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을 대표하는 이름이 되었건만 정작 장편은 2편만 연출한 오토모 가쓰히로. 어쩌면 그는 장편보다 단편을 더 재밌어하는지도 모른다. 그가 참여한 <미궁물어>나 <로봇 카니발>은 보석 같은 존재이며 총지휘를 맡았던 <메모리즈> 중 <대포의 거리>는 그의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손꼽아도 손색이 없다. 그런 오토모가 87년 2개의 옴니버스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는데 그중 하나가 <로봇 카니발>이다.
여기서 오토모는 오프닝과 엔딩만 맡고 나머지는 로봇이라는 공통소재 아래 7명의 작가가 각자의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이중 피그말리온 신화를 로봇에 적용한 <PRESENCE>가 단연코 압권인데, 국내에선 성인물 <메조포르테>와 <카이트>로 알려진 우메즈 야스오미가 연출을 담당했다. 줄거리상 데즈카 오사무의 단편 <점핑>을 연상케 하는 마오 람도의 <CLOUD>는 전쟁의 역사를 관통하는 로봇 소년을 등장시켜 암울하지만 희망의 메시지를 아련하게 남긴다. <CLOUD>가 반전 메시지를 담고 있다면 <빨강머리 습격사건>은 군국주의 냄새를 풍기는 작품이다.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의 감독 요시유키 사다모토는 미국에서 건너온 팅커벨 로봇을 맞이하여 승리하는 사무라이 로봇을 그렸다. 승리 뒤엔 욱일기의 등장도 잊지 않는다. 그외에도 기티즈메 히로유키의 건담 작화에 관심있다면 <STARLIGHT ANGEL>을 눈여겨봐야 하고 <환타지아>(1940)와 <메모리즈>의 중간쯤에 위치한 <닭 남자와 빨간 목>도 빼먹어선 안 되겠다. 일본에서는 2000년 DVD 출시되었는데 일본판임에도 불구하고 특이하게 한글자막이 지원됐다. 그럼에도 너무 고가라 구입하기 어려웠는데 최근 저렴한 가격으로 국내에서 출시되어 반가운 타이틀이다.