
막시밀리안 헤커의 음악은 어둡고 무겁고 느리다. 독일 하면 떠올리는 딱딱하고 합리적일 것이란 예단은 그의 음악과 관련해서라면 번지수가 다르다. 대신 독일의 서정적 전통과 낭만주의를 떠올리는 게 맞겠지만, 사실 국적에 유념할 필요가 없다는 게 정답이다. 전곡이 영어 가사란 점을 무시하더라도, 그의 음악이 미합중국과 영연방의 음악을 뿌리로 한 것임은 명백하기 때문. 닐 영 같은 1960∼70년대 포크/싱어송라이터와 라디오헤드, 레드 하우스 페인터스 같은 1990년대 얼터너티브는 그의 음악을 형성한 가장 중요한 음악적, 정서적 자양분이다.
막시밀리안 헤커의 우울함은 탐미적이다. 2집 커버 그림인 흑장미처럼 매혹적이지만 치명적인 가시를 안고 있는 그늘진 아름다움에 가깝다. 최근 발매된 3집 <Lady Sleep>에서도 변함없다. 홀로 작사, 작곡, 노래, 연주를 도맡은 이번 음반도 한없이 낭만적이고 끝없이 우울하다. 그의 깨질 듯 여린 보컬과 서정적인 피아노 연주가 중심인 수록곡들은 종종 스트링과 어쿠스틱 기타 세션의 보조를 받으며 슬픔과 음울함, 죽음의 기운, 감정의 요동이 느리고 유려하게 전개된다. 중간에 일렉트릭 기타가 작렬하는 <Yeah, Eventually She Goes>는 유미적 우울함의 절정을 이룬다. ‘당신은 나를 수없이 떠났지만 당신은 몰라 당신의 손길로 나를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을 도와줘’(<Help Me>), ‘나는 죽어가고 있어’(<Dying>) 같은 절박함이나 ‘오 모든 것은 병들었어’(<Everything Inside Me Is ill>),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날 사랑해 줘’(<Lady Sleep>) 같은 로맨티시즘은 일상에서라면 낯뜨겁기 그지없지만 막시밀리안 헤커의 ‘음악’ 속에서는 대체 불가능한 것이다. 결국 이번 음반도 먹먹하고 우울한 청춘들의 ‘이열치열’ 처방전인 셈이다. 우울하냐. 나도 우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