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사와 기요시로부터 ‘불가능하지만 최종적인 꿈은 로버트 알드리치가 되는 것이다’란 고백을 들은 평론가 김성욱은 역으로 ‘구로사와 기요시는 우리 시대의 로버트 알드리치가 아닐까’라고 생각했단다. 구로사와는 우리 시대엔 온전히 이해되지 못하는, 그래서 시간의 흐름 속에서 가치가 더 드러날 감독이다. 실제로 그는 동양 감독에게 형식적인 환호라도 보내는 서구 영화제에서조차 덤덤한 반응을 얻어내기 일쑤였다. 구로사와 영화는 답을 구하기 힘든 난해한 영화라기보다는 아예 답이 없는, 답을 잃어버린 질문지와 같다. 세기말의 불안이 느껴지고, 불안한 영혼이 읽히며, 시대의 징후를 담고 있는 <큐어>는 로버트 알드리치가 <키스 미 데들리>에서 만들어놓은 모호한 세상과 많이 닮았다. 죽은 자의 목에 그어진 X자의 불가사의한 이미지와 악의 순환이 암시되는 결말은 경계 너머 공포세계에 거의 근접해 있고, 제목과 달리 치유될 수 없는 세계에 대고 연쇄살인에 대한 추리나 범죄심리학적 해석을 들이밀기는 쉽지 않다.
구로사와 기요시는 영화관에서 불특정 다수와 함께 영화를 볼 때 영화의 본질, 영화와 세계의 관계가 드러난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강령> <도플갱어> <밝은 미래>에 이어 출시된 <큐어>의 DVD가 현재 국내에서 그와 소통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통로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큐어> DVD는 갈색 톤의 우울한 분위기를 그럴싸하게 재연하고 있으며, 예고편은 본편엔 없는 충격적인 장면 하나를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