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한 지 6, 7개월쯤 됐을까. ‘충무로 정보통’이라는 별명을 달고 다니던 J선배가 퇴사하면서 영화정책 관련 취재를 물려받게 됐다. 옆에서 보기에 전화통 하나 붙잡고서 천리를 내다보는 것 같았던 그 선배는 아무런 노하우도 일러주지 않고 떠났다. 각종 성명서와 보도자료 뭉치들로 가득한 박스들만이 유산으로 남겨졌을 뿐이다. 뭐라도 건져볼까 하는 심산으로 일요일에도 사무실에 나와 박스를 뒤적였지만 별 소득은 없었다. 생전 처음 들여다본 법조문은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문장들이 똬리를 틀고 있었고, 반박을 거듭하는 영화계의 성명서는 전장의 포탄처럼 어지러웠다.
수습 딱지 뗀 뒤 얼마 안 되어 다시 맨땅에 헤딩해야 했던 그때. 낯선 취재원들과 부딪쳐야 하는 것부터 적잖은 부담이었다. 선배들은 “네 인상이 험악하고 성격이 포악하니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다독였지만 여간 진땀나는 게 아니었다. 공무원에 대한 썩 좋지 않은 기억은 아마 그때 싹텄을 것이다. 담당 소관을 알아내는 것부터 다른 취재보다 배로 힘들었다. “제 담당이 아닌데요. 누가 맡고 계신지는 잘 모르겠어요.” 짜증 가득한 정부 부처 공무원의 답을 서너 차례 반복해서 듣다보면 정말이지 피가 거꾸로 솟았다. 출입기자를 두는 종합일간지가 아니라고 이러는 건가. 그때서부터 나도 이 뭐하는 매체인지 설명 안 했다. 물어보면 “담당이세요?” 했다.
영화 관련 기관 중에도 정부 부처 못지않은 곳이 있었다. 한국영상자료원이었다. 관료적인 분위기가 팽배한 단체로 악명 높았다. 하나만 이야기하겠다. 3년 전이었나. 한가위 흥행전(興行戰)인지 아니면 한국영화 검열사인지 어떤 기사에 필요했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1960년대 개봉한 한국영화였던 것으로만 기억하는데, 이 영화의 포스터 이미지를 얻기 위해 영상자료원에 공문을 보냈다가 “영리를 목적으로 한 잡지에 이미지를 내줄 수 없다”는 거절을 들었다. 원본을 훼손하는 것도 아니고 사진을 찍겠다고 한 것인데도 안 된다고 했다. 애초 공문을 보내라고 할 때는 언제고 보냈더니 안 된다는 이유가 고작 돈 받고 파는 잡지여서라니. 이해가 가는가. 사진 기다리느라 마감 늦어지면서 낡은 필름창고 역할만으로 만족하겠다는 한국영상자료원에 언젠가 일침을 놓아주리라, 하는 생각을 잠깐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때의 감정을 되살려 복수하기란 아무래도 요원해 보인다. 영상자료원이 좀처럼 욕먹을 짓은 안 하고 박수받을 일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 이효인 이사장 체제로 전환한 지 1년여. 젊은 한국영화사 연구자들을 끊임없이 수혈하는 등 체질 개선 작업을 수시로 벌이고 있는 영상자료원의 욕심은 최근 단행본으로 나온 를 비롯해 알찬 결실들에서도 읽혀진다. 여기에 더해 잊혀진 영화인들의 구술을 인터뷰로 담고, 한국 영화사 다큐멘터리 프로젝트를 내놓고, 기획이 돋보이는 상영회를 열고. 그 전과 확, 달라졌다. 이번 기회에 한국영상자료원 홈페이지(www.koreafilm.or.kr)에 한번 들어가보시라. 배우나 감독의 출연작 검색 정도만 가능했던 것이 이제는 별게 그 안에 다 있다. 아직 완벽하다고 할 수 없지만 하나씩 채우고 기워가면 될 것이다. 소실된 한국영화 역사를 복원한다는 한국영상자료원의 욕망이 올해도 식지 않고 들끓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