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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한국 영화계 10대 이슈 [1]
문석 2004-12-29

올해 충무로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2004년의 문이 열리자마자 한국 영화계는 1천만 관객 시대라는 무지개 다리를 맞이했다. 하지만 그 다리 너머엔 황금궁전이 없었다. 관객 수, 스크린, 해외판매 등이 꾸준히 늘었고, 3대 영화제에서 ‘트리플 크라운’을 기록했으며, ‘욘사마’를 타고 한국 배우들이 일본에 상륙했지만, 입맛 까다로운 관객을 만족시키는 영화는 점점 줄어들었고, DVD 시장이 무너져내려 부가판권 수익에 대한 기대도 무망해졌으며, 원초적 욕구의 배설처로 관심을 모았던 제한상영관도 전멸했다. 기대와 절망, 상승과 추락, 환호와 야유가 교차했던 한국 영화계의 올 한해 10대 이슈를 뽑아봤다. /편집자

1. CJ의 독주와 극장자본의 힘 증가 - “CJ 독주냐? 3강 체제 구축이냐”

CJ엔터테인먼트가 프리머스를 인수하고 시네마서비스가 주춤거리는 사이 한국영화의 최대 산맥으로 우뚝 섰다. 이와 함께 오리온그룹의 쇼박스가 시네마서비스를 능가하는 성과를 이뤄 기존 CJ-시네마서비스의 2강구도에서 CJ-시네마서비스-쇼박스의 3강구도를 형성했다. 또한 풍부한 자본력을 갖춘 롯데가 극장 체인을 공격적으로 확장하며 충무로에 진입하고 있어 한국 영화산업은 극장을 확보하고 있는 대기업이 새롭게 중심그룹을 이끌 전망이다.

충무로에선 제작-배급-극장의 수직계열화를 이룬 CJ를 부작용이 큰 독과점 체제로 간주하며 프리머스의 공영기업화론 같은 ‘견제구’를 날리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선 제작사와 극장이 수익을 5 대 5로 나누는 부율을 외화처럼 6 대 4의 수준으로 조정해 제작사의 수익성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한다. CJ엔터테인먼트의 최평호 상무는 “절대강자가 존재하지 않는 콘텐츠 시장에서 사이즈가 상대적으로 크다는 건 큰 의미가 없다. CJ는 자본력은 있으나 크리에이티브가 없지 않나. 크리에이티브를 갖춘 제작사들과 어떻게 시너지 효과를 낼지 업계 리더로서의 의무와 역할에 충실할 것”이라고 ‘독주론’에 이의를 제기했다. 오히려 한국 영화산업의 활로를 해외에서 찾아야 하는 현실에 비추어 해외 메이저 또는 현지 국가의 최강자와 경쟁하려면 일정 규모의 자본력과 기업형 구조가 요구된다는 ‘필요론’을 펼쳤다. “한국은 극장수익과 비디오, 방송 등 부가판권수익 비율이 8 대 2로 미국과 정반대의 불균형한 구조를 갖고 있다. 최소 5 대 5나 6 대 4 정도로 만들어가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라도 외국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국내 제작사들과 협력해 중국, 일본 등의 시장을 공략해나가는 게 CJ의 최대 관심사이며 내년에 이 전략을 더 심화할 것이다.” 흥미롭게도 CJ와 쇼박스는 서로를 경쟁자로 간주하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CJ는 쇼박스가 쫓아오려면 아직 멀었다는 식이고, 쇼박스는 크리에이티브 싸움에선 독식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CJ와는 영화시장을 보는 시각과 전략이 애초부터 다르다는 식이다. 쇼박스의 정태성 사업본부장은 “배급업을 시작한 지 2년 만에 급성장했으니 내년에는 시장점유율 경쟁보다 회사 내부의 인적 인프라 강화에 초점을 두려고 한다. 밖으로의 팽창이 아니라 내실 강화에 역점을 두면서 한편으론 해외시장 개척 작업을 시작할 것이다. 배급 편수도 무리하게 늘리지 않고 올해와 비슷한 23편 안팎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 3대 영화제의 수상 쾌거 - “작가주의 스타 감독 등장”

김기덕 감독과 박찬욱 감독은 올해 한국영화의 성장과 수확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인물이었다. 젊은 영화감독들의 모임인 ‘디렉터스 컷’이 지난 12월13일 올해의 영화인으로 두 사람을 뽑은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김기덕 감독은 한해에 베를린과 베니스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는 보기 드문 쾌거를 이뤘고 박찬욱 감독은 <올드보이>로 칸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 또 박찬욱 감독은 GM대우 광고에 출연하는 등 스타 감독이 됐다.

