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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 김영덕, 김도혜

“마치 애인을 잃어버린 기분이다”

부천영화제는 이제 루비콘강을 건넜다. 김홍준 감독에 대한 일방적인 해촉을 시작으로, 신임 정홍택 집행위원장의 돌발적인 사퇴, 집행위원장 없이 영화제를 진행하겠다는 이사회의 폭탄선언에 이어 부천시쪽은 드디어 기존 프로그래머 해고라는 마지막 방아쇠를 당겼다. 문화적 무지를 넘어서 행정적 파시즘의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는 부천시장과 이사회의 이번 행보에 국내외 영화계는 경악하는 중이다. 한국독립영화협의회와 한국제작가협회의 출품거부로 올해 부천영화제에는 사실상 한국영화가 봉쇄된 상황. 외국의 반발은 한술 더 뜬다. <씨네21> 온라인에 게재된 해외영화인 17명의 성난 편지만으로도 그들의 분노는 쉽게 읽힌다. 이번 사태의 피해자 겸 가장 확실한 목격자들을 지난 주말에 만났다. 지난 2월20일 오후 청년필름 사무실에서 만난 두명의 전 부천영화제 프로그래머 김영덕과 김도혜씨는 예상외로 담담했다. 그들과 어처구니없는 이 사태의 정치적 문제에 초점을 맞춘 인터뷰를 하던 중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지자체의 부당한 간섭과 횡포, 그리고 영화인, 관객의 극심한 반발도 널리 알려져야 한다. 하나 갑자기 부천영화제가 없어지면 혹은 변질되면 우리가 잃어버릴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두 사람이 저들의 만행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기보다는 영화제의 중요성과 무엇이 구조적 문제인지를 설명했기 때문에 떠오른 생각이다.

-베를린에서도 부천영화제 이야기가 많이 거론되었다고 들었다.

=김영덕 | 이미 <스크린 인터내셔널>에서 12월 말에 사실 보도 중심의 뉴스가 나갔다. 그래서 다들 알고 있더라. 사실 관계만 알면 단순화해서 볼 수도 있다는 점이 걱정되었다. 실제 프로그래밍을 하면서 접촉하던 사람들과의 미팅이 예전부터 베를린영화제 기간에 잡혀 있었다. 그런 부분은 직접 만나서 정리를 해줘야 했다. 부천영화제의 이름으로 그들과 다시 만나지는 않겠지만, 계속 일을 하면서 만날 사람들이니까 신뢰에 금이 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당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을 인용해 당신이 베를린에서 대단한 보이콧 운동을 벌인다는 선정적인 기사가 나가기도 했다. 해외에서의 항의서한도 여러 지면을 장식했는데 그들이 가장 아쉬워하는 것은 어떤 점인가.

=김영덕 | 나는 누구를 만나도 상황이 이렇다라는 고지 차원의 이야기만 했다. 그러면 오히려 외국 친구들이 서명이 필요하니? 뭘 도와주면 되니? 하는 식의 반응을 먼저 끊임없이 보였다. 거기까지 자비를 들여서 간 내가 누구를 무엇을 위해서 보이콧 운동을 벌이나. 우리가 가진 색깔과 프로그램이나 외국에서 참여했던 사람들이 꼭 “부천이라는 브랜드가 없다고 해서 내용이 죽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라며 나를 격려했다. 영화제는 자리나 도시 이름이 아니라 영화에 대한 관심과 열정으로 하는 것이다.

=김도혜 | 지금까지의 과정을 아는 사람들 중 전 프로그램팀이 자료를 다 지웠다거나 올해 영화제를 못하게 막고 다닌다는 식의 황당무계하고 파렴치한 괴담을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다. 물리적으로 영화제가 치러질 수 없는 상황을 만들고 이제 와서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하는 게 근본적인 문제가 아닐까. 1월에 스탭을 꾸리고 두달간 진행돼야 할 준비가 전혀 안 된 상황에서 한국영화를 출품하지 않겠다는 영화계의 반발에 어느 이사진은 이렇게 말하더라. “그래 봐야 한국영화 설 땅만 좁아지지. 외국영화만 틀면 돼.”

=김영덕 | 외국에서도 이런 사례는 과거에 많았으니 그냥 새로운 영화제를 만들라더라. 원래 세계 어디서나 정치하는 애들이 그렇다면서.

=김도혜 | 8회쯤 됐기 때문에 한국 영화사에서 해외작을 픽업하는 것뿐만 아니라 B&B라는 작은 필름마켓, 동구권 SF는 스위스 르샤테와, 이탈리아 공포는 베니스영화제와 공동기획하는 일이 가능해지는 순간이었다. 6회 때부터 해외영화인들에 대한 네트워크와 관리를 시작했으니까. 드디어 아시아판타스틱영화제의 거점으로 자리잡고 거장이 아닌 신인들의 영화를 많이 소개하는 통로가 몇명의 무뢰한들에 의해 한순간에 무너진 것을 그들은 아쉬워하는 거다.

