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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플린이 만든 살인에 관한 희극, <살인광 시대>

Monsieur Verdoux 1947년

감독·출연 찰리 채플린

EBS 12월18일(토) 밤 12시

1940년대에 찰리 채플린은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어야 했다. 그의 복잡한 사생활 문제는 자주 언론에 오르내렸으며 정치적으로 채플린이 과격한 인물이라는 평도 뒤따랐다. 이 시기에 채플린이 만든 <살인광 시대>는 광기 어린 코미디다. 오슨 웰스의 작품 구상을 바탕으로 하는 이 영화는 한 살인마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살인마가 겉으로 보이기엔 완벽한 남성에 가깝지만 실제로는 범죄를 저지르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30년이나 은행원으로 성실하게 살아온 베르두는 불황으로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자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다. 돈있는 과부들을 설득해서 결혼한 뒤 신부를 죽임으로써 여자들의 재산을 빼앗는 것이다. 베르두는 사람을 죽여도 독이 검출되지 않는 안락사용 독약을 알아낸다. 약을 실험하기 위해 젊은 여자를 집으로 데려오지만 그녀에게 감동해서 차마 독약을 먹이지 못하고 오히려 돈을 줘서 보낸다. 대신 베르두를 수상히 여기고 추적하던 형사가 약을 마시고 죽는데, 그는 심장마비로 판명된다. <살인광 시대>의 베르두는 자신의 실패가 사회 탓이며 놀고 먹는 사람을 살해하는 것은 아무런 죄가 되지 않는다고 여긴다. 그래서 여성들을 상대로 잔인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당시 비평가들은 “이 영화는 심오한 비관주의를 다룬 코미디”라는 평가를 내렸지만 관객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고 전해진다. <살인광 시대>를 통해 채플린은 자본주의적 사회제도, 그리고 국가간의 전쟁이라는 이름의 대량살인에 대한 찬양을 비판하고 있다. 영화 속 베르두는 “한명을 죽이면 악당이 되지만 수백만명을 죽이면 영웅이 된다. 위인을 만드는 것은 숫자다”라고 말한다. 이같은 염세적 냉소주의 탓이었는지 영화는 흥행에 부진했던 편이다. 채플린에 대한 비판자들에게 <살인광 시대>는 좌익에 경도되기 시작한 채플린의 사상적 태도를 담고 있는 영화라고 오해받기도 했다. 하지만 채플린 자신은 영화에 대해 “살인에 관한 희극”이라고 정의내린 적이 있다. 그는 영화 속 베르두라는 살인마가 “이 캐릭터는 살인이 사업의 연장이라고 여긴다. 그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정서를 반영하며 시대 변화가 그와 같은 인물을 만들어냈다. 경우에 따라서는 살인이 희극적인 것이 될 수 있는 것”이라 역설했다. 채플린은 자신의 특기라고 할 수 있는 슬랩스틱코미디, 음악 등 다양한 요소를 희극의 소재로 사용하는 실험을 작품에서 변함없이 보여주고 있다. 영화가 방영된 이후 <살인광 시대>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연이어 방영될 예정이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garo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