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대학 도서관에서 옛날 학보들을 뒤적거리다 <문스트럭>에 대한 비평을 하나 읽은 적 있습니다.어디 것이었는지는 몰라도 대충 이런 내용의 문장이 들어 있었다는 건 분명히 기억해요. "도대체 오염된 뉴욕의 하늘에 어찌 그렇게 청명한 보름달이 뜰 수 있는가. 그리고 미국 같은 나라에서 배관공에 불과한 주인공의 아버지는 어떻게 교수보다 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가."
에헴, 사실 뉴욕 같은 곳에서는 서울보다 보름달이 더 잘 보일 겁니다. 해변 도시여서이기도 하지만 최근 들어 꽤 엄격한 규정을 적용시켰기 때문에 그 동네 대기조건은 서울보다 분명히 낫거든요. 게다가 주인공 아빠와 같은 일급 배관공이라면 대학교수 따위보다야 돈을 많이 벌겠죠. 왜 배관공이 돈을 못 버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어요. 노동자 계급이기 때문에?
그 글을 읽으면서 얼마나 배를 잡았는지 몰라요. 주변 사람들이 신문철을 앞에다 두고 머리를 팡팡 박는 저를 이상한 눈으로 째려보던 게 생각납니다.
하긴 10년 전만 해도 그런 글은 꽤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런 학보에 실리는 비평에서 다양한 어조를 찾는 것 자체가 힘들었지요. 게다가 <문스트럭>은 당시엔 안 보는 게 애국이었던 직배영화였을 겁니다. 당연히 영화의 질과는 상관없이 얻어터져야 했는데, 방법이 미숙했던 거죠. 하긴 그 글을 쓴 사람도 지금 그 기사를 읽으면 창피해서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를 거예요.
10년도 더 지난, 내용도 잘 기억나지 않는 옛날 글을 제가 물고 늘어지는 이유는 제가 이 영화를 꽤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리틀 이탈리아의 바글바글한 지형 속에서 딘 마틴과 자코모 푸치니의 노래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미친 쟁반처럼 커다란 달이 사랑에 빠진 사람들을 뻥뻥 후려치는 그런 이야기 말이죠. <문스트럭>은 제가 요새 나오는 로맨틱코미디가 잃어가고 있다고 믿는 모든 장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충분히 영리하면서도 열정을 잃지 않을 줄 알고 정신없이 과장된 로맨스를 쏟아대면서도 그걸 진짜처럼 이야기할 수 있는 그 미묘한 균형 말이에요.
이런 희귀한 보석을 그 사람들이 쉽게 즐길 수 없었던 건 슬픈 일입니다. 하긴 로맨티시즘 자체에 냉소적인 사람들이 있고 그거야 저 알 바 아닙니다. 각자의 취향이니까요. 뉴욕의 스모그와 배관공의 연수입을 걱정했던 그 학생도 그런 부류였을지도 모르죠…. 아뇨, 그런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그저 남들 하라는 대로 따라했을 가능성이 높아요. 당시엔 다들 그랬으니까. 그러고보니 같은 페이지에 <아빠는 출장중>의 인민재판을 보고, ‘우리가 생각한 것과 달리 인민재판은 꽤 공정하지 않은가’라고 쓴 글도 실려 있었어요. 필자가 영화가 이야기하는 내용과 선배들한테서 물려받는 교본 사이에서 어떻게든 타협점을 찾으려고 애를 쓰는 장면이 눈에 선하군요.
이런 식으로 놀려대는 건 정말 옳지 못한 일입니다. 당시에 학보에 기사를 쓸 만한 나이의 학생들은 그렇게 맘편하게 영화를 볼 환경에 있지 못했으니까요. 하지만 비디오라는 것이 있어서 요새 사람들은 배관공 연수입을 걱정하지 않고 애국심을 버리지도 않으면서 카스토리니 일가족의 로맨스를 맘편히 즐길 수 있습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죠.djuna01@hanmail.net
(는 이번주로 연재를 마치고, 다음주부터는 <김소연의 DVD>가 새로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