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떡날이고, 달마다 떡달이다. 2월 초순 머슴날에는 올 한해 농사 잘 지어 달라고 양반네들이 머슴들에게 빚어주는 송편. 3월에는 활짝 핀 진달래 향기 담아서 향긋하게 붙여내는 화전, 4월엔 느티떡, 5월엔 수리취, 6월엔 증편과 유두면, 7월엔 백설기, 8월엔 송편, 9월엔 국화전, 10월엔 고사떡, 11월 동지팥죽에는 옹글게 뭉친 새알심 빠지면 안 되고, 12월 온시루떡으로 한해 부정을 떨어낸다. 일년 열두달, 떡과 함께 울고 웃지만, 뭐니뭐니해도 정월에 먹는 가래떡이 최고다. 가래떡만큼 올 한해도 막힘없이 술술 넘어가자. 떡 먹듯 풀어나가는 나의 떡 이야기.
절기마다 먹고, 잔치마다 하는 게 떡이라고? 눈물 젖은 떡을 먹어보지 못한 자, 인생을 논하지 말라. 어린 시절, 불린 쌀 가득 든 빨간 고무 ‘다라이’를 들고 방앗간에 가던 길은 눈물 흘리며 넘어가던 아리랑 고개였다. 무거운 다라이를 들고 걷느라 손가락에 빨갛게 눌린 자국은 화난 가슴처럼 화끈거렸고, 곱게 빻아 가져온 쌀가루로 쑥떡을 빚는 고사리 손은 아랑곳없이 TV나 보며 한량처럼 누워 있던 오빠와 남동생은 결코 내 살붙이일 리 없었다. 아들 귀한 집도 아니면서 딸만 부려먹는 엄마의 고약한 심사에 토라지고 말았는데, 엄마는 내가 만든 첫 떡을 내 입이 아니라 두 한량들의 입에 고스란히 바치는 게 아닌가! 아버지가 다시 잘 나간다 싶으니까 엄마는 한풀이라도 하듯 명절마다 엄청난 양의 떡을 해대기 시작했다. 통통한 콩알만 골라내어 쪄내고, 들깨랑 설탕 고루 섞어 만든 고명 넣어가며 밤새 송편 빚어내어 솔잎을 갈아대며 열번은 쪄낸다. 송편에 참기름 고루 발라내어 차례상에 얹다보면 추석날 하루가 고스란히 저문다. 눈물 젖은 떡을 먹어보지 못한 자, 진심으로 경고하건대 인생을 논하지 말라! 남의 떡을 탐내던 인생이 내 손의 떡도 감당 못하는 인생으로 바뀔 테니까.
떡방아 찧는 소리, 그 소리
떡이 이렇게 애물단지가 될 줄 알았으면 애초부터 떡을 바위보듯 하는 선비 정신을 지닐 걸 그랬다. 예전 백결 선생은 가난하여 설에도 떡을 찌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아내를 위로하기 위해 ‘쿵덕쿵덕’ 거문고를 켰다지 않는가. 좋은 일이 있으면 으레 떡방아 찧는 소리가 나야 한다는 조상들의 생각은 한두해를 거슬러올라가는 게 아니다. 아기가 태어나서 삼칠일이 되면 백설기를 해먹고, 백일에는 백설기, 붉은팥고물 찰수수경단, 오색송편을 고루 올렸다. 돌떡에는 여기에 대추·밤 등을 섞은 설기떡이 추가요, 애가 영특해서 책거리라도 할라치면, 촌지 대신 떡을 푸짐하게 만들어서 선생님과 급우들에게 돌렸다. 자식이 커서 결혼이라도 시키려면 떡 만드는 손이 또 바쁘다. 딸이라면, 찹쌀 3되와 붉은팥 1되를 시루에 안친 뒤 가운데에는 아들 7형제를 의미하는 대추 7개를 둥글게 모아놓고 함이 들어올 시간에 맞추어 찐 찹쌀 시루떡을 내야 하고, 아들이라면, 백편을 차곡차곡 높이 괸 다음 예쁘게 만든 화전이나 잘게 빚어 지진 주악, 각종 고물을 묻힌 단자 웃기를 얹어 떡으로 큰 상을 만들어야 한다. 정월에는 재산 많이 불리라고 희고 긴 가래떡을, 보름에는 오곡밥에서 연유한 약식을 먹었다. 명절음식, 통과의례음식, 제사음식이면서 일상적인 풍경에 빠지지 않던 게 떡이니 제아무리 선비라 해도 이를 무시하고 살 수가 있나. 최소한 제상에 차좁쌀을 잘 쪄서 곱게 찧은 떡이라도 올려야지.
