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 일요일 저녁 8시50분
정신병원에서 원장이 은퇴할 때가 되었다. 정신병원 환자들을 모아놓고 원장은 단상에 올라가 은퇴인사를 했다. 원장이 ‘3’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모든 환자들이 뒤집어지기 시작했다. 원장은 웃음이 잦아들기를 기다린 뒤 ‘6’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환자들은 더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원장은 남몰래 회심의 미소를 지은 뒤 손가락을 쫙 펴고 ‘5’라고 말했다. 그러자 환자들은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웃었다. 그러고는 원장은 단상을
내려왔다. 그러자 환자들은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그것을 지켜보던 신임원장은 당신이 말한 숫자는 도대체 뭐냐고 물었다. 원장은 말했다. “오랫동안
우리 사이에 쌓인 추억입니다.”
세월은 그냥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세월에 사람들과의 약속이 쌓였다. 서로만이 알아보는 반가움이 쌓였다. 서먹서먹한 감정이 쌓였다가 풀렸고
유쾌하게 웃을 수 있게 되었다. “그날 말이야, 히히히” 하고 우리들만의 코드가 쌓였다. 웃음은 사회적 약속이다, 라고 말하면 거창한가. 내밀한
웃음의 코드를 우리는 <개그 콘서트>의 단상에서 발견한다. 우리 정신병원 환자들의 원장선생님 <개그 콘서트>의 코미디언들,
우리는 그들의 등장에 환호작약한다. 그들과 우리들 사이 웃음의 약속이 쌓였으니깐.
“복고풍으로, 정석대로 가자”
<개그 콘서트>는 일요일 저녁이라는 황금시간대에 방송된다. 지금 89회로 그 열광의 끝이 어디인가를 시험중이다. 하지만 이 열광이
한결같았던 건 아니다. 99년 7월 개장하면서 ‘정통 코미디의 부활’과 ‘외도만 하는 코미디언을 제자리로 세운 프로그램’ 등으로 갖가지 찬사를
받았지만 2000년 봄부터 가을까지 한 자리 시청률의 고뇌에 휩싸인다. 새로운 코미디의 총아였던 프로그램은 순식간에 KBS의 편성국에서 ‘이름
변경’ 요구를 받았다. 새로운 코미디를 구상하라는 하달이 떨어진 것이다. 양기선 PD는 이름을 유지하기를 고집했다. 공연식은 그대로 가야 할
것 같은데 이름을 굳이 바꿀 필요가 있나 싶어서였다.
“무작위로 아이템을 선정하는 것이 지네들끼리만 하는 개그라는 인상을 많이 주었다. 복고풍으로 정석대로 가자는 생각을 했다.” 매주 바뀌던 아이템을
고정으로 하자는 것이 특명 해결책이었다. 양기선 PD는 <한바탕 웃음으로>에서 자신이 선보였던 희대의 걸작 ‘봉숭아학당’을 생각했다.
그렇게 ‘봉숭아학당’이 ‘봉숭아학당 2001’로 부활한다. <개그 콘서트>를 고정 코너로 구성한다지만 수시로 코너 개편이 있었다.
‘개그법정’이라는 거물 코너가 들어서고 4월 마지막 주 ‘수다맨’이 돌풍같이 등장하고, 2주 전 무표정과 과표정의 오묘한 조화 속 ‘꽃봉오리
예술단’이 들어섰다. 그런 중에서도 ‘봉숭아학당 2001’은 연변 총각에 착각 여학생 등이 새로 합류하고, 등장인물 성격도 바꿔가며 <개그
콘서트> 간판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캐릭터의 ‘의외성’에 재미를 두다
‘봉숭아학당’은 예전 <한바탕 웃음으로>의 한 코너로 일세를 풍미했다. 바보 같은 질문을 하자면 이렇다. “‘봉숭아학당’은예전에 그렇게 재미있었는데 왜 요즘도 그렇게 재미있는 것일까. 웃기고 웃겼는데 왜 또 웃긴 것일까.” 웃음에는 ‘불변의 공식’이 있는가. 예전의
‘봉숭아학당’은 학교가 ‘학당’이라 불리던 일제시대가 배경이다. 배경에 깔린 암울함이 코미디와 어울린 걸작이었다. 남희석은 하회탈을 하고,
김국진은 꼬리 잡아서 질문하는 학생을 하고, 김용만은 차렷 열중 쉬엇 하는 반장을 하고, 유재석은 여성스러운 남학생 역을 하는 지금 같으면
출연료가 비싸서 엄두도 못 낼 ‘코미디의 브랫팩’ 프로그램이었다. 무엇보다 인기는 맹구 역 이창훈의 차지였다. 이창훈이 토크쇼에 나오면 “어떻게
저런 점잖은 사람이”라며 ‘멀쩡한 것’에 유달리 까무라치게 놀라곤 했다. 말을 더듬거리고 한 마디 한 마디에 고저와 콧소리를 넣어 강조하는
맹구의 이미지가 너무도 강해서인지 이창훈은 이후 코미디의 역사에서 족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더불어 심형래 ‘영구’에 이어 ‘구’자로 끝나는
바보시대를 확정지었다.