-홍건표 시장을 필두로 시쪽이 영화제를 행정적으로 관리하려는 발상이 문제의 핵심 같다.

=김도혜 | 원혜영 전 시장 때 시장을 현재처럼 조직위원장으로 만든 이유는 부천시 지역관계자들이 영화제를 임의로 좌지우지하는 것을 막기 위한 방편이었다. 제도적으로 완성하려면 집행위가 권한을 가져야 했다. 그것까지는 하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처럼 시장과 이사회가 영화제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기형적 구조가 된 것이다.

=김영덕 | 부산국제영화제를 봐라. 시장이 바뀌더라도 집행위원회가 단단해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김도혜 | 시에서는 지원만 하는 독립된 구조로 부산은 운영된다. 부천도 명목상으로는 영화계 반, 부천시 관계자 반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실상 영화계로 분류되는 사람들도 부천시쪽에 있어 조직위가 한쪽으로 기울고 이사회도 마찬가지이다. 그나마 매번 그냥 통과시키던 이사회 안건을 조직위가 표결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에 김홍준 전 집행위원장의 해촉안이 올라와 논란이 생겼을 때도 동일한 상황이었다. 누군가 문제제기를 하면 표결하자로 연결된다. 표결은 무조건 이기니까.

=김영덕 | 영화제를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운영이나 성격을 결정짓는 권한이 전혀 없었다.

-제대로 논의 한번 해보거나 공론화되지도 못하고 일방적으로 통보받은 의사결정구조가 가장 힘들었을 것 같다.

=김도혜 | 시장과 이사진들과 의논하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이사회가 프로그래머를 대할 때 “어, 뚱뚱한 애” 이런 식이다.

김영덕

=김영덕 | 혹은 “미스 김 오늘 일찍 나왔네”라든가.

=김도혜 | 이사회를 하면 우리는 참관인처럼 앉아만 있다. 총회도 그렇다. 실무에 대한 질문도 전혀 없고, 발언의 기회도 주지 않는다. 사람을 뽑고 예산을 결정할 순간마저 부르지 않는다. 언제든지 내보낼 수 있는 영화 고르는 애들로 보는 거지. 외부 사람들이야 설마 그런 상황까지 오겠어, 라고 했겠지만.

=김영덕 | 영화제를 밥그릇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 상황까지 올 수 있다는 걸 제대로 보여준 거다. 스탭들은 1년에 한번씩 뽑고 내보내면 된다는 논리를 끝까지 밀어붙인 것이다. 돈을 쥔 사람 마음대로 영화제가 움직이는 게 당연하다는 발상이다.

=김도혜 | 김 전 위원장이 이사회에 반발하고 나갔다가 원 전 시장에 의해 복귀한 것이 5회 때다. 그때 김영덕 프로그래머가 같이 왔고. 그러고나서 김 전 위원장이 부천에 있을 동안 딱 한명 잘랐다. 그 한명을 내보내고나서 프로그램이 나아졌다. 내실을 기하기 시작했으니까. 5회부터 지난해까지 대내외적으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부천영화제가 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시점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그리고 그 원동력은 어디에 있었나.

=김영덕 | 5회부터 일단 특별전이 풍요로워졌다. 호금전, 가이 매딘, 발리우드, 미이케 다카시 등을 선보였다.

=김도혜 | 유럽인들의 판타스틱에 대한 정의에 묶여 있지 않고 우리 사회의 문화신에서 보여줄 수 있는 걸 했다. 예를 들면 김영덕 프로그래머가 했던 블루무비 기획.

=김영덕 | 블루무비 기획에서 1930∼40년대 포르노영화와 달파란의 레이브가 문화적 충돌을 빚어내는 것처럼 예술가들이 참여할 수 있는 지점도 모색했다. ‘씨네락콘서트’도 마찬가지고. 비슷한 창조적인 성격으로 장르의 연대를 시도하는 것이다. 창고를 극장으로 바꿔서 일반 극장이 아닌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체험, 언더그라운드영화를 틀면서 맥주를 마시며 영화를 보는 관람행위나 체험을 넓히는 고민들을 지속적으로 했다. 관객의 영화적 체험이 어디까지 넓어질 수 있는가를 함께 느껴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건 나 혼자 한 게 아니라 모두에게 오픈된 구조였으니까 가능했다. 국내에도 분야별로 마니아들이 많다. 발리우드 기획도 그랬다. 발리우드 마니아, 인도영화 동호회 같은 모임이 영화소개와 파티 기획을 했다. 그런 방법으로 대중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획를 만든 것이 가장 의미있었다. 다양한 마니아들이 참여하는 거다. 쇼브러더스는 중장년층이 마니아인 것처럼.

