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간 묵었던 도쿄를 떠나기 전날 뒤적이던 신문 한구석에서 찰스 젠킨스(Charles Jenkins)의 사도(佐渡) 도착을 알리는 1단 기사가 눈에 띄었다. 사진 한장 박혀 있지 않은 짧고 건조한 기사는 1965년 혹한의 1월, 한반도의 비무장지대를 넘어 북으로 향했던 24살의 미군 중사는 64살이 되어서야, 그것도 자신의 고향인 노스캐롤라이나가 아니라 일본인 아내 소가의 고향인 일본 니카타의 사도섬에, 북한에서 태어나고 자란 두딸 미카와 브린다와 함께 도착했다고 전하고 있었다. 그 기사 위로 문득 영화 의 마지막 장면을 장식했던 앤서니 퀸의 불가사의하면서도 가슴을 저릿하게 했던 일그러진 웃음이 떠올랐다.
1955년 15살의 나이에 고작 7학년을 마치고 주방위군에 입대했던 그는 1958년 의무기간을 마치고도 다시 육군에 입대했던 전형적인 하층계급 출신의 미국인이었다. 미군은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는 그에게 안성맞춤의 직장이었다. 1964년 두 번째 남한 복무를 시작했을 때 그는 중사였고 13개월의 복무기간이 끝나면 베트남으로 배속될 것을 알았다. 베트남 전쟁이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닫고 있던 1965년 그는 M14소총에 흰색 내의를 걸고 비무장지대를 넘었다. 징집영장을 찢어버리거나 캐나다나 멕시코로 도피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던 현역군인인 젠킨스에게는 그것이 전쟁을 피할 수 있었던 유일한 길이었을 것이다. 그는 그 길을 택했고 자신의 운명을 한반도에 의탁했다. 젊은 젠킨스가 월북 뒤 자신에게 닥칠 운명을 명징하게 인식하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무척 희박했다는 것은 일본에서의 <파이스턴이코노미리뷰>와의 독점 인터뷰에서도 진솔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는 의 시대에 등장했던 수많은 요한 중 한명이었다. 요한과 달리 그가 결혼했던 소가는 오직 자신의 아이만을 가졌지만, 마지막까지 미국과 일본, 북한의 노리개가 되어야 했던 그의 운명은 요한과 별반 다른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모든 것은 끝난 것처럼 보인다. 그 어느 나라도 젠킨스라는 보잘것없는 전직 미군 탈영병이자 반역자인 그에게 관심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너무도 오랜 세월이 흘러야 했지만 그는 마침내 평범하다면 평범한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알려진 것처럼 젠킨스의 일본행은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납북 일본인의 귀향과 북-일 관계개선에 정치적 운명을 건 고이즈미의 총력전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담판에서 젠킨스의 아내와 두딸을 귀향시키는 데 극적으로 성공을 거두었고 젠킨스 또한 일본인 가족과 합류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그런 고이즈미에게 상기시켜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1970년 요도호를 납치해 평양으로 갈 것을 요구했던 일본 적군파 행동대원 9명은 우여곡절 끝에 김포공항을 거쳐 평양에 안착하는 데에 성공했다. 평양은 정치적 망명을 요청한 그들을 받아들였다. 그들 중 한명인 다나카 요시미(田中義三)는 1996년 캄보디아와 베트남의 국경인 목바이에서 미 재무부 특수요원들에 의해 미화위폐범으로 체포되어 타이로 전격 이송된 뒤 촌부리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첩보영화를 방불케 한 다나카의 검거가 당시 미국의 북한때리기(NK bashing)와 무관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1998년 타이 법정이 그에게 무죄를 선고함으로써 설득력을 얻었다. 그뒤 일본은 타이 정부에 다나카의 송환을 요구했다. 2000년 일본으로 송환된 다나카는 다시 항공기납치범으로 기소되었고 2003년 최종심에서 12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지금도 옥중에 있다.
젠킨스를 위해 그토록 애를 썼던 일본 정부가 다나카에게 가혹한 이유를 납득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1970년 요도호에 탑승했던 138명의 승무원과 승객 중에는 단 한명의 사상자도 없었다. 기체 또한 고스란히 일본으로 돌아갔다. 평양으로 간 적군파들한테 망명처를 제공했던 북한당국의 시종일관된 침묵 또한 무척 불편하다. 다나카가 평양으로의 송환을 주장하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는 북-일 관계개선에 나선 북한당국의 입장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라는 후문이지만 그는 엄연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적을 가졌던 공민이었다. 일본 정부가 젠킨스에게 보였던 열의의 십분의 일이라도 다나카에게 보이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똑같은 기대를 북한당국에도 가져본다. 원했건 원치 않았건 한반도의 고단한 운명에 자신을 의탁했던 한 일본인의 존재는 남한의 우리와도 결코 무관할 수 없을 것이다.
유재현/ 소설가·<시하눅빌 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