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의 코엑스몰에 ‘아쿠아리움’이 있다. 올해 초, 인공의 지하에 조성된 이 구경거리에 참례하기 위하여 나들이했다. 20세기 공학의 오랜 노하우와 신개념이 축조해놓은 코엑스몰은 편리와 효율, 쾌락과 소비를 120% 만족시키기 위한 ‘합리적’ 동선으로 짜여져 있었다. 대규모 문화공간의 두세배가 넘는 주차비와 입장료가 제몫을 하리라는 신화가 곳곳에 펼쳐져 있었다. 원스톱 솔루션! 그러나 그것은 코엑스몰을 실체적 존재의 공간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에게나 통하는 얘기일 뿐 기나긴 삶의 어느 한 찰나를 잠시 토막내어 들러보는 구경꾼에게 있어 그곳은 황순원이 오래 전 단편에서 쓴 바 있는, 출구를 찾아서 원형의 미로를 계속 맴도는 착란 현상(린반데룽)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줄 뿐이었다.
그럼에도 매우 세련된 소비감각이 곳곳에 치장되어 있어 내면의 욕망을 애써 숨기지 않아도 될 듯한 안도감을 주는데, 그러나 ‘아쿠아리움’을 한 바퀴 돌고 출구로 나서면 황당한 공간배치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그곳은 이제까지 구경한 온갖 물고기들의 모형과 캐릭터상품이 진열된 곳으로 우선 꼬마들이 제 세상을 만난 듯 움직이지 않는다. 절묘하면서도 당당한 공간배치다. 돈을 쓰지 않으면 안 되도록 설계된 것이다.
그뿐인가. 중앙일보사 사옥의 호암갤러리 역시 마찬가지다. 그곳의 출구는 미술 팬시매장으로 이어진다. 피해갈 수 없다. 다른 곳에도 매장은 있다. 예술의 전당에도 있고 과천 현대미술관에도 있다. 청와대 뒤의 환기미술관에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출구로부터 조금은 벗어나 있다. 하지만 호암갤러리는 아예 출구 자체가 매장으로 이어져 있는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누구도 이를 불편해하지 않는 표정이란 점이다. 이응노 셔츠, 백남준 시계, 김창열 노트…. 미술관람에 쏟았던 정성보다 더 지극하고 진지한 시간이 된다. 미술품은 한나절의 정신적 드라이크리닝으로 충분했으며 눈앞의 팬시상품은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익힌 모든 감정교육과 소비성향을 집중하여 신중하게 선택해야 할 실존적 명령의 계기가 된다. 키치적 속물성으로부터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 나 역시 매장을 한 바퀴 돌았다.
이상의 기억은 몇달 전의 것으로 사실인즉 며칠 전 에버랜드에 나들이 갔다가 생생하게 재확인한 사안들이다. 우선 입장하기 전에 일행은 지갑을 꺼내 카드를 확인했다. 무료입장 혜택을 준다는 카드를 제시하고 신선한 기분으로 입장. 내 경우도 자주 운전을 하는 편이라서 주유 혜택을 준다는 전화를 듣고 신청했더니 에버랜드 무료입장 ‘혜택’을 준다는 카드였다. 거기까지는 즐거웠다. 하지만 무료입장의 혜택을 입은 어른 셋은 오히려 돈을 더 많이 써야 했다. 꼬마들 데리고 몇번 놀이시설을 탔더니 그곳의 ‘자유이용권’ 금액을 훌쩍 넘겨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그제서야 머릿수대로 자유이용권을 끊을 수도 없어서 꼬마들만 네장 끊었는데 그것만 해도 무료입장의 혜택으로부터 멀찌감치 벗어나는 금액이었다.
그곳의 리프트 역시 정교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입구를 지나 온갖 매장이 줄지어 선 사이를 걷자 장미정원과 사파리월드로 내려가는 리프트가 있었다. 그것을 탔다(그때까지도 못 느낀 점이지만 그 순간 우리는 자유이용권에 육박하는 별도의 금액을 내고 있었다). 어쨌든 즐거운 감상의 한순간이었다. 지상으로부터 불과 10여m 높이지만 청량한 대기권에 5분가량 머물러 이동하는 순간은 잔잔한 별미이다. 탈 수 있는 놀이기구가 서너개뿐인 네댓살 꼬마들에게도 리프트는 경이로움을 준다. 그런데 이 리프트가 아래쪽에 도착하더니 곧장 캐릭터매장으로 이어지는 게 아닌가. 상식에 입각하여 출구를 찾으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매장을 통과하시면 출구가 나옵니다’는 안내문이 기다렸다. 그 안에는 꼬마들을 다독여 바깥으로 탈출하려는 부모들의 고함소리가 넘쳐났고 불과 3분 뒤 나 역시 같은 주제의 변주를 목청껏 울릴 수밖에 없었다.
정말 우연의 일이지만(독자 여러분 믿어주세요), 에버랜드를 다녀온 다음날이었다. 꽤 오랫동안, 그쪽 회사에서 내는 신문을 구독했는데, 오전에 전화가 걸려왔다. 수화기 저쪽에서 나를 찾았는지 습관대로 아내는 부재중이라고 알렸다. 그리고 몇 마디 대화가 오갔다. 전화를 끊자 내가 누구냐고 물었고 아내는 신문사에서 ‘애독자 100분’을 추첨하여 이러쿵저러쿵 혜택과 어쩌구저쩌구 선물을 주는데 내가 뽑혔다면서 부재중이니 한 시간 뒤에 다시 전화를 걸겠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한 시간 동안 우리 부부는 그 전화를 기다렸다. 벨은 울리지 않았고 지금까지 그 전화는 다시 걸려오지 않았다. ‘이건 또 무슨 수작이냐’는 이성의 논리와 ‘다시 건다고 했으면 기필코 약속을 지켜야지 당최 예의범절을 아는 사람들인가’ 하는 감정의 교란 사이에서 나는 머물러 있다.
아, 이 기막힌 현실이여!
정윤수/ 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