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눈이란 어찌나 간사하고 의심이 많은지, 직접 보기 전까진 잘 믿지도 않고 실감도 못하게 마련이다. 그러니까 올해 초부터 뉴욕의 많은 잡지와 뉴스에 솔솔찮게 등장했던 크리스토와 장 클로드의 ‘게이츠’(The gates) 프로젝트를 내내 접하면서도 참 노인네들 뭐하러 그런 걸 만든담, 하고 심드렁하게 느꼈던 게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걸어 다니기에도 벅찬 센트럴파크의 모든 길을 주황색 천으로 뒤덮을 예정이라니, 어른들 말대로 밥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쌀이 나오는 것도 아닌 일이었다. 어쩌면 내 상상력의 팔이 그들의 예술에 닫기에 지나치게 짧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지난 2월 12일 아침, 마침내 그 문들이 열렸을 때 나는 잠시 멍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이. 럴. 수. 가. 규모도 규모거니와 그 주황색 문들이 맨하탄 겨울바람의 속도와 방향에 맞추어 펄럭이는 소리만 듣고 있는데도 이들이 뭔가 대단한 작업을 마쳤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전시에 발맞춰 현재 모마(MoMA)에서는 그동안 크리스토와 장 클로드가 해왔던 수많은 작업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상영하고 있는데 퐁네프 다리를 포장하고 일본을 푸른 우산으로 뒤덮고 마이애미의 섬을 분홍 천으로 싸버리는 것 같은 과정을 하나하나 보고 있자니 참 이 인간들 너무 ‘징하다’라는 말이 입에서 튀어나올 정도였다. 그 긴 프로젝트가 어떤 위대한 메시지를 주는지를 떠나서, 환경미술이니 대지미술(Earth Work)이니 하는 정의나 분류를 떠나서, 그들이 쏟아 부은 오랜 시간과 노력은 존경을 바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종종 “넌 도대체 뭘 진득하게 하는 걸 본 적이 없어”라는 말을 들었던 것 같다. 호기심이란 샘은 넘쳐났지만, 싫증이란 두레박은 쉬지 않고 이 샘으로 저 샘으로 옮겨 다녔다. 피아노도 체르니 몇 번에선가 멈추었고 기타는 기본코드에서 도돌이표를 그렸다. 누군가가 막 좋았다가 이내 싫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진득하게 하는 것이 하나쯤은 생기기 마련이다. 예전에 설경구가 “식구들이 나보고 뭐 하나 오래하는 꼴을 못 봤는데 연기 하나는 오래한다고 신기해 하더라고요. 그러고 보면 평생 이거 하고 살란 팔자인가 봐요” 라고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아마도 나에겐 그것이 TV를 보거나 영화를 보는 일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들 부부에겐 그것이 뭔가를 열심히 싸대고 포장하는 일이었나 보다. 2005년 2월에 비로소 대중에게 허락된 이 ‘게이츠’ 는 사실 1979년부터 준비되어온 프로젝트였다. 그러니까 올해 일흔 동갑내기의 이 부부는 마흔 다섯 살이었을 때부터 맨하탄에 이 문을 세울 생각을 시작한 것이다. 25년 동안 뉴욕시와의 마찰도 있었고 이런 저런 수정과 우여곡절도 많았다. 하지만 이들은 가공할만한 상상력에 무지막지한 집요함까지 가진 폭주기관차 같은 부부였다.
이들의 작업들을 하나 하나씩 알아가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바로, 80년대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마술사 데이비드 카퍼필드였다. 한때 만리장성을 통과하거나 자유의 여신상을 옮기는 그의 매직쇼를 보면서 그 엄청난 상상력의 규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쇼가 끝나고 TV를 끄고 방에 들어오면 어쩐지 허무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니까 어쨌든 마술이라는 거잖아, 자유의 여신상은 한번도 움직이지 않았고, 만리장성은 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게 분명했다. 하지만 크리스토와 장 클로드의 작업을 보는 순간에는 좀 다른 기분이 들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면, 이 부부는 25년 간 엄청난 양의 구슬을 꿰고 또 꿰었다. 마술과 달리 모든 ‘실재’ 하는 것들은 ‘시간’의 선상에 놓이기 마련이다. 그리고 짧던 길던 간에 시간이란 옷을 입은 것들은 ‘무게’를 가진다. 다음주가 지나면 단지 16일 동안 차고 있던 이 ‘보배’는 뜯어져서 재생용품 센터로 넘어가고 7천500개의 거대한 주황색 문들은 마술처럼 눈 앞에서 사라져버릴 것이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 참 쓸데없는 일처럼 느껴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문들이 그 곳에 실재했다는 것은 부정 할 수 없는 사실로 기록 될 것이다. 크리스토와 장 클로드의 작업은 상상과 환상에는 없는, 실제 하는 것의 무게와 가치를 눈으로 보여주었다.
잠시 따뜻해졌다가 이내 추워진 한 겨울의 맨하탄. 주황색으로 덮인 하늘 아래서 생각한다. 지금 손을 잡고 있는, 더운 피가 흐르는 진짜 사람의 무게. 한때 분명히 존재했던 관계의 무게. 이제 ‘21그램’의 영혼의 무게만을 남기고 사라졌든, 여전히 80킬로그램이라는 체중을 가지든, 환상이나 말 속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실재한 것들이 얼마나 참을 수 없이 무거운 것인가를. 어느 겨울, 한 공원의, 문 앞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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