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1월9일(일) 밤 11시50분
최인훈이 1966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를 원작으로 한 김수용의 1978년 영화 는 원작의 특이함을 담아내려는 노력이 영화 전체에 흐르는 작품이다. 1960년대 여배우 트로이카 남정임의 말기 출연작에 속하는 이 영화는 주인공 오학자(남정임)의 끊임없는 회상으로 이어지며 그녀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간다. 원작소설처럼 영화는 회상(혹은 상상)과 현실을 무시로 오가며, 주인공들의 시선도 그 의식의 흐름에 따라 마구 옮겨다닌다. 당시 한국영화들에선 보기 어려웠던 형식적 실험을 시도한 작품이라 하겠다. 그래서인지 관객을 상당히 혼란스럽게 한다.
사랑했던 남자에게 배신당한 ‘빠걸’ 오학자는 가진 돈을 모두 모아 수면제를 잔뜩 사서 남자와의 추억이 서린 온천호텔로 향한다. 그리고 그와 뛰놀았던 숲속을 헤매다 껴안은 채 누워 있는 한쌍의 남녀를 본다. 거기서 여자의 웃음소리를 듣고, 또 다음날도 그곳에서 여전히 누워 있는 그들을 보고 배신한 애인을 떠올리고…. 절망 속에서 자살을 생각했지만, 살고 싶어하는 그녀의 열망 때문에 결국 자살은 시도하지 못한다. 그렇게 절망 속을 헤매다 결국 숲속에서 본 연인의 실제 모습을 확인한 그는 더 크게 들려오는 웃음소리를 뒤로한 채 일상으로 돌아온다. 감독은 오학자의 불안정한 심리상태를 영화 전반에 깔린 기묘한 사운드와 영화 내내 대사 한마디도 내뱉지 않는 그의 모습을 통해 표현한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의 일상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야 대사를 던지는 그의 모습을 통해 절망이 사라졌음을 표현한다.
영화가 80분가량 진행될 때까지 웃음소리 외에는 한마디의 대사도 던지지 않는 남정임의 모습에 갑갑증을 느낄 정도다. 마지막에 오학자가 본 숲속 연인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꼭 확인해보기 바란다. 홍파 감독이 각본을 썼고, 정지영 감독이 조감독으로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