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고 탈도 많았던 문화방송 <영웅시대>가 이제 2회를 남겨두고 있다. <영웅시대>는 지난해 7월 100부작으로 시작됐지만, 문화방송 쪽은 ‘기대에 못 미치는 시청률’과 5월께 방송될 <제5공화국>과 일부 내용이 겹친다는 이유로 70부 조기 종영을 결정했다. 그러자, 작가 이환경씨는 지난달 초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자청해 “방송 시작 전 여권 고위 관계자에게서 ‘정치권 차세대 주자를 다룰 때 정말 조심하지 않으면 큰 일 날 것이니 주의하라’는 전화를 받았다”는 이른바 ‘정치권 외압설’을 ‘폭로’했고, 이때부터 <영웅시대>를 둘러싼 설왕설래가 본격화됐다. 이미 삼성·현대 그룹 미화와 이명박 서울시장의 영웅화, 근현대사 왜곡으로 입길에 오르던 터라, 이씨의 폭로는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다. 조기종영이 가시화되면서 불거지기 시작한 출연 탤런트들의 불만은 최근 연출자 소원영 피디의 인사위원회 회부 소식에 터져나왔다. 지난 14일 유동근, 나한일 등이 출연 거부를 선언한 것이다. 이들의 출연 거부는 곧 철회됐고, 방송시간 3회 연속 초과에 따른 징계는 의 김영희 피디가 회부돼 있을 정도로 흔한 일이라는 것이 문화방송 피디들의 말이지만, 출연작의 조기종영으로 피해를 입은 출연자들이 발끈할 만한 일이라는 생각은 든다.
문제는 3개 보수신문의 사설과 한나라당의 성명 발표로 정치 이슈화하기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조·중·동은 외압설에 대한 팩트(사실)를 기사화하지는 않았지만, ‘외압설’을 기정 사실화하며 실체를 밝히라고 여권을 공격했다. 이어 한나라당은 “‘영웅 죽이기’를 교사한 살아 있는 권력의 실체를 밝히라”는 논평까지 발표했다.
이씨를 인터뷰한 신문들이 왜 외압설의 실체까지 밝히지 못하는지는 참으로 궁금한 일이지만, 이들 주장의 고갱이가 틀리지는 않았다. <영웅시대>는 이제 곧 끝난다. 단선적인 캐릭터와 밋밋한 스토리 라인, 억지스러운 이야기 전개 등의 평가와 작품의 완성도 따위는 드라마 종영과 함께 더 이상 관심 밖일 것이다. “재벌 미화와 군사 독재의 합리화는 전혀 없을 것”이라던 제작진의 다짐이 지켜졌는지도 이제 훗날 드라마 비평가의 평가를 받으면 될 터이다. 경제난에 시달리는 국민들에게 영웅의 모습을 되살려 희망을 심어줬는지, 재벌 미화와 특정인 띄우기, 역사 왜곡으로 문화방송 드라마에 오점을 남겼는지도 머잖아 ‘방송드라마 역사’에나 실릴 일이다.
그러나, 드라마가 끝나고 <영웅시대>가 방송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더라도 정치권 외압설은 반드시 풀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이씨의 입에서 시작돼, 조중동이 나팔 불고, 한나라당이 정치 쟁점화하면서 지금껏 3박자가 잘 맞아떨어졌다. 그러나 이제부터다. <영웅시대> 촬영은 20일 끝났고, 앞서 대본 집필도 마무리 됐을 것이다. 이씨가 지금까지 대본 작업에 바빠 외압설에 대해 함구하고 있었다면, 이젠 입을 열 때다. 조중동도 팩트 취재에 자신이 없는 것이 아니라면, 어서 취재에 나서 파헤치길 바란다. 한나라당은 수구언론의 사설 베끼기 논평은 그만 두고, 이씨를 설득해 드라마에 압력을 넣은 여권 관계자를 국민 앞에 세우는 것이 빠를 것이다.
이들 정연한 3박자에 문화방송은 난처했겠지만, 모든 문제의 가장 핵심적인 책임은 문화방송에 있다. 이씨를 기용한 것도, <영웅시대>를 기획·제작한 것도 문화방송이다. ‘외압설’이 근거 없다는 부정만 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이 문제 해명에 나서길 바란다. 곧 방송문화진흥회에서 선임될 문화방송의 차기 대표이사라도 나서 ‘<영웅시대> 진상규명위원회’라도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