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생 국가보안법이 살아서 2005년 새해를 맞았다. 질기다면 질긴 목숨이지만 사실 인공호흡기에 의존하고 있는 비루한 말년이다. 만인이 앞을 다투어 이 법을 졸로 본 지 오래이니 전가의 보도는커녕 이빨 빠져 녹이 슨 부뚜막의 과도만도 못한 처지이다. 한데도 우리 사회가 이처럼 유명무실한 국가보안법을 안락사시키기에 요령부득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란 솔직히 쉽지 않다.
지난 연말에는 주성용 트리오의 간첩조작 파문까지 벌어졌다. 세간의 평은 한나라당의 패착으로 여기기도 하는 모양이지만 글쎄, 내가 보기엔 정형근 그룹의 판정승이다. 우선, 주성용 트리오의 공연은 여전히 매카시즘의 약발이 먹힌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오죽하면 열린우리당 의원총회는 이 공연으로 울음바다가 되었다. 열린우리당의 일부 의원들이 손수건을 적신 것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대개는 험한 시절에 험한 곳에 끌려가 정형근이나 이근안과 같은 작자에게 험한 꼴을 겪었거나, 그 내막을 소상히 알고 있는 의원들이었다. 동변상련의 애틋함과 분노가 해일처럼 일었을 것이다. 아마도 80년대나 90년대에 이와 같은 울음을 목도했더라면 나 역시 동일한 울분을 토로하기에 주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2004년 말의 그 울음은 단지 레드 콤플렉스라는 구시대의 괴물이 아직도 어딘가에 살아 숨쉬고 있다는 끔찍한 현실을 확인시키는 것일 뿐이었다. ‘이철우가 간첩이다’라는 주성용 트리오의 저열한 개그를 울음바다 속의 비장한 각오로 출발해 정형근의 오래전 성기고문으로까지 확대시키는 열린우리당의 정치적 공방을 지켜보면서 나는 멱살을 잡혀 냉전의 과거로 내동댕이쳐지는 착각에 사로잡혔다. 결국 그 한편에서 국가보안법은 4자회담의 우산 아래 곱게 해를 나고 말았다.
진실을 말한다면 정형근과 김용갑 등의 극우보수들은 케케묵은 냉전시대를 상징하는 무력한 늙은 저격수에 불과하다. 이들 가련하고 외로운 퇴역 게릴라들의 투쟁이란 붕괴되고 있는 낡은 건물 안에 숨어 매카시즘이라는 공포탄을 갈겨대는 것이 고작이다. 정보기관의 음습한 지하실로 민주인사들을 잡아들여 성기를 고문할 수 있는 그 좋은 시절은 이미 퍽도 오래전에 사라져버렸다. 그들도 그것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한낱 꿈인 것을 안다. 그런데도 이 시대착오의 이빨 빠진 게릴라들은 권력과 부의 추억에 젖어, 육사적이거나 안기부적으로 디자인된 매트릭스의 환상 속에서 공포탄을 날려보내고 있을 뿐이다.
문제는 탄알없는 공포탄의 발사음만 듣고도 눈물을 지리고, 분기탱천하며 진심으로 호들갑을 떨어대는 사상적 외상증후군 환자들이다. 열린우리당에 주로 모여 있는 이 부류들은 국가보안법 폐지의 진정한 의미가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데 있다는 사실을 결코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철우 파동의 와중에 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한나라당의 심재철이 열린우리당의 유기홍에게 보냈던 공개서한의 한 구절은 이렇다. “나는 이철우 의원이 자신의 사상성에 대한 명백한 대국민 해명이 있어야 한다… 김일성주의에 깊이 심취했던 그의 사상적 배경을 잘 아는 자네가….” 유기홍은 이 서한에 대한 답신에서 공개토론을 주장하면서 거듭 이철우의 노동당 입당설이 날조임을 주장했다. 그러나 정치적 책략으로 말을 돌리지 말자. 공방의 핵심은 고문이나 조작이 아니라 김일성주의라는 사상이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에 이철우가 한때 김일성주의건 사회주의건 무슨 주의이건 심취했다고 해서 그게 무슨 문제란 말인가. 하물며 지금의 이철우는 김일성주의는커녕 전향해 보수정당에 몸을 담고 있는 처지가 아닌가.
필요하다면 심재철의 주장처럼 명백하게 전향을 선언하고 자초지종을 덧붙이면 그만이다. 아니, 설령 그가 현재의 김일성주의자라도 출당을 결의할지언정 사상의 자유만큼은 옹호해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자며 그 누구보다도 앞장서 떠들어대는 열린우리당의 이른바 386들은 사상의 자기검열과 사상콤플렉스에 젖어 정작 그 본질인 사상의 자유를 옹호하기는커녕 자발적으로 매카시즘의 쓰레기통으로 내던져버리는 행태를 거듭해왔다. 결국 보너스로 한줌 극우보수 무리들의 정치적 생명을 끊임없이 연장시키는 닭플레이까지 펼치고 있는 셈이다. 무엇 때문인가? 눈앞의 정치적 이익 때문인가. 그러나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울 수는 없다. 국가보안법 폐지와 사상의 자유는 일개 정치인의 이익이나 정파의 이익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우위에 서는 역사적 가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