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는 무겁게, 이야기는 가볍게
하룻밤 풋사랑에 이은 임신과 계약 결혼, 이혼 직전 사고에 의한 아내의 기억 상실. 7일 밤 시작되는 두 드라마가 이야기를 풀어나갈 실마리들이다. 혼전 성관계, 결혼과 이혼, 기억 상실, 동거 등 이야기 거리는 가볍지 않지만, 젊은 부부들이 이를 둘러싸고 빚어내는 에피소드들은 흥겹고 유쾌하고 웃긴다. 코믹 터치 드라마가 호응을 얻는 요즈음 트랜드와 함께 긴 겨울 지나고 봄이 돌아오는 길목에서 로맨틱 코미디 장르는 얼추 마춤한 듯 보인다. 드라마는 문화방송 <원더풀 라이프>(진수완 극본, 이창한 연출)와 한국방송 <열여덟 스물아홉>(고봉황·김경희 극본, 김원용·함영훈 연출), 모두 오늘(밤 9시55분)부터 나란히 16부작으로 방송된다.
‘원 나이트 스탠드’·기억상실 주소재로
<원더풀 라이프>는 싱가포르에서 만난 남녀 대학생이 우연히 하룻밤 사랑을 나누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첫 사랑과의 재회를 꿈꾸며 배낭여행 온 세진(유진)과 어학연수 중 바람 난 여자친구를 찾아온 승완(김재원)이 우연히 만나 사랑을 둘러싼 동병상련을 나누며 뜻밖의 성관계를 갖는다. 다음날 아침, 깜짝 놀란 둘은 후회하며 도망치듯 각자 귀국한다. 그리고 1년 뒤, 아기가 태어난다. 대학생 미혼모로 지내온 세진과 꿈에도 아빠라고 생각지 못한 승완은 울며 겨자 먹기로 계약 결혼에 이른다. <열여덟 스물아홉>은 이혼 직전 교통사고를 당해 18살 기억으로 돌아가 결혼한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29살 혜찬(박선영)과 그의 비어버린 11년 속에서 이혼 사실을 숨기고 사이 좋은 부부로 가장하려는 동갑내기 상영(류수영)의 이야기를 담는다. 고교 시절 그토록 싫어했던 상영과 결혼한 혜찬이 다시 18살로 돌아갔으니, 둘의 재결합이 쉽사리 이뤄질 리 만무하다. 그러나 혜찬을 사랑하는 상영은 혜찬이 잃어버린 기억과 함께 자신과의 사랑까지 돌리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반면, 혜찬은 상영과 결혼했다는 현실을 믿을 수 없고, 그와 한 집에서 살아갈 일도 꿈만 같다.
두 드라마의 공통점은 무거운 소재에 가벼운 스토리 구성이라는 접근법이다. 이를 위해 최근 주가를 높였던 <풀 하우스> <쾌걸 춘향> 등의 만화적 감성과 문법도 대부분 가져다 쓴다. <원더풀 라이프>는 유진, 김재원, 이지훈, 한은정 등 젊은 배우를 기용하고, 21살 대학생을 주요 배역으로 등장시켰으며, 젊은 세대의 가벼운 성의식을 과감히 반영해 ‘원 나이트 스탠드’를 갈등 촉발점으로 채택하기도 했다. 어학연수나 배낭여행도 젊은 세대의 생활상에 발맞춘 설정이다. 10대들이 주 독자층인 인터넷 소설 <당신과 나의 4321>을 원작으로 삼은 <열여덟 스물아홉>은 아예 기억 상실이라는 장치를 이용해 고교생의 감성을 주 재료로 등장시켰다.
만화적 감성·문법은 기존작품 반복인가
한편, <풀 하우스> <쾌걸 춘향>의 인물 설정을 지나치게 그대로 반영해 시청자들이 “물린다”는 반응을 보일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원더풀 라이프>의 갈빗집 운영하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세진과 여성학 교수인 어머니와 생수회사 사장인 아버지를 둔 부잣집 아들 승완은 <쾌걸 춘향>의 인물 구도를 연상케 하고, <열여덟 스물아홉>에서 잘 나가는 톱 스타 상영과 통통 튀는 성격의 소유자 혜찬도 <풀 하우스>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원더풀 라이프>에선 이지훈과 한은정이, <열여덟 스물아홉>에선 박은혜와 이중문이 두 주인공의 사랑 싸움 사이에 끼어들어 4각 관계를 이룬다는 점도 기존 드라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계로 보인다.
<쾌걸 춘향>류의 가볍고 유쾌한 드라마에 빠져들었던 이들이 두 드라마 가운데 어떤 선택을 할 지, 만화적 감성의 트랜디 드라마가 언제까지, 얼마나 위세를 떨칠 지가 관람 포인트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