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중문화가 사실상 전면 개방된 원년인 올해, 한국시장을 두드린 일본 뮤지션 중 시이나 링고(椎名林檎)는 주목할 만하다. 고교 중퇴 뒤 여러 인디 밴드 활동을 거쳐 1998년 솔로 데뷔한 시이나 링고는 총 800여만장의 판매고를 올린 일본 열도의 스타 가수다. 폭발적인 가창력, 센스있는 송라이팅, 강렬한 이미지 연출 등으로 수많은 추종자를 거느린 인물. ‘링고사마’라든가 ‘링고공주’처럼 ‘존경의 염(念)’을 표하는 호칭은 한국 웹사이트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동경사변(東京事變)은 시이나 링고가 솔로 활동을 접고 멤버들을 규합하여 결성한 밴드로, 은 이들의 데뷔작이다. 밴드 이름이나 붉은색 종이학 도안의 커버 그림처럼, 이 음반에 담긴 음악은 통렬하고 단도직입적이다. 휘몰아치는 훵키한 리듬과 일그러진 보컬 및 음향이 압도적으로 직진하는 첫곡 (A Song of Apples)는 지난해 시이나 링고가 솔로로 발표했던 곡으로 한층 파워 넘치는 편곡과 연주를 통해 ‘동경사변 사운드’를 맛보기로 보여주는 데 손색이 없다. 이어지는 (Ideal Days for Ultramarine)는 독특한 질감으로 마무리한 펑크록 넘버. 음반의 들머리를 장식하는 이들 ‘원투펀치’ 외에 거친 하드록을 더 일그러뜨린 듯한 (Crawl) 등 거칠고 까칠한 헤비 사운드가 돋보인다. 물론 (Back to Earth)과 (Laugh at Facts)처럼 뉴에이지풍 피아노 연주에 이어 뷰욕(Bjork) 같은 음악이 펼쳐지기도 하며 후반부 수록곡들은 ‘비교적’ 차분하지만, 인상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증폭과 변형, 응축과 폭발을 잘 제어한 혼종 록 음반으로, 중독적인 수작이다. 그간 시이나 링고가 보여준 이미지, 즉 퇴폐성과 순수성, 가학과 피학 등의 동거는 이번 음반에서 더 강렬해졌다. 시이나 링고의 팬들이라면 쌍수 들고 환영할 만한 화끈한 음반임은 물론이다. 더러 멜랑콜리한 정서가 줄어들었다며 ‘여전히 배고프다’는 아쉬움을 가질 수도 있는데 (The Carnival) 같은 곡의 그루브는 밴드 편성이 아니었다면 접하기 힘들었을 테니, 일장일단으로 판단하는 게 현명할 것 같다. 참, 김윤아(자우림)를 퍽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들어볼 필요가 있는 음반이다. 김윤아를 퍽 싫어한다는 이유로 지레 피하는 이들도 마찬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