영화인들만의 평가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2004년 엠파스 검색어 가운데 <올드보이>는 9위, 김기덕 감독이 19위를 차지하며 두 작가의 영화가 올해 네티즌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김기덕 감독은 2월에 열린 제54회 베를린영화제에서 <사마리아>로 감독상을 수상했다. 베를린영화제 심사위원회는 용서와 화해, 원죄와 구원에 대한 김기덕 감독의 시선을 높이 평가하며 그에게 은곰상을 안겼다. 한국 감독으로서는 첫 베를린영화제 감독상이었다. 그는 불과 7개월 뒤 <빈 집>을 들고 베니스로 건너가 또 하나의 감독상을 거머쥐었다. 크지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이 <블루>로 93년 9월 베니스영화제 대상을 받고, <화이트>로 94년 2월 베를린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사례 정도를 빼면 1년에 두 차례나 각기 다른 세계적 영화제에서 주요 부문의 상을 탄 감독은 거의 없다. 김기덕 감독은 “내 인생에 감사한다”며 감격해했다. 또 그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은 미국과 그 밖의 해외관객을 움직이며 각각 238만달러와 623만달러의 흥행수입을 올리면서 화제를 낳았다.

애초에 비경쟁 부문에 초청받았다 뒤늦게 합류,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박찬욱 감독은 기쁨이 더 컸다. 경쟁부문 상영작 발표를 며칠 앞두고 매우 이례적으로 경쟁부문에 다시 초청을 받은 <올드보이>는 칸영화제 심사위원장인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비상한 관심과 애정을 받는 등 큰 관심을 받았다.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마이클 무어 감독의 <화씨 9/11>과 겨룬 끝에 <올드보이>는 2등상에 해당하는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고, 할리우드에 리메이크 판권이 팔리면서 미국 네티즌 사이에 누가 주연을 맡을 것인가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3. 한류 열풍과 한국영화 수출 호조 - “욘사마 열풍, 영화 수출로 이어질까?”

‘욘사마’라는 단어가 전 일본 열도에 메아리친 한해, 한국영화의 해외판매 또한 급증세를 보였다. CJ엔터테인먼트 박이범 해외팀장에 따르면, 2003년 한국영화의 해외수출액은 3천만달러 정도였지만 올해의 경우 5천만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영화 전체 매출에서 해외부문이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해 약 7%에서 올해는 10% 정도까지 오를 분위기다. 이렇게 한국영화가 해외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나타낸 데는 한류 열풍이 가장 큰 힘이 됐다.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은 미니멈 개런티 320만달러, <내 머리 속의 지우개>는 270만달러를 기록하며 일본에 ‘수출’됐으며 <태풍>과 <우리형> 등도 일본에 높은 가격으로 사전판매됐다. 한국영화를 잡기 위해 일본 업체끼리 입도선매 경쟁을 벌인다는 이야기가 들릴 정도다. 하지만 시네마서비스 국제팀의 이용신 차장은 “이런 현상은 전적으로 배우들의 인기에 힘입은 것으로, 자칫 일시적인 붐에 그칠 수도 있다. 이같은 성장을 지속시키려면 좋은 콘텐츠를 생산해 배우만이 아니라 한국영화 자체를 좋아하게 만들어야 하며, 개봉할 때까지 일본쪽과 긴밀한 협조를 해 좋은 성과를 내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관심을 쏟아야 할 지점은 미니멈 개런티 액수가 아니라 현지 개봉 성적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올해 일본에서 개봉한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등이 기대만큼의 성적을 내지 못했다는 점은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한다. 만약 비싼 단가로 판매된 한국영화들이 흥행에서 실패할 경우, 한국영화를 둘러싼 거품은 쉽게 꺼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판매 단가는 적어도 전세계에서 고른 흥행을 기록하고 있는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은 해외판매의 모범사례가 될 수 있다. 영진위 해외팀 황동미씨는 “현재 미국이나 유럽, 중국 등의 시장에서 한국영화는 부진하다. 좀더 특성화, 브랜드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한국영화의 상상력이 풍부해지고, 제작비 또한 지속적으로 올라가는 현재의 국면을 타개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해외로 나가는 것뿐’이라는 공감대를 바탕으로 한국영화의 세계화는 내년부터 본격화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