<삼국사기>를 보면 유리와 탈해가 서로 왕위를 사양하다 떡을 깨물어 생긴 잇자국을 보고 이의 수효가 많은 사람이 왕이 되기로 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떡을 씹어 시험한 결과, 유리의 이가 더 많아 왕이 되었다니 떡이 권력의 중심에 등장한 순간이다. 충남 해안가에서는 해장떡이 전해오는데, 이는 뱃일하러 가는 사람들이 뱃속을 든든하게 채우고 일을 하기 위해 된장국에 시루팥떡을 말아먹는 것을 말한다. 밥 한 그릇으로 쉽게 헛헛해지는 속을 추스르고, 고기 한점 없어도 잔칫상을 차릴 수 있게 하는 떡을 이렇게도 먹었다.
장인은 없고 명인은 있다?
그러나 떡 만드는 번거로운 과정을 일일이 감당할 수 없다보니, 정월이면 고무 다라이를 잇대놓고 떡 만드는 데 여념없던 더운 방앗간이 하나둘 사라지고, 대신 서울에는 떡 전문점이 밀집한 거리가 생겨났다. 서울 인사동 떡골목, 견지동, 장충동 지역은 예전의 떡 만드는 방식을 고수하면서 새로운 맛을 더해 명맥을 잇고 있는 곳이다. 여기에는 대를 이어 하는 떡집도 있고, 신속배달 자랑하는 잔치 전문 떡집들도 많다. 서울시 용산구 후암동에 위치한 ‘홍익떡집’은 20년이 채 안 됐지만 어머니가 아들에게 대물림해 운영되고 있는 방앗간이자 떡집이다. 김왕자(60)씨가 전통음식에 관심을 갖고 일으킨 떡집을 아들 배상범(36)씨가 어머니의 뜻을 이어받아 운영 중이다. 김왕자씨는 “요즘엔 불린 쌀을 가져와 쌀가루를 빻아서 떡을 해먹는 집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며 “이제는 새벽부터 줄을 서 떡을 만들어가는 모습 역시 사라졌다”고 한다. 떡을 만드는 기계도 건강에 해롭다고 해 쇠모터가 돌모터로 바뀐 지도 벌써 10년이 다 돼가지만 기계 돌릴 일은 많지 않다.
혹시 옛 조상들의 떡을 후대에 전수하는 인간문화재 ‘떡 장인’은 없을까? 30여년 가까이 전통음식 연구에 힘을 쏟은 한국전통음식연구소 윤숙자 소장은 “명인은 있으나 장인은 없다”고 했다. 국가에서 공인하는 명장부문에 전통음식 장인, 서양음식 장인은 있어도 김치 장인, 떡 장인은 없다는 것. 대신 한국전통음식연구소에서 매년 ‘전국떡박람회, 떡만들기 경연대회’를 통해서 명인을 뽑고 있는데, 오는 5월이면 올해로 3회째를 맞는단다. 장인은 아니더라도 자그마치 10여년 동안 떡만 연구한 ‘떡 박사’ 윤 소장은 말한다. “빵과 케이크는 밀가루와 설탕, 버터를 많이 사용하죠. 그러나 떡은 찹쌀이나 멥쌀에 콩·팥 같은 두류, 호두·잣·땅콩 등의 견과류, 살구·감 등 과일류, 호박·쑥 등 채소류를 모두 재료로 쓰기 때문에 5대 영양소가 고루 들어 있어요. 인공적인 색 첨가도 없으니 그야말로 웰빙 건강식이죠.”
‘김치 다음으로 세계화될 음식이 떡’이라고 말하는 윤 소장은 얼마 전 어디서나 간편하게,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도록 떡 레토르트 제품을 개발했다. 햇반처럼 간편 용기에 담겨 있어 전자레인지나 찜통에 살짝 데우기만 하면 된다. 보관기간도 3개월이어서 해외 여행할 때 선물로도 가능하도록 상품성을 높였다.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준비가 착착 돼가는 셈이다. 인사동 거리를 중심으로 생겨난 떡카페들이 젊은 층을 대상으로 케이크처럼 부드럽고 달콤한 예쁜 떡을 만들어내는 것도, 떡집의 떡이 퓨전화돼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떡의 변화일 터. 그러나 역시 빨간 고무 다라이 들고 줄서서 기다리던 방앗간의 기억을 지울 수는 없다. 막 뽑아져 나온 희고 긴 가래떡을 손으로 뚝뚝 끊어 호호 불며 먹던 맛. 떡의 국제화에 토 달고 싶지는 않지만 국제화시킬 상품 말고 고향 생각나게 하던 그 투박하고 두툼했던 떡도 오랫동안 맛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장미희 아줌마가 ‘똑 사세요~’ 하며 팔던 그 시절 그 떡, 정말 먹고 싶다.
