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 수·목 밤 9시55분
총제작비 180억원을 들여 완도에 지은 1만6천평 부지의 오픈 세트, 엑스트라를 포함한 현장 인원이 매 회 1500명. 2개월에 걸친 중국 현지 로케. 제작 전부터 수많은 화제를 뿌린 드라마 <해신>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지난 11월24일 첫 방송을 시작한 <해신>은 시청률 17.7%로 순조롭게 출발했다(TNS 미디어코리아). 아역이 성인으로 바뀐 4회째부터는 조금 더 올라 20% 고지에 안착했다. KBS 홈페이지에 쏟아놓는 시청자들의 반응도 호의적이다. “올해 접한 드라마 중에서 가장 마음 편하게 빠져들며 봤다. 올 겨울과 내년 봄까지 수요일과 목요일은 오래전의 영웅담에 푹 빠져 지낼 것 같다.”(ID 김태완) “드라마 한번 잘 만들었네요. 영상 연출력하며 앵글도 멋진 것 같고. 배역들도 잘 맞춘 것 같습니다. 팬이 됐어요.”(ID 박지성)
전체 연출을 맡은 강일수 PD는 “열심히 한 진정성을 알아주시는 것 같다”며 겸손히 말했지만, 사실 <해신>의 인기는 ‘보장’된 일이었다. <해신>은 통일신라시대 동북아시아 해상권을 제패한 장보고의 이야기를 그린 최인호의 동명소설이 원작. 하지만 장보고에 대한 역사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많은 부분에 살을 붙여 극적인 요소를 첨가했다. 긴장감 넘치는 사건 전개와 절제된 대사를 통해 사극은 고루하다는 고정관념도 깼다(물론 이는 퓨전사극 <다모>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 공동연출을 맡은 강병택 PD는 “<다모>를 보고 충격받았다. <해신>은 KBS 대하사극이 지니는 답답한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사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 밖에 2개월여를 들여 중국에서 찍어온 박진감 넘치고 이국적인 영상, 컴퓨터그래픽으로 재현한 전투장면 등 볼거리도 가득하다.
제작진이 자랑하고, 배우들이 가장 힘들었다는 중국 촬영분은 장보고가 노비로 끌려가 상단의 우두머리인 행수를 거쳐 당나라 무령군 소장(요즘의 연대장급)까지 오른 활약상 부분이다. 장보고가 노비로 끌려간다는 식의 얘기는 당시 노예 밀무역이 성행한 상황을 유추한 픽션이다.
강병택 PD는 “<해신>은 볼거리 면에서 기존 사극들과 비교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노예 검투사들끼리 싸우는 장면은 영화 <글래디에이터>를 연상케 하고, 말 1500필이 동원된 스펙터클한 전투장면도 압권이라는 것. 또 타클라마칸 사막과 기암괴석이 즐비한 마귀성 등의 이국적 풍경도 볼 만할 것이라고 전했다(중국 촬영분은 방송에선 7회부터 16회까지 볼 수 있다). 현지에서 두번이나 병원에 입원했다는 최수종은 “결투장면을 찍을 땐 칼에 살이 찢기고 온몸이 멍으로 물들다시피 했다”며 “<태조 왕건>도, <야망의 전설>도 이보다는 힘들지 않았어요. ‘도망치고 싶다’고 했더니 스탭들이 여권까지 빼앗아갔다”고 회상했다. 정화 역을 맡은 수애는 도도하게 웃으며 낙타를 타고 가는 장면 촬영 때 모래바람이 불어 크게 고생한 후일담을 전했다. 중국 상단에 노예로 끌려간 장보고와 정년이 땅에 목만 내놓고 파묻혀 있던 장면 촬영을 위해 땅속에 3일 동안 6시간에 걸쳐 묻혀 있었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진 에피소드.
