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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은하의 애버뉴C]8th street / 아담의 아름다운 키스
글·사진 백은하( <매거진t> 편집장) 2005-02-01

뉴욕은 점점 이성애 미혼 여성이 살아가기에 가혹해진다

당신이 보수적인 사람이라면, 게다가 “커피 마실 돈이면 술을 먹겠다”고 공공연히 외치고 다니는 전형적인 한국형 남성이라면, 아마 열었던 문을 닫고 돌아설지도 모르겠다. 스스로 꽤나 개방적이며, 카페를 놀이터이자 삶터로 생각했던, 뉴욕에서 살고 있는 어떤 여자도 잠시 머뭇거려야 했으니까.

이곳은 첼시의 중심부에 자리잡은 카페 ‘빅 컵’이다. 카페에 앉아 있는 대부분이 남자들이고, 그들의 80%이상은 커플이다. 카페란 여자들의 전용공간이고, 게이들은 대부분 옷장 속에 숨어 있다고 오해했던 사람들에겐 참 생소한 풍경일 것이다. 전면이 유리로 활짝 오픈된 이 카페에 앉은 연인들은 1월의 눈더미도 단숨에 녹일듯한 뜨거운 눈빛을 나누거나 아이팟 이어폰을 다정히 나누어 끼고 새로 다운로드한 음악파일을 함께 듣고 있다.

맨하탄 서쪽 다운타운, 웨스트빌리지와 미드타운 중간에 자리잡은 첼시는 낡은 건물들을 개조한 독특한 갤러리 지구로 유명한 동시에 레인보우 깃발이 여기저기 걸려있는 게이들의 동네다. 뉴욕에서의 삶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우연히 이 카페 문을 열었던 나는 갑자기 등판기회를 박탈당한 야구선수가 된 기분이 들었다. 삼십 평생 지니고 있던 이성애자로서의 기득권, 헤게모니가 한방에 전복되는 순간이었다. 그 곳에 홀로 들어선 나는 외계인 같았다. 허, 참, 여자친구 손이라도 꼬옥 잡고 갔으면 좋았을 것을.

하지만 이제 이 카페에 혼자 가도 전혀 당황스럽지 않다. 그 사이 새로운 성 정체성을 찾았다는 말은 아니다. 뉴욕에서 게이 커플이나 레즈비언 커플은 비단 첼시나 특정 카페에서만 볼 수 있는 진귀한 풍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랜덤으로 방문한 흥미로운 블로그의 주인도 게이였고, 아르바이트 하는 가게의 단골 중에 레즈비언 커플도 꽤 많고, 소개 받은 새로운 남자 중에 상당수가 게이였다. 사실TV를 틀거나 영화를 보면 이 사실은 더욱 극명해진다.

벌써 7년째 장수중인 NBC시트콤 <윌&그레이스>는 남녀 주인공간의 로맨스 없이도 그 인기가 여전하고 (윌이 게이다), ‘메이크 오버’ 프로그램의 히트작이라고 할 수 있는 브라보TV의 <퀴어 아이>는 새 시즌을 맞이하여 게이 스타일리스트들이 답답한 스트레이트 여자를 감쪽같이 변신시켜 준다는 새로운 아이템, <퀴어 아이 포 스트레이트 걸>을 내놓았다.

21세기의 매스미디어에 그려지는 게이의 이미지는 90년대 <필라델피아>같은 영화에 나왔던 비극적이고 무거운 기운과는 다르다. 이들은 이태원의 어두운 바가 아니라 대낮의 거리에서 서로를 껴안고, 후미진 극장 구석이 아니라 오픈된 카페에서 새로운 연인을 물색한다. <엘렌 쇼>에서 바지정장을 입고 춤추며 등장하는 (레즈비언으로 유명한) 엘렌 드 제네러스의 자신만만한 몸짓을 보고 있다 보면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적인 이해가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렀는지 알 수 있다. 물론 여전히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의 게이친구처럼 스트레이트 여성들이 꿈꾸는 친구로서의 게이. 즉 성적 긴장감이 없어 안전하고 이해력은 여자친구 이상이고 가끔 남자친구 대용으로 전시 할 수 있는, 이성애자들의 편리에 의한 모습만을 강조하는 부분도 없지는 않다. 또한 이런 개방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극우 보수주의자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 존재하고 우리 모두가 “약간은 인종차별주의자들”인 탓에 게이에 대한 농담도 늘어나고, 그들의 커뮤니티가 확장되는 것을 우려하는 기운들도 만만치 않다. 하긴, 텔레토비 마을처럼 모두 모여 “아이 좋아-“만을 연발하는 천국이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레이 찰스의 생애를 그린 <레이>의 한 장면을 보면 바로 지난 세기만 해도 버스 내부에 ‘컬러’가 다른 사람과 백인들을 구분하는 벨트가 쳐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게 백년도 안된 세월 동안 세상은 빠르게 서로간의 경계를 허물어가고 있다. 물론 내 몸 속에 흑인의 피가 흐르지 않는 이상 소울이나 힙합의 리듬을 정확히 이해 할 수 없듯 이성애자로 살면서 동성애자들의 완벽하게 이해하기란 불가능 한 일일 것이다. 다만 이들과 부딪혀 살아왔던 그 짧은 시간이 가져다 준 변화라면, 그동안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면 이제는 그들의 ‘즐거움’에도 관심이 간다는 것이다.

그나저나 글을 쓰다 보니 뉴욕은 점점 이성애 미혼 여성이 살아가기에 가혹해져만 가는 도시 같다. <섹스 앤 더 시티>의 “뉴욕 30대 남자 중에 우리가 사귈만한 남자들은 더 이상 없어. 줄리아니(전 뉴욕시장)가 홈리스들을 처리할 때 다 같이 쓸어버렸다니까” 같은 대사가 과장이 아닐 정도다. 이런 기회불균등의 작은 섬에서 나는 여전히 ‘스트레이트 싱글 아시안 걸’로 살아가고 있다. 마이너리티도 이런 마이너리티가 없다. 흔한 것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귀한 것을 찾아나가는 것이 진정한 모험이라고 스스로 위로해봐도 여전히 뉴욕은 잠 못 이루는 밤이 참 많은 외로운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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