각 지방에선 어떤 떡을 먹었을꼬?
‘개떡’ 같은 맛, ‘꿀떡’ 같은 멋
지금은 지방마다 고유한 색이 묻어나는 떡을 찾기 어려워졌지만 예전에는 특산물과 지역문화에 따라 특색있는 떡들을 갖고 있었다. 서울·경기도 지방에서는 한반도의 중심답게 지방의 온갖 곡식들이 모여 약식 봉우리떡(두텁떡), 수수지지미(부꾸미), 개떡 등 다양한 떡이 만들어졌다. 모양도 작고 앙증맞으며, 멋을 부려 화려했다. 충청도에는 양반떡 따로, 서민떡 따로였다. 양반들이 꽃산병을 곱게 부쳐 잔칫상에 올릴 때, 서민들은 감자나 쑥을 버무려 푸짐하게 쪄서 먹었다. 기름진 평야로 많은 곡식을 키워냈던 전라도에는 사치스럽고 독특한 맛의 떡도 많다. 호박메시루떡, 고치떡, 감단자…. 달고, 구수하고, 씹히는 맛이 일품인 떡들이다. 과실이 많이 자란 경상도의 떡은 수수하고 소박한 것이 특징인데 모시잎송편, 밤·대추·감으로 만든 설기떡과 편떡 등이 있다. 북한의 떡은 잡곡, 수수, 보리를 넣어 크고 푸짐하게 만들어 먹지만, 역시 개성에는 찹쌀가루를 꿀에 묻히고, 다시 고물에 묻혀 감칠맛을 내는 개성경단으로 솜씨를 자랑하는 이들이 많았다.
오, 나의 사랑하는 떡!
신경숙 정은숙 윤숙자 강지영의 떡 이야기
떡을 두고 기도하던 어머니 신경숙/ 소설가 우리집이 큰집인지라 어머니는 잔치가 있으면 늘 떡을 제일 먼저 준비했다. 옛날엔 시루에 직접 떡을 쪄서 만들었고, 떡을 한다는 것은 큰일을 치른다는 의미였다. 도시에 나가 공부하는 자식을 위해 생일 전날이면 어머니는 시루에 팥찰떡을 쪄서 그대로 상에 물 한 그릇과 함께 올리고 밤새 초를 켜두거나 가끔은 기도도 하셨다. 하루가 지날 때까진 절대 팥고물 하나도 먹지 못했는데 막 쪄진 시루떡이 김이 모락모락나면서 어찌나 찰기가 흐르던지 몰래몰래 떼어먹다가 반절이나 먹은 적도 있다. 그렇게 상에 올린 떡은 하루가 지나면 식은 채 먹을 수 있었다. 6형제가 큰 지금까지도 어머니는 생일 전날에 시루떡을 하신다. 당신 곁에 두지 못한 자신들에 대한 어머니식의 챙김이었던 것 같다. 어머니의 자식챙김에 변화가 있다면 성당에 나가 초를 켜고 기도도 하신다는 거다. 떡은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가장 맛있고 귀한 것이었고, 설날과 정월초사흘과 비슷하게 겹치던 내 생일에도 풍족하게 먹을 수 있던 음식이다.
가래떡의 공포와 판타지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어릴 때, 성격이 퍽 내성적이었다.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가래떡을 하기 위해 쌀가루를 빻으러 방앗간을 가다가 그만 돈을 잃어버리게 됐다. 집에도 못 가고, 방앗간 앞 길가에서 반나절 동안을 앉아서 우는데 어른들이 아무도 내게 우는 이유를 묻질 않는 것이다. 누군가가 왜 우니, 하고 물어봐줬으면 좋았을 것을. 이후 그 일이 내겐 공포가 돼서 난 지금도 길거리에서 혼자 우는 아이나, 혼자 있는 아이를 보면 말을 붙여본다. 그리고 가래떡은 내겐 제대로 뭔가 했을 때 얻게 되는 완성품과 같은 느낌을 주게 됐다. 내가 돈을 잃어버림으로써 제대로 못한 심부름의 기억 때문에.
