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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 눈길 사로잡는 아역스타들

“이래봬도 우린 연기파 배우랍니다”

△ 최근 뛰어난 연기력으로 높은 인기를 끈 아역배우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에서 서희로 나온 배나연(8)양, 의 갈치 박건태(10)군, 의 어린 김희선 역을 맡은 최지은(11)양, 의 길상으로 나온 서지원(13)군.

△<토지> 서희 배나연 “제방서 볼땐 부끄러워 이불속에 숨어서 봐요”

지난 7일 오후 편집국이 환해졌다. 싱그러운데다 귀엽기까지 한 ‘새싹’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쳤기 때문이다. 에스비에스 의 어린 서희(배나연·8)와 길상(서지원·13), 한국방송 의 갈치(박건태·10), 문화방송 의 어린 혜인(최지은·11)이 차례로 들어서자, 기자들 사이로 수군거림이 번져갔다. “야, 쟤 길상이 아냐.” “어머, 서희도 있네.” 어떤 이들은 “갈치 안녕” 하며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답하는 갈치한테 스스럼이라곤 없다.

지난 한해, 그리고 올 초까지 한국 드라마들은 이 어린 별들의 존재로 반짝반짝 빛났다. 어른 배우 뺨치는 연기와 집중력으로 출연 드라마 인기에 불을 붙였고, ‘아역 스타’의 설 자리를 넓직하게 넓혔다. 하긴 이들 뿐이랴? 며 , …. 요즘 드라마들은 어느 때보다 어린이 배우들의 열연에 빚지고 있다.

△<토지> 길상 서지원 “사람들이 알아볼 때 진짜 보람 느껴요”

아이들 모두 저마다 자신을 도드라지게 한 대사나 표정이 있다. ‘서희’ 나연이는 “너는 누구냐?” 한마디로 시청자 눈길을 사로잡았다. 집안의 재산을 노리는 아저씨뻘 되는 인척 조준구를 향해 흰자위가 드러나게 째려보며 일갈하는 모습이 앙칼진 귀여움의 역설을 만들어 냈다. 지원이는 그런 서희의 투정을 받아내는 길상이 역을 듬직하게 해냈다. ‘갈치’ 건태는 눈물 연기로 ‘미사 폐인’들의 심금을 울렸다. 15회 소지섭을 향해 “삼촌 죽지 마”라며 절규하는 장면이 방영된 뒤, 인터넷 게시판엔 “가슴이 아파 한참을 울었다”는 ‘미사 폐인’들의 시청소감이 줄지어 올랐다. 가 드라마 첫 출연이라는 지은이는 성인 연기자도 어려워하는 맹인 연기로 단번에 올해의 유망주로 떠올랐다. 빗속을 홀로 헤쳐가는 처연한 모습이나 수돗물을 마시다 입맞춤할 뻔한 장면 등을 흔들림없이 소화해냈다.

△<미안하다…> 갈치 박건태 “엄마가 연기 말렸지만 제가 계속한다 했어요”

그런 연기가 나오기까지는 타고난 자질만큼 노력 또한 컸다. 지은이는 집에서 손수건을 접어 두눈에 묶고는 지팡이만으로 다니는 연습을 했다. “어디 부딪칠까 두렵고 답답하고, 지팡이에 동생이 맞을 뻔한 적도 있어요.” 그러고도 연기하다보면 바람이나 먼지 때문에 눈을 깜빡여 엔지도 많이 냈다.

연기를 하노라면 힘들 때가 더 많았다. 지원이는 진주에서 때론 강원도 횡성까지 오가는 강행군을 해야 했다. 건태는 지난해 2월인가 라는 영화를 찍다 사흘 밤을 꼬박 샜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도, 엄마는 가고 혼자 남아 촬영을 마무리해야 했다. “서러워서 촬영하다 울기도 했어요.” 나연이도 상복 입고 밤샘 촬영할 때가 제일 힘들었단다. 지은이는 친구들이 도시락에 지렁이더미를 부어놓고 놀리는 장면을 꼽았다.