91년 작품이므로 10여년이 지났지만 ‘봉숭아학당’을 잊어버리고 10살을 넘긴 사람은 없다. 아니, 5살부터 봤다 치고 15살이라고 하자.
잊혀질 수 없는 활력이 부활의 원동력이고 위험요소였을 것이다. 양기선 PD는 ‘봉숭아학당’의 인기를 “콩트, 이야기를 가진 형식이 아니라 개인기
열전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순풍 산부인과>가 캐릭터의 구축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 그들의 어처구니없는
성격에서 어쩔 수 없다는 듯 풀려나오는 이야기들이 재미를 주었던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봉숭아학당’은 이야기는 없어진 채, 진짜 이야기가
진행되면 그것을 툭툭 잘라가며 이야기를 만든다. ‘캐릭터’의 힘이 모든 것을 압도하는 것이다.
이 둘이 같은 말인 게 코미디다. 코미디만큼 사회가 일그러져 나타나는 것도 없지만 코미디만큼 사회를 그대로 비추는 것도 없다, 는 말. 일제시대라는
시대가 거세된 ‘봉숭아학당 2001’에서 ‘학당’이라는 이름은 이름만 남았다. 이제 ‘봉숭아학당 2001’은 현대사회 군상들의 이중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래서 ‘봉숭아학당 2001’의 캐릭터들의 재미는 ‘의외성’이다.
봉숭아학당, 사회 대표주자들의 축소판
자신을 철두철미 ‘바보’로 무장하는 맹구는 바보임을 스스로 패러디할 줄 아는 ‘똑똑한’ 바보다. ‘옳은 말만 줄줄 하는’바보의 상식은 마지막 순간 허점이 드러난다. 이 시대 ‘상식 바보’들의 면모다. 명함을 건네며 놀러오라고 말하던 마담은 예전의 ‘봉숭아학당’에도
있었다. 그런데 많이 바뀌었다. 가장 여성적인 직업을 가진 마담은 남자다. 군대도 갔다 오고 예비군 훈련도 나가야 한다. 여장 남자는 코미디에
단골 메뉴이기도 했지만 쉬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하지만 희화화가 눈에 보이면서도 이 캐릭터를 미워할 수 없다. 황 마담 그 남자가 ‘여자라서
행복’하기 때문이다.
허리를 잘 펴지 못해서 골골거리던 이장은 이단 옆차기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꿰차는 날렵함을 지녔다. 술 먹고 토하고 깽판 부리고 여자 희롱하는
이 남자는 우리에게 아주 익숙하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인물인 것. 한 여학생은 유명 배우들이 자신을 향해서 프로포즈한다고 생각한다.
“유오성과 장동건 이 둘은 친구인데 내가 좋다고 싸워요.” 사진의 말에 귀기울이고 자신이 손에 쥔 사진이 돌진하는 ‘쌩쑈’를 보는 한순간은
섬할 지경. 백만학도의 의견을 대표했던 운동권 학생은 ‘세상에 유포되어 있는 말’에 대한 강력한 이의제기를 한다. 사회적 문제가 아니라 ‘말이
말을 낳는 세태’가 더 문제라는 말인가. ‘말이 씨가 된다굽쇼’, ‘믿는 도끼에 발등 찍는다굽쇼’라는 말이 ‘말이 씨냐’, ‘나는 나를 믿는데
내가 나를 배반할쏘냐’는 물음으로 이어진다.
캐릭터간의 받아치는 말은 이야기의 연결고리이다. 그런데 학생들은 서로의 말의 진위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그래서 연결고리는 이어질 듯 끊어진다).
이장은 맹구 말을 듣지 않아 자신을 난처하게 만든 범인을 알지 못하고, 운동권 학생의 말은 맹구에 의해서 “정부는 수박씨를 받는 씨받이를 대령하라”고
엉뚱하게 울리고, 학생들은 선생님만 빼고 지들끼리만 키득거리고, 여학생은 선생님에게 빨리 대답해달라고 독촉하느라 말을 듣지 못한다.
‘봉숭아학당’과 ‘봉숭아학당 2001’의 공통점은 ‘바보들이 많다’는 것이다. 옛날의 바보가 ‘마음껏 비웃고’, ‘다르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바보였다면 지금의 ‘바보’는 헛똑똑이다. 자신의 논리가 속에서 한번 꼬여버린 ‘맥락’이 없는 바보다. 사회 ‘대표주자’들이 모인 축소판인 ‘봉숭아학당’.
