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흑백 125분
감독 신상옥
출연 김승호, 최은희, 김희갑, 조미령, 신영균
EBS 12월19일(일) 밤 11시50분
제10회 아시아영화제 남우주연상(김승호)
제3회 프랑크푸르트영화제 출품
사전에서 ‘로맨스 그레이’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머리가 희끗희끗 센 매력있는(!) 초로의 남성 또는 그 머리털’이라고 나온다. ‘매력있는’에 방점이 찍혀야 로맨스 그레이의 진짜 매력이 사는 말이다. 은발의 노신사, 백발의 노신사 같은 이미지가 떠오르는 단어이다. 그러나 신상옥 감독이 1963년 연출한 <로맨스 그레이>의 주인공 김승호의 이미지는 사실 ‘로맨스 그레이’의 이미지로 금방 연결되지는 않는다. 세련된 노신사의 남성적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배우를 캐스팅했으면 제목과도 잘 맞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왜 김승호였나를 알 수 있다.
얼마 전 한 시사주간지에서 “아직도 축첩의 유령이 사라지지 않고 지능적으로 교묘하게 두집 살림을 하는 남성들이 늘고 있다”는 기획기사를 다룬 적이 있다. 영화 <로맨스 그레이>가 만들어진 1963년은 간통죄가 쌍벌죄로 바뀐 지 10년이 지난 시점(1953년 이전에는 여성들만 처벌받는 간통죄였다고 한다)인데, 여전히 사회적인 현상으로 축첩이 공공연하게 만연(?)해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축첩이라는 악습을 청산하자는 계몽영화는 아니다. 이 영화는 급격한 근대화 혹은 산업화 속에 무너져내리는 가부장적 질서와 전통적 가치관의 분열 과정에서 가족의 화합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이런 주제를 가장 잘 보여주는 배우로 당시 한국 아버지 세대의 상징적 배우인 김승호를 ‘로맨스 그레이’로 정하게 된 것일 게다.
이 영화는 시나리오 작가 임희재의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영화화해서 그해 설 개봉작으로 명보극장에서 개봉되었는데, 약 8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비교적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다. 이후 1968년엔 설정을 조금 바꾼 최인현 감독의 <로맨스 마마>로, 그리고 1979년 문여송 감독에 의해 최불암 주연으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이승훈/ EBS PD agonglee@freech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