=김도혜 | 심지어 이사회가 프로그래머를 못 늘리게 해서 못 늘렸다. 기회만 있다면 객원 프로그래머도 최대한 늘리고 싶었다.

=김영덕 | 프로그래머는 자기가 가진 지식을 남에게 퍼주는 일이 아니다. 대중의 요구를 읽고 감독들이나 세계영화의 흐름 속에서 자신들의 지향을 좇아가면서 의미를 짚어내고 어렵게 보석을 찾는 것, 그리고 그것을 관객에게 전달해주는 것이다.

=김도혜 | 감식안보다는 사람들과 소통하거나 교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부천영화제가 사라진다면 우리가 잃어버릴 것들은 무엇일까 혹은 당신들이 잃어버릴 것은.

김도혜

=김도혜 | 외국 감독들 중 부천영화제 관객을 만난 순간을 평생의 기억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이렇게 열정적으로 질문하고 자신의 영화에 대해 말을 거는 관객은 어디서도 만난 적이 없었다고. 영화제 기간 동안 일종의 젊은 해방구였던 부천은 아마도 사라지겠지. 사람들이 안 보는 데서 정말 많이 울었다. 분노보다는 사랑하는 걸 잃어버릴 것에 대한 슬픔이 더 크다. 그걸 잃어버리게 만든 사람들은 그것 자체가 뭔지를 모른다는 것도 그렇다. 그래서 그 사람들에 대한 분노보다는 내가 사랑하는 것이 사라진다는 데 대한 상실감과 슬픔이 더 크다.

=김영덕 | 애인을 잃어버린 것과 마찬가지다. 마치 유행가 가사처럼 들떠서 일하던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을 지나간다. 영화제는 관객과 소통하는 에너지가 핵심이다. 삼삼오오 김밥 먹어가며 심야상영을 보는 열기 같은 것. 관객이 이제 그 여름을 어디서 보낼 것인가 하는 걱정을 한다. 그게 제일 맘이 아프다. 내가 뭘 안다고 프로그래머를 하는 게 아니라 프로그래밍을 하다보니 더 공부하고 열심히 하게 된 거였다.

=김도혜 | 원래 부천영화제 심야를 놓치지 않는 열혈관객이었다. 그리고 해외세일즈를 했다. <쉬리>를 팔고 하는. 늘 마켓에 가면 프로그래머들이 영화보러 다니는 게 부러웠다. 나는 가게 지키는데. (웃음) 그래서 김홍준, 김영덕 두 사람이 나를 뽑아줬을 때 너무 기뻤다. 대중과 소통하는 자리에 내가 왔다는 게 뛸 듯이 기뻤다. 부천영화제처럼 자기가 좋아하는 세계에 갇혀 있던 사람들이 열흘 동안 나와서 모여 노는 기회에 동참한다는 게 너무 기뻤다. 영화자본의 속성에 묻혀 지내다가 그런 틈바구니에 이런 장을 만들 수 있다는 게 기뻤다.

-부천시 관계자들과 이사회에 지금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김영덕 | 일련의 사태에 대해 그들의 주장대로 부천영화제가 시민의 행사가 아니라 영화인과 일부 마니아의 행사라서 그런 것이라면 어떤 영화제를 향한다는 공식적인 상을 제시해야 한다. 아니라면 이건 시민을 빌미로 강제로 권력에 의해 퇴출시키는 것일 뿐이다. 앞으로는 자신들이 원하는 새로운 영화제의 밑그림을 갖고 책임있게 해나가기를 바란다.

=김도혜 | 자기네 인프라뿐 아니라 국고도 들어가는 일인데 전 사회적, 전 국민적 논의를 하는 건 당연하다. 이에 대한 공청회나 의견 수렴 한번 없었다. 앞으로는 그러지 말기를 바란다.

-이제까지 부천영화제에서 함께한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김영덕 | 당신들이 있어 행복했다. 공간이 사라져도 판타스틱영화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열정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서로 잊혀지지 않고 그 기억으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그에 대한 건강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지켜봐주길 바란다.

=김도혜 | 부천영화제는 나에게 늘 행복을 주는 샘물이었다. 어차피 현 시장의 임기 동안은 상황이 변할 것 같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행동을 비난하거나 우려하는 것에 시간을 보내고 싶지는 않다. 판타스틱영화제의 정체성을 계승하고 다른 노력을 모색하려고 고민 중이다. 영화제는 관객의 권리로 숨쉰다는 것을 사람들이 기억해준다면 판타스틱영화제는 사라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