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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사람들>을 보는 시각들 [2] - 4인4색 감상 ① 남재일

“박정희 귀신을 내쫓는 한판의 굿”

아서 케슬러의 <한낮의 어둠>은 구소련에서 한 트로츠키주의자가 숙청당하는 얘기를 통해 스탈린 체제의 폭력성을 고발한 소설이다. 여기에서 케슬러는 스탈린 체제의 본질을 짧은 우화를 통해 고발한다. 어느 날 스탈린이 부하들을 모아놓고 닭을 한 마리 가져오라고 지시한다. 느닷없이 납치당해온 닭은 공포에 질려 책상 밑으로 도망가기에 급급하다. 모이를 던져줘도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스탈린이 닭을 잡아 난폭하게 털을 뽑아버리고 닭을 놓아주자 닭은 모이를 주지 않아도 스탈린의 발뒤꿈치만 졸졸 따라다녔다. 스탈린은 이렇게 통치하라고 말한다.

자연 상태에서 동물은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적을 보면 일단 도망간다. 그러나, 도망갈 길이 없으면 악다구니를 쓰며 달려든다. 어차피 잡혀먹힐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망갈 길은 없지만 최소한 목숨 부지가 가능한 인간은 다른 방식을 택한다. 납작 엎드려서 복종의 자세를 취한다. 도저히 역전의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복종의 거북함을 지우기 위해 스스로 숭배하는 쪽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납치됐다 성폭행당한 여자는 풀려나도 일시적으로 납치범을 상상적으로 사랑하는 증상(스톡홀름 신드롬)을 보인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에게 폭행당한 아이들은 반복적인 애증의 감정반응에 길들여져 알코올 중독자가 아니면 관계 맺는 방식을 모른다. 그리하여 성인이 되어서 다시 중독자를 배우자로 맞이하는 이른바 공의존(co-dependence) 상태에 빠지게 된다고 한다. 독재자가 조장한 절대 폭력은 공포를 부단히 환기시키며 인간을 동물적 감각의 상태에 감금한다. 그리하여 반성적 사유 대신 감각적 반응이 지배적인 행동양식이 되면서 인간은 무의식 중에 독재자와 공의존 상태에 빠지게 된다. ‘사랑과 환상의 파시즘’은 세상에 없다. 독재는 마약이다. 일시적으로 현실의 지리멸렬함을 환각으로 가려주지만 결국은 정상적으로 사유할 수 없는 신체를 상흔으로 남긴다.

한국사회의 독재자 사랑은 병적이다. 30년 전에 사망한 박정희의 유령이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한다. 이 유령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사람들은 두 부류다. 첫째는 경제성장의 열매를 받아먹은 수혜자들로 현재 40대 이상의 고학력 중상층에 집중돼 있다. 이들이 박정희의 유령을 불러내는 것은 이해가 간다. 성장과 분배 과정의 특혜를 아무런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지속하고자 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동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성장 과정에서 들러리 역할을 하거나 희생된 계층까지도 박정희를 외쳐대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독재에 중독돼 독재자의 전능과 선처를 맹목적으로 갈구하는 것 이외에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가련한 공의존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박정희의 유령은 과거 특혜받은 소수의 기득권층이 무수한 희생자의 상처를 들쑤셔서 그 신음소리로 불러오고 있는 게 아닌가.

혹자는 말한다. 그가 우리에게 밥을 주었다고. 그런데 그 밥은 그가 지은 밥이 아니다. 저곡가 정책으로 피폐한 농민의 쌀과 장시간 저임금에 시달린 노동자의 연탄과 민주화 과정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의 피눈물로 지은 밥이다. 그러니 우리가 진심으로 ‘경제성장’에 감사한다면 불러와야 할 것은 박정희의 유령이 아니라 희생당한 무명의 영혼들이다. 한국사회가 이들을 위한 진혼제를 올릴 때 우리 안의 독재자와의 공의존은 치유의 첫발을 내디딜 수 있다. 박정희의 유령은 독재에 대한 반성문을 받는 대신 경제성장 공로패를 쥐여서 역사 속으로 흘려보내야 한다. 물론 ‘반성문 퍼스트’다. 박정희를 연호하며 과거의 부당한 영화를 악착같이 유지하려는 자들의 집단적 반성문까지.

<그때 그 사람들>은 박정희의 유령을 쫓아내기 위한 엑소시즘처럼 보인다. 학대받은 신체에 기생하는 독재자의 귀신을 쫓기 위한 칼날 같은 야유와 풍자. 거기에 가슴을 베이는 숙주도 있을 것이다. 원래 엑소시즘은 치유의 대가로 신체적 고통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이 영화를 보고 ‘국부모독’이라고 열을 올리는 자는 자신이 환자임을 고백하는 것이 된다. 아주 자극적인 역사적 사실을 아주 고질적인 정신병에 충돌시켜 아주 요란한 정치적 굉음을 내고 있는 이 영화는 그래서, 아주 화끈하게 정치적이고 아주 화끈하게 대중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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