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석이 죽었다.
몹쓸 병에 걸려 적지 않은 투병 생활을 했고 꽤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했지만 별다른 효력도 보지 못하고 그 녀석은 죽었다. 애를 쓰다가 결국, 녀석은 죽었다. 사실, 그 녀석이 애를 쓴 건 별로 없었다. 뭐가 그리 태평인지… 어떤 사후의 멋진 세상을 꿈꾸는지 죽음으로 가는 녀석의 표정과 기운은 죽음을 생각 안 하는 그 어떤 사람보다 훨씬 나았다.
가끔 구토도 하고 때로는 정신도 잃고는 했지만… 녀석이 낙담에 빠지거나 죽을까 두려워한 적은 없다. 다만, 녀석의 가족과 친구인 우리가 녀석을 살려보려고 애를 썼다. 애를 쓰면 쓸수록 우리의 맘은 편했다. 살아남은 것들은 살아 있다는 이유로 때로는 미안해지고 슬퍼질 수도 있으니까….
녀석의 죽기 전 취미는 유언이었다. 툭하면 녀석은 ‘나 금방 죽잖아. 죽기 전 마지막 부탁인데…’라며 유언과 당부, 간청을 수시로 늘어놓았다. 고궁에 데려가 달라느니… 자기 대신 영화를 보고 와서 얘기해 달라고 하고… 심지어는 자기 대신 어떤 여자와 결혼해 달라고까지 했다. 그래서 결혼한 커플도 우리 친구 중엔 있지만 여하튼 녀석은 착한 친구들과 다정한 가족 곁을 떠났다.
눈자위가 까매지고 오줌이 붉게 나오고 손톱 끝이 파래지고 머리카락이 다 빠져나오고… 등등의 증상을 신기한 듯 얘길 해주며 그것이 죽음으로 가는 길목의 풍경인지도 모른 채 그렇게 맞이하고 놀라다가 녀석은 죽었다. 살고 싶은 맘이 가득한 사람이라면 녀석처럼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살고 싶다면 먹어야 할 하루치의 약들을 어항에 넣지 않았을 것이다. 정말 살아야겠다고 맘먹은 사람이라면 혈관으로 들어 가는 호스에 구멍을 내서 침대 밑으로 다 흐르게 하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죽고 싶어 환장하지 않은 이상 자신의 묘비명을 짓느라 며칠을 고민에 빠져 과로로 또 쓰러지진 않는단 말이다.
녀석은 정말로 살고 싶은 생각이 없는 환자였고 죽으려고 환장한 환자다. 삶에 아무 미련도 없는 그 녀석을 우린 뭐가 그토록 보고 싶고 부여잡고 싶었는지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갔었다. 병세가 심해져 말을 잘 할 수 없을 즈음이 되자 녀석을 찾아가는 일이 더욱 빈번해졌고 친구들의 수도 머무는 시간도 늘어났다. 녀석의 침대는 병실 창가쪽에 있었고… 우리가 병문안을 가면 녀석은 손짓으로 창을 가리지 말고 나오라고 간청했다.
죽음이 다가오면서 녀석은 일어날 수도 걸을 수도 없을 지경까지 됐고… 침대에 누워 창문을 통해 밖을 바라보는 시간이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의사도 간호사도 가족도 우리도 그 녀석을 만나러갈 때마다 녀석은 창문을 가리지 말라고 자기 눈앞을 막지 말라고 손짓을 하는 게 다였다. 힘겨운 손짓으로 자기 옆에 다가간 모든 이에게 비켜달라고 손을 움직였다. 그런 행동이 너무나 많은지 이제 녀석은 약간 짜증도 나고 화도 나는 것 같았다. ‘제발… 제발… 내 앞을 막지마. 난 창밖 풍경을 보고 싶어…. 내 눈앞에 서 있지 말고 나와줘!!!’ 녀석은 눈동자와 손짓으로 늘 외치고 있는 듯했다.
그렇게 간절히 밖을 보던 녀석이 드디어 밖으로 나가게 됐다. 물론 눈을 감고 있어서 밖을 보진 못할 것이다. 하찮은 저 창문 밖 햇살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모르고 지나치는 이 세상의 소음과 먼지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우리에게 알려주고 갔던 녀석은 이제 땅속으로 들어갔다. 그토록 고민하던 끝에 ‘좀만 옆으로 비켜줘’란 멋지면서도 특이한 묘비명까지 남기고 녀석은 그렇게 낙천적으로 죽었다. 이젠 그를 찾는 우리도 우리 아닌 그 누구도 녀석의 비석 앞에 서면 옆으로 비켜서 녀석의 무덤을 가리지 않는다.
장진/ 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