떡크기가 마음의 크기라던데 윤숙자/ 한국전통음식연구소 소장 떡은 정성과 사랑인 것 같다. 친구, 가족, 이웃과 함께 정으로 나누는 거니까. 옛날과 요즘의 떡을 비교해보면 다양하고 예쁘진 않아도 크고 투박했던 옛날 떡이 더 맛있는 것 같다. 두툼하게 쪄진 시루떡을 손으로 쭉 찢어먹던 내 어린 시절과 달리 요즘 아이들은 옷에 떨어진 팥고물 터느라 바쁘기 때문이다. 별수 있나. 요즘 세대를 위해서는 떡이 더 작고 예뻐져야 할 것 같다.
우리, ‘라이스 케이크’ 맞어? 강지영/ 푸드스타일리스트 떡 하면 한국, 중국, 일본을 떠올리지만 동남아시아에도 떡이 있다. 어렸을 때 말레이시아에서 살면서 먹어본 떡은 역시 찹쌀로 만든다는 점에서 같지만 색과 향이 3국의 떡과는 다른 독특함이 있다. 열대과일이 더해져 만들어진 떡의 색은 너무 현란해 마치 불량식품 같고, 먹기도 불편하다. 맛은 쫀득거리는 양갱 같아서 코코넛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제법 잘 먹을 듯한 느낌이었다. 말레이시아, 타이 등 나라별로 고유의 떡 이름이 있겠지만 그것 역시 우리가 떡을 영어로 풀었을 때처럼 ‘라이스 케이크’(Rice Cake)다.
떡을 주인공으로, 네컷만화 <말랑말랑>
무지개색 떡 캐릭터 맛보세요
인절미 할머니가 어린 떡들에게 <해님 달님> 옛날얘기를 들려준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으름장놓던 호랑이가 떡도 다 먹고 엄마도 잡아먹었지만, 동아줄이 끊어져 죽었다는 해피엔딩의 동화. 하지만 꼬마들은 겁에 질려 울음을 터뜨린다. 떡을 다 먹었다는 ‘엽기적’인 대목 때문이다. 작가 석동연의 사랑스럽고 재치있는 네컷만화 <말랑말랑>은, 떡보기를 사람 같이 한다. 모양과 색, 찰기와 고물에 걸맞게 떡들은 캐릭터가 된다. 정을 나누고 부대끼며 사느라 때로는 늘어붙고 때로는 팥고물을 서로에게 묻힌다.
생김새 같고 쓰임새 다른 가래떡과 떡볶이 떡은 스타와 팬의 관계다. 발라드 가수 가래떡군의 열성팬 떡볶이군은 스타를 닮기 위해 보디빌딩을 하지만 태생의 한계에 좌절한다. 우상이 광고하는 참기름 스킨도 그림의 떡. 엄마는 고추장이나 바르라고 한다. 삼색 송편 남매는 영떡스 클럽을 결성해 연예계에 데뷔한다. 뒷줄은 쑥색 송편 차지. 깨나 밤이 아니라 10대들이 싫어하는 콩이 속에 들어서다. 이들의 예인 기질은 알고보면 유전이다. 흰 송편 엄마가 털어놓은 아빠의 정체는 무지개떡. 다만 전국 회갑연을 순회하느라 언제나 출장 중일 뿐이다.
떡 세상에도 노년의 시름은 있다. 혼자 사는 인절미 할머니는 갑자기 찾아온 손님을 대접할 게 없자 머리를 긁어내려 미숫가루를 타낸다. 늘 취해 있는 술떡 할아버지는 머리에 초를 꽂고 떡 케이크 모양으로 종일 돌아다녀놓고는 생일을 어떻게 알았냐고 시치미를 뗀다. 계급이라고 없을 리 없다. 부유층인 쌀떡볶이 총각이 가난한 밀가루 떡볶이 아가씨와 살림을 차리자 못된 부잣집 정혼녀 쌀떡이 쳐들어온다. “당신이 원하는 걸 줄 테니 썩 물러나!”라며 던진 봉투 속엔 달랑 3천원. 뽀얀 피부의 악녀는 밉살맞게 윽박지른다. “왜? 3천원이면 밀가루 떡볶이 배터지게 먹을 돈 아닌가? 네겐 큰돈이잖아?” 이 세계에서 시루는 찜질방, 전자레인지는 응급실이고 TV 만화영화 속 떡볶이 떡 오형제는 지구를 구하기 위해 떡꼬치로 합체한다. 덕분에 명절 전야 떡집 좌판 앞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이보다 흥미진진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