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특급’은 언제나 가속 페달을 밟게 될까? 에스비에스 수목드라마 <홍콩 익스프레스>(밤 9시55분)를 둘러싼 궁금증이다.
최인호 원작 <불새>에서 빌려온 탄탄한 이야기와 조재현을 필두로 한 주연들의 뛰어난 연기, 박진감 넘치면서도 감각적인 영상이 어우러진 수작으로 꼽힌다. 하지만 시청률은 1~6회 동안 한번도 10%를 넘지 못한 완행급이다. 시청률 조사회사인 에이지비닐슨미디어리서치 분석 결과를 보면, 가장 높았던 지난달 24일 4회분 시청률이 고작 9.1%였다. 컬트 수준이다.
SBS ‘홍콩익스프레스’ 시청률 고민 남 주인공 대립 부각 강점이자 한계 “멜로구도 본격화로 상승할 것” 기대
홈페이지 게시판엔 팬들의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백승용’이라는 아이디의 시청자는 “이 프로 참 아쉽습니다”라고 썼고, ‘조영철’ 시청자는 재미 있는데 시청률이 아쉽다고 했다. 낮은 시청률 때문에 <홍콩 익스프레스>의 풍부한 드라마적 강점들이 묻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열혈 시청자들의 눈길을 잡는 것은 요즘 보기 드문 정통 스타일의 이야기 구조가 빚어내는 팽팽한 극적 긴장감이다. 모든 것을 가진 재벌2세와 아무 것도 없는 뒷골목 ‘양아치’의 대결구도 속에 남성들의 사회적 욕망의 경합이 드라마 전면에 등장한다. 재벌남과 매력녀의 애정관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대개의 트렌디물과 갈라지는 지점이다. 강혁(차인표)의 폭력적 카리스마와 민수(조재현)의 야비한 내면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주연들의 연기력은 이야기의 설득력을 배가한다. 특히 강혁의 경멸에 내몰리며 찡그리다가 순식간에 웃는 조재현의 표정연기는 탄성을 자아낼 정도다. 홍콩 마천루의 풍경을 부감으로 빠르게 잡아내는 영화같은 화면도 드라마의 몰입도를 높인다.
그럼에도 한자릿수 시청률에 허덕이는 것은 외적 변수 탓이 크다. 가장 큰 건 같은 시간대 경쟁작의 강세다. 화려한 무협의 한국방송 <해신>이 남성 시청자를 일찌감치 확보한 데다, 문화방송 <슬픈 연가> 또한 고조되는 삼각관계의 비극성을 무기로 여성 시청자를 공략하고 있어, 후발주자인 <홍콩 익스프레스>가 파고들 여지가 좁다는 것이다. 실제로 게시판 글들의 상당수는 <해신>과 <슬픈 연가>를 본방송에서 본 뒤 <홍콩 익스프레스>는 재방송으로 보고 재미를 느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홍콩 익스프레스>의 드라마적 강점 자체가 한편으로는 시청층 확산엔 저해요소로 작용한다는 분석도 있다. 그동안 남성 주인공들의 대립구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멜로의 성격이 잘 드러나지 않아 이야기의 흥미를 반감시키는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다. 비슷한 구도로 전개됐던 <발리에서 생긴 일>에선 남성 주인공들의 계급 대립과 여성 주인공을 사이에 둔 삼각관계가 유기적으로 결합돼 이야기의 긴장감을 한층 높였던 반면, <홍콩 익스프레스>에선 강혁과 민수, 한정연(송윤아)의 멜로 구도가 아직까진 본격적으로 펼쳐지지 않고 있다. 이야기가 그만큼 단선적으로 진행된다는 느낌을 줄 수밖에 없다.
이런 점 때문에 제작진은 민수와 정연의 어린시절 관계가 확인되면서 멜로선이 살아나는 8회 이후 시청층이 결집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홍콩 익스프레스>의 기획을 맡은 김영섭 에스비에스 책임피디는 “이야기가 좀 더 극적으로 전개되는 데다, <슬픈 연가>도 곧 끝나 시청자를 끌어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시청자들은 멜로구도로의 전환이 자칫 <홍콩 익스프레스>를 흔한 멜로물로 전락시키는 것 아니냐는 우려 또한 내놓고 있어, 제작진엔 두 겹의 부담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