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습을 깨는 액션을 보여줄 기회다”
무술 _ 허명행
단련된 전문가가 펼치는 무술스턴트가 깡이나 악으로만 될 리 없다. 류승완 감독의 일련의 초기작이 사람들에게 신선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그렇다고 독립영화에서는 차에 부딪히는 장면을 빼고 액션영화를 포기할 수는 없는 일. 그럴 때면 달려가야 할 곳이 한국무술스턴트의 요람인 서울액션스쿨이다. 무술스턴트 7년차 허명행(26)씨는 국가대표 무술감독 정두홍의 애제자이다.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김성수 감독의 인터넷 단편 <빽>, <올드보이>의 장도리신, <아라한 장풍대작전>의 고깃집신에서 짧은 머리, 동그란 눈의 그를 발견할 수 있다. “툭하면 건달 역으로 출연”해달라는 친구들의 제안으로 인연을 맺은 독립영화는 그에게 “상업영화와는 다른 새로운 아이디어의 실험장”으로 자리매김했다.
* 어떻게 독립영화를 하게 됐나? 다른 파트와는 달리 무술은 “독립영화에서 스턴트가 필요하다고 액션스쿨로 전화하는 사람은 없다”는 게 현실. “상업영화 영역에서 만난 사람들이 만드는 독립영화에 참여”하는 반대 수순을 밟은 것도 그런 작업특성이 작용했을 터. 따라서 허명행씨도 친구, 선후배 사이에서 출발했다. 처음에는 출연제의에 가까웠던 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무술스턴트나 무술지도의 방향으로 향해갔다. 액션스쿨 1기인 김권군의 <발차기, 허공을 가르다>를 도왔고, 필감성 감독의 소개로 만난 영화배우 김인권의 졸업작품인 <쉬브스키>에서 무술스턴트를 하면서 그의 얼굴은 서서히 독립영화계에 알려지는 중이다.
* 독립영화를 하는 이유는? “아이디어가 아무리 많아도 상업영화에서는 제작비나 촉박한 시일 때문에 거절되는 사례가 많다. 독립영화에서는 돈만 제외하면 아이디어는 얼마든지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친한 사람들이고 연령대가 맞기 때문에 논의가 쉽고 정서를 공감하는 것도 빠르다고. 실제 스턴트나 장르적 관점에서는 “상업영화에서는 주인공이 덩치 큰 배우들을 쓰러뜨리는 것에 고정되지만, 독립영화에서는 덩치 큰 배우들이 붕붕 날아다니는 역발상도 가능”하다. 액션장르의 클리셰를 뒤집고 새로운 액션을 보여주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거다. 독립영화라고 스턴트의 난이도가 낮다고 짐작하는 것은 금물. 배우 유지태가 연출한 <장님은 무슨 꿈을 꾸는가>의 촬영에서 시각장애인이 건널목을 건너다 차에 부딪히는 부분이 있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설정임으로 스턴트맨 지중현이 차를 쳐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 차와 부딪친 뒤 와이어에 끌려 하늘로 올라가야 하는 고난이도의 장면. 머리가 찢어진 상황에서 일곱 테이크나 투혼을 발휘한 선배 지중현을 보면서 와이어를 잡았던 허명행씨의 손에는 땀이 흥건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긴장감은 고스란히 판단력이나 현장관리의 경험으로 그의 몸에 새겨진다.
* 독립영화에 바란다 “<매트릭스>에서 봤다, <본 슈프리머시>에서는 하던데.” 허명행씨가 지적하는 가장 곤란한 상황이다. 연출자들은 다른 영화에서 봤던 것은 그대로 구현할 수 있다는 발상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그것에 투입된 막대한 투자와 시간은 고려되지 않는다. 이는 독립영화뿐만 아니라 상업영화에서도 종종 발생하는 문제이다. 그는 단편영화 연출자들이 과감하게 액션스쿨의 문을 두드리고 도움을 청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아는 사람들하고만 작업하는 상황을 넓히는 것은 가능하므로 연출자들이 활용하길 바란다는 취지에서다.