스케일이 크고, 제작과정도 긴 사극의 생명력은 바로 배우다. 특히 요즘처럼 캐릭터 중심의 사극이 유행일 때는 더욱. 하지만 최수종과 채시라를 내세운 <해신>은 그리 걱정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그들의 안정적인 연기는 극의 집중도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강일수 PD는 아직도 일고 있는 최수종 캐스팅 논란에 대해 “최수종은 대단한 배우다. 힘든 중국 촬영 때 밖에 나가질 않았다. 알고보니 음식을 잘못 먹어서 탈이라도 나 촬영 일정에 지장을 줄까를 걱정해서였다. 최수종 캐스팅은 적절했다”고 일축했다. 최수종의 몸을 아끼지 않은 투혼 때문인지 시청자들의 의견도 ‘적절하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신라의 진골 귀족으로 빼어난 미모와 지락을 겸비한 자미 부인으로 분한 채시라는 가장 ‘적절한’ 캐스팅이라는 평가를 듣고 있다. 보통 사극에서 여성은 남성의 보조적인 역할로 많이 등장해왔는데, 자미 부인은 장보고와 가장 크게 대립하는 인물이다. 사실 여성의 사회활동이 많았던 통일신라시대가 배경이라 가능한 일이다. 최수종, 채시라 투톱 외에 <애정의 조건>의 히로인 송일국과 <꽃보다 아름다워>에서 가능성을 인정받은 김흥수, 연약한 이미지의 수애도 불꽃 튀는 연기 대결을 벌인다. PD로부터 ‘굉장히 좋은 배우’라는 호평을 들은 김흥수와 강 PD가 가장 공들여 만들었다는 캐릭터 염장으로 분한 송일국, 두 배우의 진가를 발견하는 것도 <해신>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박영규와 김갑수 등 조연의 활약도 눈부시다. 한 시청자는 “이도형 역의 김갑수씨와 자미 부인이 담판을 벌이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두 사람의 카리스마가 화면에서 빛을 발하여 짜릿한 느낌이 들었다”고 시청소감을 올리기도 했다.
스피디한 전개, 연기자들의 열연도 뛰어나지만 영화 못지않게 방대한 스케일을 자랑하는 화면으로 호평을 얻고 있는 <해신>은 일단 첫 단추는 잘 꿴 것으로 보인다. 점점 막강해지는 <12월의 열대야>와 <유리화> 등 경쟁 드라마의 공격도 잘 받아 넘기고 있다. 이제 <해신>이 <다모> <대장금> 등을 잇는 새로운 사극이 될 수 있을지는 지켜보는 일만 남은 것 같다.
강일수 PD 인터뷰
“어려운 때 힘내자는 이야기다”
=장편 데뷔작으로 사극을 고른 이유는.
-<태조 왕건>의 야외 연출을 맡았던 적이 있다. 그때 사극의 매력에 빠졌다. 사극은 이야기의 볼륨이 크다. 그래서 인물의 디테일이 묻히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해신>은 다를 것이다. 등장 인물이 어떻게 움직이나를 그리고 싶다. 그래서 <해신>에는 스토리를 전달하는 인물이 없다. 모두 각자의 히스토리를 갖고 있다.
=소설을 영상으로 만드는데 무리는 없었나.
-원작이 소설적 상상력보다 다큐식 상상력으로 그려져서 아직 큰 무리는 없다. 최인호 작가도 원작에 신경쓰지 말고 재미있게만 만들라고 했다. 장보고가 살았을 그 때 어떤 일이 있었을까, 상상해보는 일도 매우 즐거운 작업이었다.
=왜 ‘장보고’인가
-개인적인 호기심에서 시작됐다. 나침반도 없던 시대에 어떻게 바다에 나가 항해를 하고 무역을 했을지. 신라 젊은이가 중국에 가서 그런 위치에 올랐다는 것도 신기했고. 장보고는 훌륭한 드라마 주인공이다. 통일신라를 배경으로 한 사극이 없었다는 점도 끌렸다. 그 시대에 관한 디테일한 고증이 없어 조금 힘들기도 했다.
=<해신>에서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인물의 이야기다. 어려운 때 힘내자는(웃음). 역사에 의존하지 않는 이야기인 만큼 정통에서 조금 빗겨나간 이야기들을 하고 싶다.
=<해신>의 최고 장면을 꼽는다면
-당연히 염장이 장보고를 죽이는 장면이다. 중국에서 10일에 걸쳐 찍은 검투사로 살아가는 장보고의 모습도 기대된다. 프롤로그에 잠깐 나왔던 전투신(<다모>와의 표절 논란이 있었던)도 재미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