△<슬픈연가> 혜인 최지은 “지렁이 잔뜩 섞인 밥 꾹 참고 먹어야 했죠”

지렁이가 파고 들어간 밥을 모른척 떠먹어야 했죠” 하는데, 눈살이 절로 찌프려진다. 학교 공부 따라가기도 벅찬 과제의 하나다. 건태는 “학교를 많이 빠져 촬영이 없을 때도 친구들처럼 놀지 못하고 집에서 학습지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도 다들 연기를 떠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엄마가 한번은 너무 힘들다며 그만 두자 하신 적도 있지만, 제가 더하겠다고 고집했어요.”(건태) 지난 연말 한국방송 연예대상에서 아역상을 받은 건태는 새해 소망으로 “연기 잘하고, 모범적인 어린이가 되고 싶다”고 했다. 지원이는 “다니며 사람들이 알아볼 때 진짜 보람이 크다”고 했다. “연기 더 잘해서 시청자들 정말 울고 웃게 해야겠다 싶어요.” 나연이는 “집에서 볼 때는 부끄러워 이불 덮고 본다”며 배시시 웃으면서도 “그래도 재미있어 더 잘 하고 싶다”고 했다. 지은이는 “좀 더 커서는 가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보아 언니가 제일 좋아요. 꼭 도전해보고 싶어요.” 다들 눈망울이 초롱초롱했다.

엄마·아빠는 ‘로드매니저’

“그림자 뒷바라지 고돼도 TV에 아이 나오면 뿌듯”

드라마를 빛내는 아역 배우 뒤에는 부모가 있다. 촬영이 있을 때마다 손수 운전으로 아이들을 태워 현장에 나가고, 밤샘 촬영이라도 있으면 꼬박 잠 못자고 촬영을 지켜봐야 한다. 말로 다 못할만큼 힘든 일이지만, 아이들이 티브이 드라마에 멋지게 나오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뿌듯해진다고 입을 모은다.

옛날 아역배우들이 주로 부모의 성화에 못 이겨 활동을 했다면, 요즘은 연예인이 꿈인 아이들이 먼저 나선다. “지원이가 어릴 때부터 가수가 되고 싶다고 해서 기타를 가르쳤고, 창과 판소리도 배우게 했죠. 그러다가 연기학원에 다니게 됐고, 출연으로 이어진 겁니다.” 서해석(43)씨는 아들 지원이의 꿈을 살려주기 위해 경남 진주 집에서 서울까지 매주 수차례 운전하는 것도 마다지 않았다. 매달 연기학원 학원비 20만~30만원을 포함해 창과 판소리 배우는 데도 돈이 상당히 든다. 지은이는 광고모델 활동을 먼저 시작했다. 어릴 적 잡지사에 보낸 사진을 보고 들어온 광고모델 제의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다 오디션에서 뽑혀 연기활동을 시작했다. 연기학원은 다니지 않았고 2주간 개인 연기지도를 받았다.

아역배우들의 출연료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1~5등급으로 구분해 10만~20만원까지 차등적으로 지급되고, 때에 따라 수당이나 출장·숙박비 등이 조금 더 붙는다. 가장 경력이 긴 건태만 5등급이고, 나머지는 모두 신인이라 1등급이다. 드라마 출연을 위해선 오디션 정보를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주로 학원을 통해서 정보를 얻고, 피디 등에게 직접 연락이 오기도 한다. 오디션은 방송사의 정기 개편 때 주 1회 정도로 가장 많고, 대개는 한달에 한번 꼴로 있다. 건태의 어머니 정은희(41)씨는 “연기를 시키고 싶은 부모들은 아이를 잘 관찰하면서 여유있게 기다리는 것이 좋다”면서도 “주위 사람들이 아이를 배우로 키우고 싶다고 하면 ‘너무 힘드니 하지 말라’고 한다”고 말했다.

사진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