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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은하의 애버뉴C] 5th street / 그 많던 비디오 가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글·사진 백은하( <매거진t> 편집장) 2005-01-21

DVD 대여시장의 불꽃 튀는 전쟁 속에 사라져가는 비디오 가게들

비디오 대여점 앞에 사람들이 우르르 모여있다. 숨을 죽인 채 침을 꼴딱꼴딱 삼키고 있는 이들은 도대체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이윽고 한 점원이 가게 앞 장막을 걷으면 나타나는 싸인, “더 이상의 연체료는 없습니다!.” 사람들은 ‘대한독립만세’보다 더 감격에겨워 환호성을 지르고 눈물을 흘리며 땅을 구른다. 이것은 미국 비디오 대여 체인의 대명사로 불렸던 ‘블록버스터’ 의 최근 TV광고의 한 장면. 이 광고를 가만히 보고 있자니 비디오, DVD대여시장의 위기감이 온 몸으로 느껴진다. 연체료만으로도 그간 꽤나 짭짤한 수익을 올렸음이 분명한 이 회사가 연체료를 포기하는 큰 선언을 한걸 보면 이 시장의 전쟁은 이제 거의 ‘빤스 벗고 덤벼라’ 수준에 이른 셈이다.

한 때 동네의 작은 비디오 가게들을 뚝딱뚝딱 먹어 치웠던 이 공룡 같은 체인에 위기가 찾아왔던 것은 바로 ‘넷플릭’(NETFLIX)의 등장과 함께였다. 인터넷과 우편시스템을 이용한 DVD 대여 사이트인 넷플릭은 DVD가 가진 경량이라는 장점을 최대로 이용한 빅 히트 상품이었다. 이용방법은 간단하다. 웹사이트에 만든 자신의 계정에 보고 싶은 영화 리스트를 올려놓으면 종이봉투에 담긴 DVD가 집으로 배달되어 온다. 보고 나서는, 이미 우표 값이 지불된, 첨부된 봉투에 다시 DVD를 넣어 아무 길거리 우체통에나 넣으면 끝이다. 한 이틀 후면 그 다음 리스트에 있는 영화가 자동적으로 배달되어 온다.

결국 문닫기 전에 비디오가게를 방문해야 하는 번거로움과도 안녕, ‘구 프로’ 를 찾기 위해A-Z까지 비디오 가게 정글을 하이에나처럼 뒤지던 수고와도 안녕인 셈이다. 연휴도 없고, 눈치 볼 점원도 없고, 24시간 원할 때 언제라도 접속해 그저 우아하게 검색 창에 원하는 비디오를 치고 장바구니에 집어놓으면 되는 시스템. 이런 편리한 서비스를 ‘카우치 포테이토’ (소파에 앉아서 정크 푸드를 먹으며 죽치고 TV나 비디오만 보는 사람들을 부르는 말) 들이 마다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게다가 사이트는 친절히 그간의 목록을 참고해 추천할 만한 비디오 리스트를 만들어주기도 하고, 친구들과 대여목록을 공유할 수 있는 서비스를 실시하면서 인맥관리도 도왔다. 한달 이용료는 18불 정도인데, 한번에 집에 가지고 있을 수 있는 영화가 총 3편으로 연체료도 없고, 기간제한도 없다. 최대한 빨리 많이 보면 볼수록 이익에다 일단 미국 내 출시된 영화는 거의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하루 밤에 몇 편이라도 먹어 치울 수 있는 영화광들이나, 그간 희귀영화를 찾아 헤매던 나 같은 이방인들에게는 더 없이 반가운 친구였던 셈이다. 결국 위기의식을 느낀 블록버스터는 웹 상에서는 넷플릭과 똑같은 방식의 비디오대여 서비스를 시작했고 지상에서는 연체료를 없애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경쟁과 상관없이 여유만만하게 치고 들어오는 복병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초단위로 넓어져가는 인터넷 인프라의 확장이다. 자료공유 시스템이나 불법 다운로드에 한번 맛을 들인 새로운 세대들에게는 단돈 2,3만원이라도 지불해야 하는 이런 서비스가 눈에 들어올 리 없다. 여전히 주요 검색사이트나 영화관련사이트에 접속 할라 치면 어김없이 넷플릭과 블록버스터의 배너광고가 동시에 뜨면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지만 그 시장의 고객 역시 인터넷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나, 그냥 집에서 편하게 받아보는 것을 선호하는 귀차니스트들로 좁혀진 셈이다. 결국 길게 보자면 비디오가게는 말할 것도 없고, 이런 인터넷 대여시장의 생명도 언제 끝날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요즘 가만히 거리를 둘러보면, 예전엔 한 블록 건너 찾아 볼 수 있었던 비디오 대여점을 거의 찾아 볼 수가 없다. 뉴욕의 밤거리도 가끔 ‘XXX’라고 커다란 붉은 간판의 붉을 밝힌 성인 비디오가게만이 눈에 띨 뿐이다. 을 비롯해 많은 영화 속에서 루저들의 아지트이자 마음의 고향으로 등장했던 비디오가게. 이제 밀린 연체료 때문에 일부러 비디오 가게가 있던 골목을 피해서 삥 둘러 집으로 향했던 기억도, 먼지구덩이 속에 숨어있던 진귀한 비디오를 찾아 들고 흐뭇해 하던 일도, 에로비디오 코너의 찬란하도록 창의적인 제목을 슬며시 훔쳐보며 혼자 키득거렸던 즐거움도, 또 하나의 ‘노스텔지어 리스트’에 올려야 하는 시대가 와 버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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