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투덜군 투덜양
기자 양반들, 뭐가 좋다는 거요? <귀여워>

투덜군, <귀여워>의 ‘프레스 컬트’ 현상에 반발하다

아무래도 ‘프레스 컬트’(press cult)라는 말이 생겨야 할 것 같다. 이건 물론 대다수의 일반관객의 기호나 반응에 대한 고려는 일체없이 각급 영화언론 종사자들이나 그 관계자들끼리만 일제히 좋아라 넘어지는 일련의 영화들과, 그 현상 자체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 프레스 컬트 현상은 과거, 국내관객의 평가 같은 것은 그닥 안중에 두지 않고 처음부터 영화제의 수상을 목표로 제작되었던 몇몇 ‘레디-메이드 영화제 무비’들이나, 뭔가 있어 보이려고 상당히 애는 썼으나 결국 뭐 하자는 영화였는지는 만든 주최쪽에서도 파악하는 데 실패해버리곤 했던 ‘본의 아닌 난해 무비’들에서 주로 발견되어왔다. 또, 가끔은 영화의 완성도와는 전혀 무관한 전 국민적인 지지를 받음으로 말미암아, 한마디 잘못했다가는 30t가량의 돌을 한꺼번에 맞을 것을 각오해야 하는 <용가리>등의 특수 영화들에서도 간간이 발견되어오곤 했다.

그러나 인터넷의 확산, 관객 수준의 전반적인 향상 등으로 인해 최근 거의 사라지는 추세를 보여왔던 이 현상을 일순간에 부활시켜낸 프레스 컬트계의 기린아가 최근 개봉되었으니 그 제목은 다름 아닌 <귀여워>다.

뭔가 상당히 에미르 쿠스투리차스러운 냄새를 풍기려 하면서 뭔가 있는 듯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듯 보이나 어쨌든 영문도 이유도 근거도 개연성도 도저히 알아먹을 수 없는 ‘있는 척’ 스타일, 또한 도대체 뭐 하자는 플레이인지 끝까지 알아먹을 수 없었던데다가 별로 알고 싶지도 않은 ‘머리로만 막나가는’ 스토리, 그리고 로컬 양아치 캐릭터를 훌륭히 소화해낸 정재영의 연기와 완벽한 대척점을 이루면서 시종일관 근래 보기 드문 국어책 낭독 신공을 떨쳐 보이던 장선우의 연기와, 질세라, 도발적이고 발랄한 캐릭터를 시도때도 없는 오버를 통해서만 구현하려는 듯한 예지원의 연기 등등.. 이 영화가 준비해둔 이 모든 재앙들은, 평상시에도 국어책 낭독신공을 즐겨 구사한다는 장선우 감독의 개인적인 캐릭터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을 정도로 영화계에 정통한 국내외 프레스 관계자들이 마련한 ‘도발적이고도 엉뚱하고 판타스틱하면서도 한국영화의 미래를 책임지게 될 것 같은 예감’의 도가니탕 속에서 하나 되어 녹아들면서, 마침내 프레스 컬트라는 떠들썩하면서도 난해하고도 고고하면서도 판타스틱한 축제의 장으로 다시금 태어났던 것이다.

물론 문제의 근본적인 씨앗은 <귀여워>가 그 난해찬연한 함의와 혁신도발적인 스타일을 통해, 현재뿐만이 아니라 미래의 한국영화에도 찬연한 광휘를 흩뿌리고 있다는 사실을 여태 발견해내지 못하고 있는, 필자 같은 예지력 미보유자가 이 영화를 관람했다는 사실이긴 하다. 하지만 언론 관계자 여러분들께서는, 부디 일반인들 가운데에서 그러한 능력을 가진 사람의 비중은 상당히 희박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집필에 임해주셨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 하나 있다.

하긴, 지금 이렇게 태평한 얘기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닌지도 모른다. 필자도 앞으로 영화판에서 계속 글 써서 먹고살려면 정말 ‘장수로’ 같은 박수무당이라도 돼서 나름의 예지능력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어허….

한동원/영화칼럼니스트 hdw@handongwon.com

관련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