* 필모그래피 상업영화 <쉬리> <무사> <공공의 적> <올드보이> <태극기 휘날리며> <아라한 장풍대작전> 등 다수 독립영화 <쉬브스키>(김인권), <발차기, 허공을 가르다>(김권군), <죽탱이를 돌려라>(이성태), <장님은 무슨 꿈을 꾸는가>(유지태) 등 다수
“함께 발전해 나가는 과정이 즐겁다”
믹싱 _ 김수덕
90년대 중반 이후 한국 독립영화의 성장기를 함께한 김수덕(45)씨에게는 독립영화의 친구보다는 ‘대부’라는 호칭이 어울린다. 50여편에 달하는 상업영화, 그리고 1995년부터 만들어진 독립영화의 과반수를 포함하고 있는 그의 필모그래피는 대략적인 헤아림도 불가능한 상태. 2003년, 양수리 녹음실에서 홍릉 영화진흥위원회 공공영상기술지원팀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최근 영화진흥위원회가 개설한 사이버기술지원센터(필름이즈: nsc.kofic.or.kr/forum/category.asp) 활성화로 여념이 없다. 웬만해선 거절하곤 하는 인터뷰를 수락한 이유 역시, 영화제작 전반에서 디지털 기술이 보편화됐음에도 여전히 기계와 기술을 어려워하는 독립영화인들에게 이 인터넷 포럼이 실질적인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는 것이 그의 수줍은 고백이다.
* 어떻게 독립영화를 하게 됐나? 그는 1990년 영화아카데미 6기를 수료한 뒤, 영화진흥위원회 녹음실로 첫 출근했다. 당시 아직 모르는 것이 많다고 여긴 그로서는, 미숙한 점을 상호 보완할 수 있는 독립영화가 한결 익숙한 작업이었을 것. 이것은 피차 배우는 처지였던 독립영화 감독들도 마찬가지여서 연출의 의도를 최대한 수용하려는 그의 작업방식은 감독들 사이에서 점점 유명해졌고, 언제부턴가 녹음실에서는 독립영화라면 으레 그의 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작업이 세세한 단계로 분화되어 있는 상업영화와 달리 독립영화는 모든 믹싱 과정을 기사 한 사람이 총괄해야 한다. 따라서 아무리 단편이라도 집중적인 믹싱기간은 일반적인 상업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 그러나 그는 총체적인 과부하가 불가피한 상황에서도 “독립영화가 아마추어리즘의 장은 아니”라는 생각에 더욱 노력을 기울였고, 이것은 다시 스스로의 커리어에도 도움이 되어 주었다, 고 그는 말한다.
* 독립영화를 하는 이유는? 상업영화에 비해 독립영화 감독들은 영화 한편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게 마련. 김수덕씨는 그러한 “전력투구의 결과물”을 감독과 함께 만들어가면서 한 사람의 교양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을 독립영화작업의 가장 큰 매력으로 꼽는다. 1주에서 한달까지 끌게 되는 믹싱기간. 돌이켜보면 영화 속 사소한 장면에 관한 이야기가 서로의 인생관으로 연결되고, 끼니마다 양수리의 맛집들을 찾아다니며 수다를 이어가다보면 작업은 뒷전인 경우도 허다했다. 그렇게 절친해진 감독의 작품은 믹싱을 거치면서 한결 발전하고, 완성된 영화는 여러 영화제에서 좋은 결과를 얻고, 감독은 그 작품을 발판으로 메이저로 진출하기도 한다. 그 과정을 함께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짜릿함은, 어떠한 경제적 보상도 대신할 수 없는 희열. 그러한 기쁨이야말로, 김수덕씨가 힘겨운 독립영화 믹싱에 계속해서 욕심을 내게 만든 힘이었다.
* 독립영화에 바란다 저렴한 작업료 덕분에 수많은 독립영화 일감이 영화진흥위원회로 집중되는 현실에서 “무조건 사적인 관계로 밀어붙이는” 것은 커다란 문제. 현재 어떤 단계까지 믹싱작업이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정확하고 구체적인 설명없이 무조건 찾아와 마감기한을 들이밀면서 “일단 뭉개고 보는” 경우는 아직도 허다하다. 현장의 사소한 기술적 실수 때문에 믹싱실에서 다소간의 수고를 감당해야 하는 것은 별 문제가 안 된다. 작품의 방향과 관련한 연출자의 고집이야, 좋은 영화가 나오기 위한 기본이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독립영화 전체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막무가내식 작업 요구는, 시스템을 준수하는 수많은 독립영화에 피해가 될 수 있는 ‘절대악’이라고.
* 필모그래피 상업영화 <중독> <휘파람 공주> <아 유 레디?> 등 다수 독립영화 영화아카데미 졸업작품 대부분, <노을소리>(홍두현) <거칠마루>(김진성)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