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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다 졸렸던 이유는? <오페라의 유령>

투덜군, <오페라의 유령>의 평범한 비주얼에 실망하다

필자는 <오페라의 유령> 공연을 런던에서 봤다. 맞다. 이거, 자랑이다. 하긴, 각종 해외여행 다녀온 사람을 한강 유람선 타본 사람보다도 훨씬 더 쉽게 만날 수 있는 요즘 같은 시대에는 이런 건 전혀 자랑 축에도 못 끼리라 사료되지만도. 하여튼,

당시 먹을 거 안 먹고, 탈 거 안 타고, 살 거 안 사면서 아껴 모은 돈으로 어렵사리 봤던 이 뮤지컬은, 필자에겐 ‘화려한 숙면’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빤짝빤짝하고 깔끔모던한 우리나라 식의 극장이 아닌, 고풍스럽고 아담한 로코코풍의 극장에서 샹들리에의 요란한 추락과 함께 시작된 이 화려찬연한 뮤지컬. 그러나 필자가 그 압도적인 비주얼과 오케스트라의 음량에도 불구하고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 건, 뮤지컬이 시작된 지 채 1시간도 지나지 않았을 때다. 그 간헐적 졸음이 R.E.M.에 가까운 포근하고도 아늑한 숙면으로 발전하는 데는 채 3분도 걸리지 않았고 말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서도, ‘안개 낀 지하를 가로지르는 배’라든가 ‘거울 뒤에서 떠오르는 유령’, 그리고 ‘가면만 남겨두고 휘리릭 사라지는 유령’ 같은 유명한 장면들은 용케도 다 챙겨본 건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과연 본전회수를 향한 인간의 본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라는 체험적 교훈과 함께, 그 숙면의 원인을 짧은 영어실력과 부족한 수면, 그리고 부실한 영양상태의 탓으로 돌리고 있었던 필자는, 그로부터 어언 4년여가 지난 지금에 와서야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렇다. <오페라의 유령>의 영화 버전을 보면서도 또다시 깜빡 졸 뻔했던 것이다.

그건 니가 이상한 거라며 돌을 던지실 수도 있겠으나, 필자뿐만이 아니라 이 영화를 동반 관람했던 다른 사람들도 모두 동일한 가수면 증상을 호소했으니 그렇게 단순한 문제만은 아닐 수도 있는 거다. 과연 이 2시간23분짜리 뮤지컬영화가, 인간의 신체리듬상 그렇게 만만할 수 만은 없었던 게지.

근데 곰곰 생각해보니, 이게 단순히 상영시간만이 문제였을까 하는 의심이 든다. 동시에 이런 생각이 스리슬슬 밀려오기 시작한다. 굳이 이런 시도를 이렇게 뒤늦게 1억달러라는 떼돈까지 들여가며 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그리고 바로 이런 점이야말로 이번 2차 졸음의 진정한 원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아무리 걸작 뮤지컬의 후광이 받쳐주고, 앤드류 로이드 웨버가 신곡을 첨가했고, 뮤지컬에는 없었던 새로운 장면들을 추가했다고 하더라도, 이미 바즈 루어만이 <로미오와 줄리엣>과 <물랑루즈>에서 보여준 ‘뽕나게 화끈한 비주얼리스리스틱 뮤지컬영화’를 경험한 관객에게, 상대적으로 평범한 비주얼의 이 영화가 과연 먹힐 수 있을 것인가.

필자는 이에 대해 그 강력했던 수면욕구보다도 더 강력한 회의가 든다. 시종일관 거의 도자기 인형 같은 뻣뻣한 표정으로 일관하던 주연 여배우 에미 로섬에 대한 또 하나의 강력한 회의와 함께 말이다.

하여튼 그래도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통해 건진 게 하나 있었다면, 게으름으로 4년 동안 미스터리의 어두운 미궁 속에 방치되어 있었던 <오페라의 유령>의 내용의 전모가 드디어 파악되었다는 것 정도겠다.

유령… 불쌍한 넘. 쯔쯔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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