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성우 장정진의 죽음으로 가학성 오락프로그램이 논란에 휩싸이자 MBC와 SBS는 각각 <질풍노도 라이벌> <일요일은 101%> 같은 ‘몸으로 때우던’ 프로그램을 폐지했다. 그리고 MBC <천생연분>의 대성공을 회고하며 12월16일 일제히 스타미팅프로그램 <심심풀이-러브 서바이벌 두근두근>과 <실제상황 일요일>의 한 코너 <리얼 로망스 연애편지>를 히든카드로 내놓았다. 이들 프로그램들은 첫 방영 당시 평균 15%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나름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고, 한때 붐이었던 장르의 부활에 시청자들의 기대 또한 컸다. 하지만 방영 3개월도 채 안 된 지금, 폐지론까지 거론되며 시청자들의 거센 항의를 받고 있다. 이유는 심하게 노골적이고 비인간적인 ‘과거’의 문제점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것. 선정성과 홍보성, 베끼기 측면에선 오히려 더하다는 것이다.
남자연예인과 일반인 여성의 짝짓기라는 점에서 시작부터 <장미의 전쟁> ‘짝퉁’ 의혹을 받았던 MBC <심심풀이-러브 서바이벌 두근두근>(MBC 토 오후 6시)은 자극적인 말과 즉흥적인 파트너 교체로 시청자들에게 심한 불쾌감을 주고 있다. “젊은이들의 적극적인 사랑방식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게 제작진의 의도지만 프로그램이 내세운 코너를 보면 심하다 싶을 정도로 선정적이다. 뭐, 스타미팅프로그램의 선정성이야 익히 보던 것이지만 이 프로그램은 그 정도를 넘어선다. 심장박동 수를 체크해 베스트 커플을 정한다는 이유 아래 남자출연자와 여자출연자를 좁은 공중전화박스에 밀어넣더니, 여자출연자는 남자출연자의 손을 서슴없이 자신의 가슴 위에 얹히고, 남자출연자는 닿을 듯 말 듯 입술을 갖다댄다. 도무지 처음 만난 사람 같지 않은 이들의 행위는 제작진이 말한 ‘신세대의 적극성’보단 ‘민망함을 동반한 불쾌감’에 가깝다. 원하는 만큼 파트너를 바꿀 수 있게 해 여기저기 ‘찜’해보는 출연자들의 모습 역시 젊은이들의 일회성 사랑을 부추기는 느낌을 갖게 한다.
출연자들을 탈락시키는 과정에서도 문제점은 드러난다. 애초에 여자출연자를 떨어뜨린다는 설정으로 여자출연자를 한명 더 등장시켰으니 선택되지 못한 이를 탈락시키면 그만일 것을 프로그램은 나서서 비난받을 장치를 심어놓았다. 여성출연자들이 서로 탈락시키고 싶은 상대와 그 이유를 문자메시지로 진행자에게 보내면 진행자가 그것을 공개하는 것. 이에 한술 더 떠 역추적으로 ‘범인’을 밝혀내기까지 한다. 제작진은 “신세대들의 대표적 아이템인 휴대폰을 이용해 그들의 문화를 미팅에 접목시키고 싶었다”고 말하지만, ‘나보다 예뻐서’, ‘새침해 보여서’, ‘쟤만 없으면 내가 퀸이 될 것 같아서’라는 어이없는 이유는 출연자들을 이간질시켜 노골적인 발언을 유도하고, 이를 흥미의 소재로 이용한다는 시청자들의 비난만 입증시킬 뿐이다. 이외에도 <심심풀이…>는 <장미의 전쟁>이 그랬듯, 자신을 ‘예쁜 일반인’이라 주장했던 여성출연자들이 ‘알고보니’ 연예인 지망생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여성출연자 중 가장 인기를 얻고 있는 김아중은 지난해 영화 <어깨동무>로 데뷔했던 사실이 밝혀져 항의를 받기도 했다) ‘연예인 만들기’ 프로그램이라는 비난까지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그나마 시청자들이 흥미롭게 갖고 있던 ‘일반인과 연예인의 연결’이 주는 묘한 호기심마저 이젠 사라져버린 셈이다.
동시간대 방영되는 SBS의 <리얼 로망스 연애편지> 역시 별반 다르진 않다. <실제상황 토요일>의 한 코너로 진행 중인 이 프로그램은 매회 한명의 여배우가 게스트로 등장해 고정출연자인 신화 멤버들 가운데 최고의 ‘퍼펙트맨’을 선정한다. 기존의 스타미팅프로그램들과는 다른 포맷이 신선하다는 의견과 함께 선정적이지 않아 좋다는 평가도 있지만 애초에 신화를 두고 기획된 듯 모든 진행이 신화 위주라는 점은 ‘신화홍보프로그램’이라는 의혹을 떨쳐버릴 수 없다. 장동욱 책임프로듀서는 “여성출연자가 완벽한 남성을 찾는 과정 속에서 여성에 대한 남성의 매너, 지성과 유머, 순수성 등 우리 시대 남녀 관계에 꼭 필요한 덕목들이 부각되는 효과가 있다”고 강조하지만 방송사의 연예인 띄워주기에 놀아난 느낌이라는 시청자들의 비난을 피하기란 쉽지 않다. 익히 봐오던 게임과 가상데이트가 난무한다는 점에서도 눈총은 뜨겁다.
이들 스타미팅프로그램들은 젊은 남녀들이 등장하는 만큼 시청자들에게 요즘의 사랑방식을 알려주는 하나의 코드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개편 때마다 공익성을 강화하겠다고 큰소리치고 이내 시청률 지상주의로 돌아서는 방송사들의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 이라면 문제점들은 앞으로도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아무리 심장박동 수를 재면서 자신의 마음이 진심이라 이야기해도 머지않아 또 다른 누군가에게 또다시 사랑을 속삭일 것임을 시청자들은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도 변했고 시청자들의 수준도 높아졌다. 또 한번 실망한 시청자들의 마음을 돌리려면, 사랑 찾고 즐거움 준다는 프로그램의 본능에 충실하려면 분명 변화가 필요함을 알아야 할 것이다.
짝짓기 프로그램의 3가지 클리셰 - 이 셋이 없으면 섭섭하지~!
폭탄_ ‘꽃미남’ 사이에 ‘꼭미남’(다음 생애는 꼭미남으로 태어나자는 오락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하는 말) 꼭 있다. 가끔 독특한 여자출연자들이 ‘좋아라~’ 데려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분위기만 띄워주다 결국 ‘쪽박’ 찬다.
댄스_ 탐색전으로 꼭 등장한다. 파트너 고르는 데 춤은 왜 추나 싶지만 어김없다. 추는 춤도 ‘모 아니면 도’다. 섹시하거나 혹은 웃기거나. 섹시하면 남자출연자들 바닥에 드러눕고, 웃기면 나와서 같이 춘다.
눈물_ 여자출연자들 탈락되면 꼭 눈물 흘린다. “동료들과 헤어져서 슬프고요~,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겠습니다~.” 멘트도 똑같다. 어차피 짜고 치는 고스톱, 뭐가 그리 슬플까 싶겠지만 알고보면 그네들도 사정은 있다. 방송 출연 못하면 ‘뜰’ 기회 사라지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