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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사람들>을 보는 시각들 [3] - 4인4색 감상 ② 인정옥
2005-02-04

쿨함이 악덕이 된 영화

그때… 그 사람은 왜 그랬을까?

임상수 말이다. 어느 날 10·26을 얼빵이들의 소동극으로 꾸리기로 결심한 임상수 말이다.

나도… 임상수가 만든 <그때 그 사람들>처럼, 임상수를 깔짝거리고 싶다. 재밌겠다.

어느 날 임상수의 시야에 10·26이 걸려들었다. 그때 쓰여진 임상수의 낙서다.

첫째 재밌겠다, 그냥. 그냥 막. 둘째 재밌자면 쿨해야 한다. 쿨은 내 거다. 셋째 쿨한 나의 입장에서, 역사적 사건이 엄숙한 결단에서 나올 거란 건 환상이다. 어쩌다보니 똥 같은 상황이 된 거다. 자료봐라. 진짜루…. 다섯째 그때 그 사건의 현장에서 그 사람들도 뻔하다. 인간들 다 그렇다. 그냥 밥먹고 똥싸다가 넘어졌는데 그게 역사가 된 거다. 여섯째 근데… 지들이 알아서 웃기고 자빠진 것들도 있지만, 영문도 모르고 뒤엉킨 사람들도 있다. 좀 억울하겠다. 이건 좀 달래줄라구…. 영화 만들면서 보자. 어떻게 되겠지, 뭐. 일곱째 중요한 역사이고 재밌어야 되니까 당연히 블랙코미디다. 블랙기조의 고급스런 색감과 음악 깔고, 쌈마이짓 뻘짓하는 캐릭터들로 도배해서 코미디 된다. 블랙과 코미디. 그래서 결론. 그냥 뭐 다 놀고 자빠진 역사라는 거다. … 근데 쿨할까? 쿨해야 되는데… 끝.

임상수의 <그때 그 사람들>은 이렇게 기획되었다.

뻥이다. 그럼 어떤가. 나 재밌자고 하는 짓인데… 근데, 이런 식으로 임상수에게 깐죽대면 사람들은 재밌어할까? 재밌자고 하는 짓 재밌어야 하는데… 재미없으면 죽음인데…. 재미없다. 지루하고, 한심하고 재수없다. 깐죽대다가 끝나는 내 이야기는 이야기가 아니라 술자리 뒷다마다. 우웩.

임상수의 <그때 그 사람들>도 그랬다. 재미없다. 역사를 보는 그의 농짓거리도 재미없고, 영화를 이끄는 궁정동의 소동극도 재미없다.

역사를 바라보는 허하고 진한 블랙도 없었고, 인간들 부딪치는 실없는 코미디도 없었다.

10·26의 주역들에 대한 역사적 희극이기엔 웃기지가 않았고, 영문 모를 총격전에 휘말린 이름 모를 단역들의 역사적 비극이 되기엔 슬프지도 않았다. 역사적 희극도 비극도 아닌 역사적 깐죽거림만 남았다.

깐죽거림에는 원칙이 있다. 그 대상과 실체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 실체와 대상없는 허공에의 깐죽거림. 이것이 임상수의 <그때 그 사람들>이다.

게다가 김윤아와 윤여정의 내레이션은 이 영화 최고의 미스터리다. 왜 그녀들에게 그때 그 사건과 사람들을 빈정댈 자격을 주었는지는 임상수만 아는 비밀 같다.

다시 내 맘대로 글쓰기. 아마도 김윤아가 분한 심수봉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그녀만은 구출하고 싶었나보다)와 배우 윤여정에 대한 신뢰. 이것 말고는 모르겠다.

나는 임상수를 좋아한다.

한국의 몇 안 되는 훌륭한 영화감독들이 다른 훌륭한 국내외의 영화와 감독을 모델 삼아 그들의 창의력을 키워가는 데 비해 임상수의 창의력은 그의 내부에서 표출되기 때문이다. 한국 영화감독으로선 유일한 자생적 창작자다. 내 멋대로의 판단이지만… 그래서 임상수가 좋다. 그랬는데… 이 영화가 싫다.

이 영화를 <바람난 가족>과 비교하는 일은 할 수 없다. 그의 전작을 비교하며 후작을 논하는 일이야말로 엇비슷한 업종의 사람으로서는 무책임한 잣대를 들이대는 행위다. 단… 굳이 전작을 언급하는 이유. 그러면 안 되는데 전작을 들이민 이유. 나를 물고늘어지는 그의 재산. …쿨. 그가 그렇게도 좋아하는 단어, 쿨… 그것 때문에….

그걸 짚고 넘어가지 않는다면 임상수가 왜 이 영화를 이렇게 만들었는지를 설명하기가 나로선 곤란하다.

임상수는 쿨함에 속박당했다. 쿨을 인생과 영화의 지표로 삼는 듯하다.

엄숙함과 쿨함은 필요에 따라 단장하는 옷일 뿐이다. 회색 양복과 꽃무늬 남방의 차이일 뿐이다. 임상수는 회색 재킷도 어울린다. 무대인사할 때 봤다. 꽃무늬 남방에 몸을 가둘 필요가 없었다.

그의 영화의 미덕은 쿨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전작은 미덕이고 후작은 악덕이다. 그의 영화의 미덕은 오히려 인물행태에 대한 집요함이다. 전작은 했으나 후작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전작은 상쾌하고 쓸쓸했지만, 후작은 벙찌고 지루했다.

전작보다 더 집요했어야 할 10·26이었다. 10·26은 단지 1, 0, 2, 6이라는 숫자일 뿐이라는 벙찌고 지루한 이야기를 보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여전히 외부적 영향보다는 자생적 창의력이 충만한 감독 임상수를 놓치고 싶지 않다. 단… 임상수가 경계해야 하는 하나의 단어, 쿨. 이것만이 그의 유일한 재산이 아님을, 그때 그가 알았었다면 내가 재수없게 그를 깐죽대지 않았을 거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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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인정옥/드라마 작가·<네 멋대로 해라><아일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