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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선댄스영화제 결산 [3] - 화제작 <허슬 & 플로> 외 9편
문석 2005-02-22

힙합이 만들어지는 과정의 해부

관객이 사랑한 영화: <허슬 & 플로>와 <형제>

<허슬 & 플로>

<형제>

올해 선댄스를 뜨겁게 달군 최고의 화제작은 단연 <허슬 & 플로>였다. 파라마운트에 900만달러에 팔렸고, 이 영화의 프로듀서 존 싱글턴이 이후 만들 2편의 영화에 대한 투자를 확약받았다는 점 등이 대서특필되면서 <허슬 & 플로>는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또 이 영화는 관객의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관객상을 받은 데 이어 촬영상까지 거머쥐는 등 영화제의 최고 스타임을 입증했다.

<허슬 & 플로>는 미국 남부 멤피스에서 힙합을 꿈꾸는 한 흑인의 분투를 격정적으로 그린다. 디제이(테렌스 하워드)는 라디오 채널 어디를 돌리나 컨트리음악, 블루스, 재즈만이 판치는 이곳에서 포주로 살아간다. 어느 날 손에 들어온 작은 키보드 한대는 잃어버렸던 그의 꿈을 자극한다. 그는 자신이 고용한 창녀, 아내 등과 함께 집에 만든 스튜디오에서 데모 테이프를 만든다. 마치 <스쿨 오브 락>에서 록음악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해부됐던 것처럼 <허슬 & 플로>는 힙합음악이 창조되기까지의 모습을 눈으로 보여준다. 과연 그의 음악은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을까. 멤피스 출신의 백인감독 크레이그 브루어는 “나는 우리가 붉은 주, 푸른 주(미국 대선에서 부시와 캐리의 색으로 대별됐던)라는 냉소주의가 가득한 곳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안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꿈에 관한 영화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바랐던 것은 스스로가 태양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명왕성에 있다고 생각하는 미국 중부의 사람들에게 사랑을 전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덴마크 수잔 비어 감독의 <형제> 또한 관객의 높은 지지를 받았다. 유엔군으로 아프가니스탄에 갔다가 헬기 추락 사고를 당한 뒤 생사가 확인되지 않는 형 미하엘과 범죄를 저지른 뒤 사회에 적응 못하는 동생 야니크 사이의 이야기는 단순한 듯 보이면서도 보는 이들의 눈가에 물기가 마르지 않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오픈 하트>로 2003년 선댄스영화제에 참여한 바 있는 비어 감독은 캐릭터의 내면을 폭발적인 힘으로 드러내는 능력을 보여준다.

루저들에게 동정없는 세상

중견감독의 저력: <웬디에게>와 <토니 타키타니>

<웬디에게>

<토니 타키타니>

“이번 영화제에서 가장 논쟁적인 영화”라는 평가를 들은 작품은 토마스 빈터베르그의 <웬디에게>였다. 도그마의 흔적을 완전히 털어낸 이 작품은 형식이 아니라 소재로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딕(제이미 벨)은 탄광촌에서 비루한 일상을 살아가는 소년이다. 평생 광부로 살아온 아버지를 잃은 그는 선물가게의 수잔으로부터 구식 장난감 권총을 산다. 얼마 뒤 이 물건이 발사 가능한 진짜 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자신감을 갖게 되고 ‘루저’로서의 삶을 떨쳐버린다. 그는 총을 만드는 데 타고난 재주를 가진 친구와 함께 열심히 총을 제작하고, 동네의 못 나가는 아이들을 모아 ‘댄디스’라는 조직을 만든다. 댄디스의 목적은 평화를 지키는 것이지만, 이들에게 총은 애인이자, 친구(웬디는 딕이 가진 총의 이름이다)인 탓에 절대로 총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규율 또한 갖고 있다. 총을 가짐으로써 이들은 세상에 당당하게 고개를 쳐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소년, 소녀들이 사소한 문제에 휘말려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는 과정을 그리는 <웬디에게>는 루저들의 공동체에 대한 꿈과 비정한 세상을 박진감 있게 그려낸다. <빌리 엘리어트>의 주연 제이미 벨의 ‘성숙한’ 모습이 반갑기도 하다.

<웬디에게>가 가장 격렬한 영화라면, 일본의 중견 이치가와 준의 <토니 타키타니>는 가장 정적인 영화에 속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동명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이 영화는 토니 타키타니라는 한 남성의 우울한 삶을 고요한 분위기 속에 담아낸다. 대사가 절제되는 대신 영화는 한편의 소설을 그대로 읽듯, 대부분의 장면은 내레이션으로 처리한다. 또 집요하게 반복되는 수평 트래킹 숏과 수평이동을 이용한 화면 전환은 주인공의 꼼짝달싹할 수 없는 삶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CF감독 출신다운 섬세한 화면구성 또한 정적인 느낌을 강화한다. 80년대 <산타페>라는 누드 사진집으로 유명했던 일본의 스타 미야자와 리에가 발산하는 파리한 아름다움도 영화의 중요한 구성요소. <토니 타키타니>는 문학을 영화로 옮기는 독창적인 방법을 제시하는 작품이다.

