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P TV에 5.1채널 갖춰놓으면 뭐합니까. 그걸로 드라마만 보는데….”공수열 기획이사가 흥분하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첨단의 테크놀로지에 목을 매면서도 이를 이용해 제대로 된 문화를 향유할 줄 모르는 척박한 현실 말이다. 그가 몸담고 있는 곳은 지난 2월15일 국내 처음으로 1천 번째 DVD 타이틀을 출시한 토종 DVD 제작사 스펙트럼디브이디. DVD라는 말도 생소했던 1999년, 상호 자체에 ‘디브이디’를 박아넣은 회사다. 그 단호함을 그대로 닮은 공수열씨는, 지난 6년간 스펙트럼디브이디의 시작과 성장을 함께해왔다.
-이전까지는 이쪽 분야와는 관계없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영화광이거나 오디오광이었나.
=절대 아니다. 영상콘텐츠 업계 종사자들 중에는 유난히 마니아들이 많지만, 기호와 산업은 다르다. 문화산업에서 중요한 것은 사업적 마인드다. 좋아하는 것만을 우선시한다면 결국 한국 영상문화는 할리우드에 종속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전반적으로 DVD 업계가 많이 힘들다.
=한국의 DVD 시장은 비정상적으로 위축돼 있다. 한국영화가 DVD를 통해 거둬들인 수익은 영화제작비의 3%밖에 안 된다. 유럽, 미국 등의 10분의 1 수준이다. 주범은 불법복제와 불법다운로드지만, 영상콘텐츠를 제값을 치르고 구입해야 한다는 가치 자체가 자리잡지 못하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그럼에도 창사 이후 지난해까지 계속해서 흑자를 기록했다. 회사의 전략은 무엇이었나.
=고객의 의견을 최우선으로 놓는다는 것. 2000년부터 유명 DVD 사이트에서 고객과의 직접 대화를 시도했고, 그들의 지적을 그대로 수용했다. <반지의 제왕> 확장판 DVD가 1편과 2편 케이스의 재질이 다르고 그 크기가 미묘하게 다르다는 불만이 있었을 땐 다시 제작해서 교환해주기도 했다. 다른 회사들로부터 “너희가 뭐가 잘났다고 혼자 난리냐?”며 욕도 많이 먹었다. (웃음) 그리고 우리는 판매를 대행하지 않는다. 소스를 구매한 뒤, 리마스터링은 물론이고 서플먼트 제작까지 DVD 제작과 관련한 모든 것을 책임진다. 외국영화의 감독 코멘터리에 한글자막을 넣은 것도, 한국영화의 감독 코멘터리를 시도한 것도 우리가 최초였다. 한국 고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DVD는 최고로 잘 만들고 싶었다.
-DVD에 대한 남다른 철학이 있는 것 같다.
=누구는 그런다. “극장에서 본 영화를 뭣하러 비싼 돈 내고 다시 사냐?”고. 그러면 그냥 라면에 밥말아먹으면 되지 비싼 식당엔 왜 가나. DVD는 기존 콘텐츠의 가치를 업그레이드시킨 제2의 창작물이다. 사람들이 빌려봐도 되는 책을 사서 읽는 이유는 그만큼 천천히 오랫동안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DVD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