미운 짓만 골라 하는 과장이 보이는데, 옆자리 사람의 공주병을 보여주는데 안 웃을 재간이 없다. 그러다 그 웃음에 찔린다. ‘흡’ 하고 눈이
부라려지고 가슴이 뛴다. 그 비밀 코드를 어떻게 알았지? 사회가 이렇게 생겨먹지만 않았어도 ‘봉숭아학당’은 재미가 없었을 것이다. 웃을 준비가
되었는가. 3! 6! 5!
글 구둘래/ 객원기자 kuskus@dreamx.net사진 정진환 기자 jungjh@hani.co.kr
<개그 콘서트>의 개그 “멘”
댕기동자와 그
일당들
김미화 코미디 콘서트를 제안하다. 일자 눈썹으로 한때를 풍미하고 현재는 대학교에 다니느라바쁜 만학도. 법정에서 한 남자를 집적거리는 중. <개그 콘서트>의 대모.
심현섭 심형래-이창훈의 계보를 잇는 바보계의 적자. 아프리카 사바나의 추장 노릇을 하기도 했다. 역대 대통령과 가수와 탤런트가
혀끝에서 되살아나는 다중인격자.
황승환 여 or 남. 황 마담. 알면서의 경찰. 주요 활동무대는 술집과 룸살롱, 함정수사에 도통. 밤에는 여장을 하고 야학에 나간다.
대학교를 나온 것으로 아는데, 그 이유는 오리무중. 그의 출신대학은? 알 텐데∼. 자신의 성정체성을 깨달은 것은 군대, 지금 가장 가기 싫은
건 예비군 훈련. 예쁜 척하는 것들은 절대 못 봐줌.
강성범 연변 전학 학생. 황금박쥐로 좀약을 만들고 백개 달린 여우털로 먼지떨이를 만드는 전설의 고향 출신. 지하철 노선도, 정부
행정부 체계, 꽃말, 알고 싶은 건 모두 물어봐. “월드컵, 다이너스 컵… 가장 제일 작은 컵은 A컵”이라고 능청을 떨다가도 ‘사랑’이야기가
나오면 제 이야기인 줄 알고 ‘아직 준비가 안 되었는데요”라고 말하는 순진파.
김준호 이장님. 홈리스 머리, 노끈 바지, 새마을 모자, 터져나오는 뱃살은 보급용 잠바에 감추고 콧소리와 안 펴지는 허리로 있다가
일순간 이단 옆차기를 날린다. 그의 가장 단단한 부위는 엉덩이. 작살이나 꼬챙이 등 뾰족한 이물질이 매주마다 끼지만 그의 행패는 끝이 없다.
김지선 송이 꽃봉오리. 고성능 북한어로 웃는 표정인 채 움직이지 않는 실력 출중. 이장님과의 사랑이 그렇게 애가 탄다. “우리는미쳤어.” ‘쌩쑈’에 감염되어 감춰진 춤 실력을 선보인다.
이병진 덜 떨어진 셋째와 영악한 무사. 전쟁터에서 한가로이 차를 따르는 여유를 아는 남자. 봉숭아학당에서는 가장 근엄한 척.
이태식 나대기 반장. 불끈 화가 났다가도 다른 사람이 말리면 기어들어가고, 다른 사람을 말리다가도 그걸 한번 해봐야 직성이 풀린다.
김대희 핸섬 마스크로 법정을 사로잡은, 밀고 있는 유행어 목록이 가장 긴 남자. 경상도 남자 김영철에 이어 전라도 사투리로 아무
데나 몰래 가서 중계중. 바바리 코트를 입고 선생님의 행적을 무리하게 추적하다가 최근 체육복 입은 전라도 학생으로 변신. 거기서 ‘쓰댕’을
건지다.
김지혜 알고 싶은 것도 요구도 많다. “도와줘요. 수다맨!”이 신호.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꽃을 사준다며 수다맨의 마음을 아프게 한
혐의가 있다.
김미진 젊은 나이의 지긋지긋한 관절염. ‘꽃봉오리 예술단’ 공연중.
박성호 “지금 저 술의 용도를 주목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술잔의 원주율 3.14159265358932 곱하기 술잔의 지름 프라스살살 달래면서 루트 4a 알딸딸 제곱은 과거 다 불어버린다는 공식!” 수다맨이 나타나기 전 가장 외우기를 잘하는 것으로 보였음. 머리띠를 하든
머리끈으로 묶든 머리에 장식물질을 내려놓지 않는 열혈애국 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