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가 저물어간다. 어느새 또 일년이 지나가고 나도 이젠 스물을 훌쩍 뛰어넘는 나이가 됐다(참고로 스물을 훌쩍 뛰어넘는다는 표현엔 아주 다양하고 폭넓은 나이들이 포함된다). 나이와 상관없이 연말이 되면 사람들은 변한다. 겨울이라 그런가? 아니지…. 더운 나라 사람들도 추운 나라 사람들도 추웠다 더웠다 하는 나라 사람들도 아마 다 그럴 거다. 평소와 다르게 독기가 없어지기도 하고 그토록 부지런했던 일상도 느슨하게 흐지부지해버리고도 싶고… 또 가끔은 놀라운 반전을 꿈꾸며 복권을 사기도 하겠지.
사람들이 실존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것도 이때가 아닌가 싶다. 한살을 더 먹어가고 흔히 말하는 죽는 나이의 근방으로 조금씩 다가가고 있으니…. 죽으면 어떻게 될까, 난 어디서 왔을까, 이 세상은 어떻게 이루어진 걸까까지…. 평소에 신경도 안 쓰던 철학적 물음들이 연말엔 자연스럽게 머릿속을 들락날락거린다. 난 아직까지 특별하게 기억나는 연말이 없다. 어느 해의 마지막을 어떻게 장식했다느니… 내가 원했던 무언가를 이 해가 가기 전 이루어냈다느니… 거대하고 기쁨에 충만한 연말을 보낸 적이 없어서일까. 언제나 한해의 마지막은 조금은 멍하고 무감각한 졸음의 시간들이다. 물론 새로운 해가 시작될 때 몇 가지의 다짐을 하기도 했다. 올해는 꼭 담배를 끊어야지 그게 안 된다면 라이터라도 끊으리. 올해는 외박을 안 해야지 하더라도 들키진 말아야지. 올해는 영어를 꼭… 그게 안 되더라도 여권은 만들어야지. 하지만 늘 그렇듯이 한해가 시작될 때 생긴 다짐과 희망들은 연말이 되면 실망과 좌절 혹은 그것도 이젠 익숙해졌는지 그냥 무덤덤한 한숨으로 바뀐다. 차라리 일년 열두달의 세분법을 없애고 그냥 13월, 14월, 15월로 넘어가면 어떨까? 뭘 그렇게 자주 나눌 필요가 있을까? 그리고 동사무소에 신청을 하면 나이 먹는 것을 정지해주는 그런 민원 서비스를 하면 안 될까? 나이, 그거 숫자에 불과한 건데…. 숫자? 그거 대단히 중요하고 사람 힘들 게 하는 것이거든. 나이는 따져 뭐 하나? 그래, 정확한 통계도 없는 나이의 현상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연말에 우울해지고 더 늙어지는데….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정신의 나이와 자신들이 이겨낼 수 있는 육체의 나이를 오묘하게 계산해서 나타나게 하는 다른 현명한 나이 산출법을 만들면 어떨까? 태어난 지 오래되었다고 무턱대고 늙어진다라고 판명하는 것이 이 얼마나 우둔하고 애매한 정돈일까? 그래, 새로운 나이 표현법과 나이 인식의 공감대를 만드는 거야. 그래서 누군가 “당신 나이가 어떻게 되시나요?”라고 내게 물어보면, 난 당당하게 이렇게 대답하는 거지. “난 더위와 추위에 그다지 연연하지 않는 정신무장과 돈이 없어도 행복해지는 법을 알고 있는 속깊음과 벽돌 다섯장을 웃는 얼굴로 들고 100미터를 뛰어갈 수 있는 팔다리를 가지고 있는 나이지요”라고 …. 그래, 얼마나 문학적이면서 현명한 내 나이의 밝힘인가. 좀 길긴 하지만 이런 식으로 내 나이를 들은 사람은 나를 다르게 볼 게 분명하다. 물론, 내 대답을 들은 그가 “아하, 서른다섯이라고요? 보기보다 많이 드셨네”라고 말하면 어쩔 수 없는 거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