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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디스토피아] 4월5일, 다시 천안문에서
유재현(소설가) 2005-03-07

1989년 천안문(텐안먼) 민주화 시위 당시 시위대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실각한 뒤 16년 동안 연금되어 있던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 자오쯔양이 마침내 숨을 거두었다. 후진타오의 중국 공산당이 긴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지난 1976년과 1989년 두 차례의 천안문 시위와 학살이 모두 당시 전 총서기였던 저우언라이와 후야오방의 죽음을 계기로 일어났기 때문이다. “4월5일 청명절에 천안문에서 만나자”라는 공개서한이 중화권 인터넷에 돌고 있는 것은 두 차례의 시위 모두 청명절을 계기로 일어났기 때문이다.

천안문 학살은 덩샤오핑과 그의 적자인 지금의 중국 공산당에는 결코 제거할 수 없는 악성종양과도 같다. 후진타오의 중국 공산당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은 이 종양이 퍼져나가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억누르고 봉쇄하는 것이지만, 중국에 진정한 민주화가 찾아오지 않는 한 천안문은 중국 공산당에 늘 악몽일 뿐이다. 오는 4월5일 죽은 자를 기념하는 전통 명절인 청명절이 무사히 넘어가고 또 더이상은 천안문을 상기시킬 죽음을 앞둔 전 총서기가 남아 있지 않다고 해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천안문은 중국인들에게 있어 이미 확고한 역사가 되어 있는 것이다.

오늘의 중국인들에게 천안문은 무엇인가. 중국 관련 저술가로 이름을 얻고 있는 매사추세츠대학의 리우빈얀(劉賓雁) 교수는 자오쯔양의 사망과 관련한 <에폭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후진타오의 중국 공산당을 마오쩌둥의 시대로 회귀하고 있는 보수주의자들의 집단으로 비난하고 있다. 리우빈얀과 같은 중국의 밖, 특히 서구를 떠돌고 있는 이른바 민주화 인사들에게 천안문은 워싱턴의 링컨기념관 광장과 다른 것이 아니다. 리우빈얀이 덩샤오핑을 모른 척하고 마오쩌둥으로 뛰어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왜 비난의 대상이 마오쩌둥인가? 1976년 저우언라이의 죽음을 마지막으로 마오쩌둥은 중국에서 단지 재수와 복을 비는 부적으로만 존재해왔다. 천안문 학살로 시작된 덩샤오핑의 중화인민공화국을 이름만 빼고는 모든 것을 바꾸어버렸고 이 시대에 마오쩌둥은 단지 정치적, 이념적 수사로서만 존재했을 뿐이다. 오늘날 중국을 만든 것은 덩샤오핑으로 상징되는 자본주의적 실용주의 노선이었고 그의 시대는 후진타오와 같은 덩샤오핑의 적자에 의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리우반얀이 비난하고자 하는 것이 오늘의 중국 공산당이라면 그 비난은 마땅히 덩샤오핑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이 온당하다. 마오쩌둥을 거론하는 일은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덩샤오핑 다음인 것이다.

오늘날 중국인들에게 천안문의 의미와 정신은 덩샤오핑이 만들어낸 ‘공산당이 지배하는 자본주의’라는 기괴한 모순적 체제를 빼고는 결코 이해할 수 없다. 리우빈얀은 이 모순을 끝장내고 중국 자본주의가 완결되지 않는다면 민주화는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가 소망하고 있는 것은 서구식 민주주의이고 끝장내야 하는 것은 공산당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중국이 안고 있는 극적으로 심화된 갈등은 자본주의가 만들어내고 있다. 외자기반의 수출주도 정책이 야기한 급속한 자본주의화는 1949년 이후 중국 사회주의가 힘겹게 만들어냈던 모든 인민적 사회보장체제를 하루아침에 붕괴시켰고 대다수의 인민을 극심한 불평등과 도탄의 지경에 밀어넣었다. 역설적으로 이 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천안문 학살의 주인공인 현재의 중국 공산당이다. 자기 인민에 대해 탱크의 포신과 총부리를 들이댈 수 있는 정권이 아니라면 이 체제를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리우빈얀의 희망처럼 중국 공산당이 몰락한다면 오히려 중국은 리우빈얀에게 악몽이 될지도 모른다.

천안문의 현재적 의미를 이해하려면 아무래도 리우빈얀보다는 “동지들이여, 청명절에 천안문 광장에서 만나자”로 끝나는 베이징 소재 대학 15인 명의로 공개된 서한의 다음과 같은 구절에 귀를 기울이는 편이 나을 듯싶다.

“우리는 중국 정부가 정치·교육 개혁을 추진하고, 부패문제를 철저히 해결하고, 부패관리들이 인권을 유린하고 국가의 재산과 인민의 피땀을 수탈하는 것을 저지하고, 언론자유를 보장하고 빈부격차를 해소할 것을 요구한다… 중국의 권력형·귀족형 경제가 국가 에너지 자원과 환경을 파괴하는 데 항의한다… 우리는 토지를 몰수당한 농민, 탄원서를 제출하는 인민, 집을 잃은 철거민, 월급도 못 받는 노동자, 자유를 상실한 인터넷 사용자들의 인권을 보장할 것을 정부에 촉구한다.”

우리 또한 광주학살과 개발독재를 경험했다. 오는 중국의 청명절, 중국 인민들의 건투를 바라자.

일러스트레이션 신용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