개 같은 어린 날의 추억

선댄스 키드의 귀환: <신비한 살갗>과 <월요일에서 온 여인>

<신비한 살갗>

<월요일에서 온 여인>

‘선댄스 익스프레스’를 타고 할리우드 주류로 진출한 여타 감독들과 달리, 할 하틀리와 그렉 아라키는 여전히 독립정신을 간직한 선댄스의 정신적 지주들이다. 하지만 두 명장 감독의 신작은 상당히 다른 색채를 보인다. 그동안 게이영화 감독으로 정평이 나 있었던 그렉 아라키가 들고 온 신작 <신비한 살갗>은 게이를 소재로 다루고 있지만, 감독 스스로의 말대로 게이영화는 아니다. 같은 마을에서 자란 동갑내기 친구의 파괴적인 이야기를 그리는 이 영화의 주인공은 어린 시절 야구 코치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뒤 남성을 상대로 몸을 파는 영악한 삶을 살아온 닐(조셉 고든 레빗)과 역시 어린 날 UFO를 만난(것으로 생각하는) 뒤, 기억의 일부가 손상돼 있는 브라이언(브래디 콜벳). 스콧 하임의 소설을 바탕에 둔 이 영화는 두 아이의 삶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1983년의 어느 날로부터 91년 크리스마스 이브까지의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 전반에 깔려 있는 미스터리 구조가 긴장감을 부여하며, 강요된 게이로서의 성정체성이라는 문제제기 또한 흥미롭다. 무엇보다 <신비한 살갗>은 어린 날의 트라우마가 훗날 어떻게 확대재생산되는가를 무게있게 그린다는 점에서 <미스틱 리버>를 연상케 하며 그렉 아라키의 최고 걸작으로 꼽힐 만하다.

할 하틀리는 <월요일에서 온 여인>을 통해 엉뚱하게도 ‘초저예산 SF’에 도전한다. 영화의 배경은 ‘소비자 혁명’을 통해 미국이 MMM이라는 조직에 장악된 지 얼마 뒤. 세상의 모든 것은 구매력에 의해 판단된다. 섹스 또한 마찬가지로, 섹스를 하려면 성에 대한 구매력이 있어야 한다. 주인공인 잭(빌 세이지)은 MMM의 상층부에서 일하면서 반혁명 조직을 이끄는 리더로 갖가지 반란을 일으키지만, 일이 뜻대로 풀리지는 않는다. 그 와중에 외계에서 수수께끼의 여인이 잭 앞에 나타나고 상황은 변화될 기미가 보인다. 하틀리의 지독한 비관주의가 엿보이는 <월요일에서…>는 그의 뉴욕에서의 영화 만들기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또한 느끼게 해주는 영화다.

망가진 나오미 와츠를 보러와요

할리우드 스타의 도전: <엘리 파커> <듀에인 호프우드> <썸서커>

<엘리 파커>

<듀에인 호프우드>

선댄스의 영화에서 할리우드 스타는 대변신을 꾀한다. 나오미 와츠가 프로듀서로까지 참여한 <엘리 파커>는 할리우드 스타와 독립영화의 가장 행복한 결합을 보여준다. 엘리 파커(나오미 와츠)는 지지리도 못 나가는 할리우드의 3류 배우다. 스타가 되는 꿈에 부풀어 있지만 불행히도 그에겐 연기에 대한 재능도 없고, 진득한 정신도 없다. 오디션은 가는 족족 탈락이요, 행여 배역을 맡는다 해도 엄청나게 작은 역할만이 그에게 주어진다. 어느 날 자동차 사고를 당한 엘리는 상대방이 촬영감독이라는 말에 용서를 해주지만 그의 정체가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자 분노를 터뜨린다. 3류 배우의 복창터지는 일상을 디지털카메라의 표피적인 영상으로 담은 <엘리 파커>는 나오미 와츠의 과감한 변신 노력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프렌즈>의 스마일 가이 데이비드 시머는 <듀에인 호프우드>에서 한없는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듀에인 호프우드를 연기했다. 아이를 뒷자리에 태운 채 음주운전을 한 뒤로 그의 인생은 급전락한다. 운전면허를 빼앗기고, 아내에게 이혼당하며, 직장에서까지 쫓겨나는 신세가 된다. 마침내 끔찍이 사랑하는 두 아이의 접견권마저 빼앗길 찰나, 그는 소송을 통해 삶의 마지막 희망을 붙잡으려 한다. 시머의 유약한 인상 탓에 보는 이로 하여금 더더욱 한숨을 짓게 하는 <듀에인 호프우드>는 마지막 순간까지 주인공에게 일말의 빛도 주지 않는, 현실의 드라마다.

올해 선댄스영화제 미국 극영화 경쟁부문 중 가장 창의적인 작품 중 하나로 꼽혔던 <썸서커>는 한 소년의 성장영화다.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 마이크 밀스 감독은 독특한 앵글과 호흡으로 마음속 불안을 엄지손가락을 빠는 것으로 달래는 소년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인물은 키아누 리브스로, 그는 뉴에이지 사상에 경도된 치열교정사 역할을 선보인다. 그의 뻣뻣한 연기가 돋보일 수 있는 캐릭터인 탓에 관객은 연신 웃음을 터뜨렸다. 그외에도 틸다 스윈튼, 빈센트 도노프리오, 벤자민 브랫, 빈스 본 등이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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