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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데뷔 옹근 10년 노희경 작가

“드라마가 인생전부 아니란 걸 알았죠”

6일 K2 특집 ‘유행가가 되리’ 집필 가르치려 않고 물흐르듯 감정따라 중년부부의 짧은 분륜과 회귀 그려

바람이 매섭던 지난달 24일, 여의도의 한 찻집에서 방송작가 노희경(39)을 만났다. 작가의 몸은 바람에 날아갈 듯 작고 위태로워 보였지만, 시종 또렷이 눈을 빛내며 쏟아내는 말들에선 ‘마음 공부’의 깊이가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그가 방송작가로 이름을 올린 지도 옹근 10년. 1995년 문화방송 베스트극장 <세리와 수지>로 데뷔한 이래, <내가 사는 이유>(1997) <거짓말>(1998)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1999) <바보 같은 사랑>(2000) <화려한 시절>(2001) <고독>(2002) 등을 거쳐 지난해엔 <꽃보다 아름다워>로 우뚝 섰다. <꽃보다 아름다워>에서 보여준 세상을 향한 애틋하고 따스한 시선은 많은 이들을 ‘마니아’로 만들었다.

천상 방송작가인 그가 실은 시나 소설을 꿈꿨다고 했다. “시 쓰고 소설에 매달리던 시절 너무나 머리가 아팠어요. 어렵게 써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 잡혀, 근엄하지도 현학적이지도 않은 제가 문학의 무게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깨달음은 뒤에 왔습니다.”

‘작가’를 포기하고 ‘딴따라’로 길을 튼 그는 다시 ‘작가’라는 이름을 얻었다. 세상사 다른 일처럼 ‘어깨에 힘을 빼니’ 스스로 솔직한 모습이 오롯이 글로 나왔을 터다. 방송작가로서도 한 5년쯤 뒤 변화가 왔다. “드라마가 인생의 전부였고 드라마가 엄청난 힘을 지녔다”고 굳게 믿었던 그에게 어느날 한 스님은 “남들은 드라마 별거 아니라고 생각해. 니가 뭘,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너나 잘 살아라”고 불쑥 ‘화두’를 던졌다. “한동안은 내가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죠. 내가 이 인간들을 개조해야 하지 않느냐 생각하니 너무 힘들죠. 말을 안 들으니까. 지금도 잘 안 될 때가 있고 찾아가는 중인데, 미워할 수 있잖아요. 미운데 어떻게 안 미워해요? 화나는데 어떻게 화를 안 내? 물 흐르듯 인간의 모든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그걸 알게 됐어요.” 그 무렵 쓴 <바보 같은 사랑>에 제 가슴을 치며 애를 태울지언정, 마음 놓고 미워할 만한 악역이 없었던 것도 이런 작가의 변화로 풀이된다. <꽃보다 아름다워>는 더욱 그랬다. 늘그막에 딴 살림 차려 자식까지 둔 남편 두칠의 뻔뻔함도, 순박하다 못해 모자라기까지해 그런 남편을 못 잊는 아내 영자의 답답함도 인간 본래의 초라함을 드러낼 뿐, 그것은 다시 인간에 대한 지긋한 사랑으로 귀결됐다.

그래서 노희경에게 <꽃보다 아름다워>는 ‘가족주의’ 드라마가 아니다. “전 가족 자체를 중요하다고 생각지 않아요. 흔히 태초부터 가족이 있었던 것처럼 생각하는데, 가족은 사실 남이 모인 것이죠. 그저 남인데도 내 곁에 있어주니 감사해야 하고요. 남편은 이래야 하고, 부모는 이래야 한다는 형식을 모두 깨고, 가족은 철저히 분리돼야 한다고 봐요. 그래서 ‘부모에게 효도하세요’ 하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아요. 다만 한 인간이 불쌍하고, 한 여자가 초라한 것뿐이죠.”

그가 이번에 들고온 한국방송 창사특집 2부작 드라마 <유행가가 되리>(2텔레비전 6일 밤 10시5분 연속방영)도 같은 맥락이다. 광고회사 국장으로 정년에 이른 남편 수근(박근형)과 집안 살림만 하며 살아온 아내 숙영(윤여정)이 각각 짧은 사랑에 빠졌다 돌아오는 과정을 통해 삶의 진정성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재미 있으면 있게, 없으면 없게 봐주셨으면 해요. 저는 제 모습이라 생각하고 썼어요. 비루하고 초라한 아버지와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어머니의 모습이 모두 저한테 있거든요. 그런 저도 몇몇 사람에겐 이해도 받아요. 보면서 이해하려고 하며 보면 재밌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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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